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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립)/亢(항)/方(방)/丙(병)/穴(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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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립)/亢(항)/方(방)/丙(병)/穴(혈)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53>

立(립)은 <그림 1>에서 나타나듯이 大(대)와 그 밑의 一로 분석되는 글자다. 大는 사람의 모습이고 一은 그 사람이 딛고 선 땅을 나타낸 것이어서, 이런 모습으로 '자리'의 뜻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 역시 필자가 의문시하는 '장면 상형' 범주에 들어간다.

옛 글자꼴에서는 획수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一은 凵(감)의 변형인 경우가 있다. 凵을 U자 같은 반달곡선으로 나타내고 그 파임이 얕아지다 보면 一자로까지 바뀌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 立은 '大+口(凵)'의 형태였던 去(거)와 같은 구조의 글자가 된다. 立 역시 去=出(출)의 변형이다.

立과 그 파생자 拉(랍)·泣(읍) 등이 去 계통 劫(겁)·盍(합) 등의 발음과 비슷한 점이 눈에 띈다. 立의 '나타나다'라는 의미는 出의 뜻을 가져온 것이고, '(우뚝) 서다' 등은 거기서 파생된 의미다.

<그림 2>는 <그림 1>의 立과 거의 구분하기 어려운 모습인데, 이는 抗(항)·航(항)·坑(갱)의 발음기호 亢(항)의 옛 모습이라고 한다. 사람이 발에 차꼬를 차고 있는 모습이라는 설명이지만 역시 '장면 상형'이다. 亢의 발음이 去 계통 盍에서 받침만 살짝 바뀐 것이니 亢=立으로 볼 수 있다. 立을 둘 겹친 竝(병)이 오히려 亢과 더 가까운 발음임도 참고가 된다. 의미는 '서다'(立)와 '오만하다'(亢)가 통한다.

자전에서 부수자의 하나로 쓰이는 尢(왕)도 亢의 변형인 듯하다. 발음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사람인 大의 한 획을 구부려 다리가 비정상적임을 나타냈다는 설명이지만, 그런 방식의 글자 만들기는 미덥지 않다. '절름발이'라는 뜻은 亢의 차꼬 설과 연결되는데, 차꼬 얘기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우니 의미가 없다.

方(방)은 <설문해자>에서 배를 나란히 놓은 모습이라고 했지만 <그림 3, 4>에서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요즘에는 쟁기를 그린 것이라는 설이 득세하는 듯한데, 그것 역시 납득이 어렵다. 오리무중인 이 글자의 기원은 오히려 지금 글자꼴이 힌트가 된다. 方은 亢과 마지막 획의 처리만 약간 다를 뿐이다. 발음도 비슷하다. '떳떳하다' '모나다'라는 方의 의미는 亢·立의 의미와 연결되니, 方=亢=立으로 볼 수 있다.

丙(병)도 기원에 대해 믿기지 않는 설들만 많은 글자다. 물고기 꼬리나 물건 받침대의 상형이라는 따위의 얘기들이다. <그림 5>가 그 옛 모습인데, 이는 <그림 4> 같은 方의 모습과 연결시킬 수가 있다. H자가 冂으로, 人 비슷한 나머지 부분은 ㅅ으로 모양이 살짝 바뀌고 그 두 구성 요소의 비례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발음도 비슷하다. 丙은 方의 이체자인데 간지자의 하나로 쓰이면서 <그림 5> 같은 아주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독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5>에서 볼 수 있듯이 丙의 윗부분 一은 나중에 별 의미 없이 추가된 요소다.

穴(혈)은 낭떠러지 같은 곳에 판 동굴 주거지를 그렸다고 한다. 八(팔)은 <설문해자>에서 발음기호라고 했지만, 동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양쪽에 버팀목을 댄 모습이라거나 동굴 안의 물방울이라는 식의 설명이 붙었다. 버팀목 얘기가 가지를 쳐서, 움집이 아니라 광산 입구를 그린 것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모두 '장면 상형'에 기댄 해설들이다.

윗부분 宀(면)이 '집'과 관련된 의미 요소지만, 상형이라면 그것을 분리할 이유가 없고 합성자라면 <설문해자>의 얘기대로 八이 발음이어야 하는데 의문스럽다. 글자 모양으로 보아 丙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보면 발음도 비슷한 느낌이다. 丙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出과 같은 글자가 되는데, 出의 凵 부분이 주거지를 나타낸 것이고 그것이 발음뿐 아니라 의미 요소 겸용으로 쓰였다면 穴의 의미도 그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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