이는 3월17일 종가 기준 최저치(1,574.44)를 하회한 것이며, 코스닥 지수도 18.25포인트(3.42%) 내린 515.92로 마감해 600선이 무너진 지난달 27일 이후 매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달 9일부터 이날까지 6조원이 넘는 연속 순매도 기록을 세웠다.
대부분의 증시전문가들은 이제 섣불리 반등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패닉 분위기에 대해 고유가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기후퇴(recession)에 대한 공포가 국내까지 휩쓸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경기후퇴보다 더 끔찍한 단계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와 주목된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차우는 최근 'Recession is not the worst possible outcome'(원문보기)이라는 칼럼에서 "현재의 금융위기는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뮌차우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민스키 모멘트'의 '무한 반복'이라고 표현했다. '민스키 모멘트'는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투자자(또는 투기꾼)들의 기대가 어떤 계기로 꺾이면서 자산 가격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 투자금 상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결국 건전한 자산마저 헐값에 매각하게 돼 전체 자산 가치의 붕괴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단순한 금융위기라면, 지금쯤에는 진정이 됐을 것이다. 최근 시장을 휩쓸고 있는 사태는 뭔가 그 이상의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마 한차례의 '민스키 모멘트'가 아닐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불안정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장기간 호황을 누리게 되면 금융투기의 악순환에 빠져든다는 법칙이다. '민스키 모멘트'는 경제학자들이 일컫는 '폰지 게임'이 붕괴되는 순간을 말한다. (폰지 게임: 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투기가 계속되다가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반전이 일어나는 순간 가격 거품이 급속히 붕괴되는 현상. 편집자)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촉발 요인이지 원인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 더 나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는 최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서브프라임은 현재의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요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아닐 수 있다.
BIS는 통화와 신용이 급격히 팽창한 것이 어떤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보고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의 위기가 금융투기로 빚어진 위기가 아니라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빚어진 위기라고 주장하고 싶다.
즉, 현재 위기를 초래한 주범은 은행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역할 때문이 아니라 정책 자문와 정책 결정자 역할을 하면서 빚어졌다는 것이다.
일찌기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밀턴 프리드먼의 불운은 그가 제시한 정책들이 실행되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이 최악의 경우는 아니다. 최악의 경우는 경제학자들이 자기가 만든 이론을 자기가 실행에 옮기려고 할 때이다.
학자가 정책결정자가 됐을 때의 위험
몇몇 저명한 학자들이 중앙은행장이나 재무장관이 되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들이 오류를 범한 것으로 드러날 때 그들의 명성은 학자와 정책결정자로서 이중 타격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그러므로 상황이 바뀌었을 때 그들이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자들 중 일부는 '신케인즈학파'로 알려진 경제이론을 신봉하는 학자들이다. 현재 거시경제학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이론인 '신케인즈 노선'의 핵심은 동적균형 모델이다.
현재 전세계의 중앙은행은 이 모델을 핵심 분석틀로 채택하고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통화와 신용은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모델이 제시한 정책적 함의는 매우 크다. 총통화와 신용의 규모는 물론 자산가격도 안심하고 무시할 수 있으며, 자산가격 거품이 붕괴될 경우 초래될 경제적 영향에 대처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명목 인플레이션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이런 모델은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다. 바로 가격 조정에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상품가격은 즉각적으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시차를 두고 조정된다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 때문에 일부 중앙은행장들은 식품과 에너지 같이 변동성이 강한 품목은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에 집중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역할을 부정하는 경제모델이 21세기에도 유효한가를 둘러싸고 현재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위기가 닥치면 고통 완화 정책 펴면 그만?
지난 1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그랬듯, 위기가 닥쳤을 때는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유지하고, 주택자금 대출자와 은행들에게 구제금융을 단행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 모럴 해저드 문제는 무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제학자들이 주장할 때, 우리는 이런 혼란에 빠뜨린 처방이 다시 우리를 그 혼란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적절한 처방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BIS가 지적했듯 통화와 신용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자산가격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원인이나 상당한 요인이 되었다고 믿는다면, 그와 반대되는 정책이 보다 타당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자산가격 하락을 막으려는 것이 우선해야 할 정책은 아닐 것이다. 현재 경기순환의 하강 국면에서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주택가격은 정점과 비교할 때 40~50% 떨어질 수 있다. 이런 하락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자. 하락을 막으려는 정책을 쓴다면 단기적으로 일부에게는 약간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지만, 조정기간이 상당히 길어지게 될 것이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하는 통화정책 시행해야
두번째,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아질 때는 실질금리가 플러스여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미국에서는 상당한 금리 인상이 이뤄져야 하고, 유로존에서도 추가 금리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
세번째, 부도 위기에 처한 일부 은행들은 파산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네번째, 주택담보 대출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제 등 금융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장기적인 정책을 시행한다.
이런 정책을 시행한다면, 단기적으로 경기후퇴의 위험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경기후퇴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다. 더 최악의 상황은 이런 위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 '민스키 모멘트'가 영속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