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7시 촛불 시위를 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대차량과 음향 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현장에 있던 기독교대책회의가 시위 진행을 대리했다. 기독교광우병대책회의는 7시 10분께 시국 예배로 촛불 시위를 시작했으나 시민들 대부분이 광장에 들어서지 못해 이날 시위에는 경찰의 봉쇄 이전부터 와있던 300여 명만 참석할 수 있었다.
"500명 모일 때와 50만 명 모일 때, 대응 다르다"?
현장에 있던 경찰 관계자는 '왜 길을 막느냐'는 질문에 "실정법에 따라 공공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면서 "집시법상 야간 집회는 불허되어 있다"고 원천봉쇄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는 "이제껏 경찰이 야간집회를 허용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경찰의 집회 대응에 원칙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는 '시청 앞 광장 통행 자체를 막은 적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제같이 50만 명이 모이는 상황에서 원천 봉쇄를 하면 충돌이 더 커질 것 아니냐"며 "50만 명이 모일 때와 500명이 모일 때 대응이 같을 수 없다. 경찰의 전략상 개념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전날처럼 평화적인 집회를 생각하고 시청 앞 광장을 찾았던 시민들은 경찰의 원천 봉쇄에 크게 분노했다.
한 50대 남성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데 시민들의 통행 자체를 막고 시민을 협박하는 이런 일이 왜 다시 일어나야 하느냐"며 "경찰의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20대 남성이 "이것이야 말로 경찰이 '권력의 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너희를 지켜줄 것 같으냐"고 소리치자 경찰 중 한 명은 "말이면 다냐"고 대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길을 막은 경찰들도 어떤 이유로 시민들의 통행을 막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왜 길을 막느냐'는 시민들의 항의에 "시청 광장에 잔디도 많이 훼손됐고 복원도 해야한다"는 등의 답을 해 "말이 되는 얘기를 좀 하라"는 시민들의 질타와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두 50대 여성은 전경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이명박 대통령이 전두환이 되고 싶은가 보구나", "전두환보다는 못생겼어"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아 시민들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한편 시청 광장에 갇힌 시민들도 불안과 분노에 떨었다. 한 30대 여성은 경찰차량과 병력에 둘러싸인 주변을 둘러보면서 "경찰은 이대로 시민들을 연행이라도 할 생각인 것이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한 30대 남성은 "말로는 평화집회 보장한다고 해놓고 시청 앞 광장을 원천 봉쇄해 집회의 자유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나 시민의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어이가 없다"고 분노했다.
하지만 이날 시민들은 평화 시위 기조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는 경찰에게 '통행권을 보장해달라'며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나, 곧 다른 시민들이 "경찰이 원하는 것이 바로 충돌"이라고 만류하자 더 이상의 행동을 자제하기도 했다. 일부는 시청 앞 광장에 들어가지 못하자 '차라리 종로 보신각 앞으로 가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시청 광장을 7바퀴 돌며 평화를 지킨다"
촛불 예배를 마친 기독교대책회의가 8시 20분께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행진을 시도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경찰은 길을 내주지 않았다. 한 목사는 "인도로 가겠다. 이명박 정부는 평화시위는 허용한다고 누차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졌으나 경찰은 봉쇄를 풀지 않았다.
결국 기독교대책회의는 경찰의 봉쇄를 뚫고 시청 앞 광장 밖으로 행진을 시도하는 대신 서울 시청 광장을 7바퀴 도는 것으로 대신했다.
한우리교회 박승렬 목사는 "성경의 여호수아서에 보면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7바퀴 돌아 비폭력으로 점거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우리 역시 물리력을 쓰지 않고 평화적으로 재협상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더불어 경찰과의 몸싸움을 우리가 먼저 피해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행진을 마치자 기독교대책회의의 김경호 목사는 "오늘 경찰의 원천봉쇄로 어느때보다 적은 시민이 참여했지만 우리는 어렵게 이 안에서 촛불을 지켜냈다. 어느 자리보다 의미 깊은 촛불"이라며 "촛불은 끝내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9시 30분경 시위 종료를 선언했으나 때맞춰 이들과 합류하기 위해 종로 보신각에서 300여 명의 시민이 몰려와 또다시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은 시민들의 출입을 아예 통제했으나,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시민들이 일렬로 광장에서 나갈 수 있도록 한쪽만 열었고 시민들은 경찰에 항의하며 집회를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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