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MB정부, 북핵 합의문 읽어보긴 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MB정부, 북핵 합의문 읽어보긴 했나?"

유명환 외교 '핵무기 신고 없어 유감' 발언 논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26일 이뤄진 북한의 핵 신고에 대해 '핵무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를 분리해서 접근하고 있는 6자회담의 구조를 무시하거나 몰이해함으로써 6자회담에서 조차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무기/프로그램 분리의 '뿌리'도 모르나

유명환 장관은 이날 긴급브리핑에서 북한의 핵 신고 사실을 발표하며 "북한 비핵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포기"라며 "따라서 신고서에 핵무기 관련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은 이어 "이번 신고에 핵무기의 본질적인 사항인 플루토늄 추출량 등을 신고했다 하더라도 북한이 핵무기 관련 상세 사항을 다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이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장관의 발언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설정한 2005년 9.19공동성명과, 그 성명의 '행동계획서'격인 2007년 2.13합의 및 10.3합의와 충돌하는 것이다.

9.19공동성명에는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이라며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나눠 본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공식 명칭이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인 2.13합의에는 "(9.19)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 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고 되어 있다. 이른바 '신고 목록 협의' 조항인데, 여기에는 핵무기가 빠져 있어 2.13합의에 따른 신고 목표는 핵 프로그램으로 제한됨을 보여준다.

이어 공식 명칭이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인 10.3합의에는 "북한은 2.13합의에 따라 모든 자국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2007년 12월 31일까지 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되어 있다. 10.3합의는 앞선 2.13합의에 '따른' 것이며, 역시 핵 프로그램만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일부 언론들은 신고 목록에 핵무기가 빠져 있음을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합의를 이끌어냈던 당국자들은 핵무기의 신고와 폐기는 북한의 궁극적인 핵 폐기를 다루는 3단계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한결같이 얘기했었다.

미국도 지속적으로 확인해와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분리한 것은 핵무기를 최종 카드로 남겨두고자 하는 북한의 속셈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지난해 3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도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분리해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두 문제의 분리 접근에 합의했고, 미국도 내부 강경파들의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그같은 사실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왔다.

대표적으로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해 9월 제네바에서 있었던 북미 실무회담에 앞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에는(…) 핵무기 문제는 9.19공동성명에서 언급됐지만 2.13합의는 그 첫 단계만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핵 신고가 임박했던 최근에도 마찬가지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말 <위클리 스탠더드>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조만간 행할 핵 계획 신고에서 보유한 핵폭탄의 수량 등을 이번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다음 단계의 조치로 취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도 지난 24일 "무기 문제는 후속 국면에 결정될 일"이라며 "현 시점에서 신고는 핵 물질 전부 및 핵 시설과 프로그램들 모두를 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국면은 아니지만, 북한도 무기 문제를 논의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핵 신고서가 제출된 이날도 조지 부시 대통령, 라이스 장관 등은 향후 철저한 검증만을 강조했을 뿐 핵무기 미신고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알쏭달쏭한 '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장관이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하자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커다란 입장은 핵 신고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라면서도 "핵무기에 대한 상세 사항이 신고되지 않아 아쉽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현실적으로 보건대 (핵무기 신고 및 폐기는) 맨 마지막으로 올 것으로 상정하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뚜렷한 목표와 원칙을 6개국과 공유하면서 협의하겠다는 말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전에 프로그램이라고만 언급되게 된 경위는 모르겠지만, 혹시 오해를 자아낼 소지가 있다면 제일 큰 원칙인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 9.19성명을 제일 큰 원칙과 기반으로 생각하는 게 옳다"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하기도 했다.
▲ 북한의 핵 신고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과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 ⓒ연합뉴스

"할 일 못하고 푸념하는 것"

이에 대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 10.3합의가 도출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북핵 협상에 대한 현 정부의 무지와 몰이해의 산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2.13합의와 10.3합의 당시 6자회담 한국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박선원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은 "핵무기가 신고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6자회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비서관은 "핵 신고와 검증은 과거 핵 활동에서 어떻게 무기로 전환됐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핵무기는 별도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라며 "핵무기도 신고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전혀 다른 메시지를 준다"고 설명했다.

박 전 비서관은 이어 "유감이란 말은 6자회담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향후 로드맵은 무엇인지 등을 분명히 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핵 문제 해결의 주역이 됐을 때에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그것도 못하면서 유감이라고 하는 건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푸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다른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북미간의 협상 내용을 모른다는 얘기다"라며 "알면 그런 얘기를 못한다"라고 개탄했다.

'6자회담서 무슨 대접 받으려고…'

문제가 유감 표명이 부적절했다는 그 자체에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이같은 발언과 인식이 향후 6자회담과 남북관계에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다른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합의 내용도 인지하지 못하면 앞으로 6자회담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가 없다"며 "북미가 중심이 되어 불능화 종료로 가는데 있어 한국은 왕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현 단계에서 핵무기 미신고 문제는 미국의 보수파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라며 "그걸 우리가 크게 얘기하는 것은 남북관계도 단절된 상황에서 또 다른 악수"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의 냉각을 더 심하게 할 수도 있다"며 한국의 당국자들이 27일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현장에 초청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핵무기/프로그램 분리를 모를 리 없는 유 장관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정부가 그런(핵무기 미신고 유감) 생각을 안 가졌다고 하면 언론 쪽에서 날카롭게 비판할 것"이라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 속에는 답이 있다. 핵무기 미신고에 대한 보수세력의 비난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청와대 뉴라이트 세력의 요청도 있었겠고, 보수층에 대한 정치적 제스처로 볼 수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국내정치적 고려 때문에 외교적 발언을 함부로 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