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하순은 전쟁과 안보 불안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전환이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2.13 합의 이후 나타난 변화가 또 하나의 변곡점을 지나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 고위관계자들은 6자회담이 곧 재개될 것이며, 그에 즈음해 북한이 조만간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핵시설 불능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5MWe 원자로의 냉각탑 폭파 장면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핵 문제의 진전은 북미관계의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고, 이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파동적 변화
한반도는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이후에도 한동안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었다. 탈냉전 상황에서 남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포괄적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와 교류협력을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고 그 결과 1992년 1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지만, 북핵 문제와 팀스피리트 연합훈련 재개 논란 속에 그 해 11월에 사실상 실효성을 잃었다. 이 때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이후 추진되던 남북 공동의 핵통제 체제가 무너졌고,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에는 핵문제 자체가 북미 간 협상 의제로 변화되었다.
사실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북미는 더욱 오랜 기간 심각한 적대관계에 있었다. 북한은 1974년부터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지만, 정작 고위당국자간 접촉이 시작된 것은 1992년이었다. 탈냉전이 진행되면서 중국, 소련 등 기존 동맹국의 경제지원이 급감한 상황에서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바라던 북한의 입장과, 핵문제 등 새로운 안보 관심사를 둘러싸고 북한에 직접적 메시지를 보내고자 했던 미국의 입장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어쨌든 1990년대 초 순항하던 남북관계가 급전직하 경색되고 북미 핵협상이 진행되면서 '통미봉남' 현상이 나타났다. 1995년 대북 쌀지원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더욱 소원해졌고, 북미 간에는 1994년의 제네바기본합의로 일단락을 지은 핵문제 외에도 미사일, 전쟁유해 송환 등 협의 의제가 다양해졌다. 남북관계의 회복은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 추진에 따라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비로소 가능했다.
그 후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했고, 북미 간에도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 채택과 미사일 문제의 최종적 해결 노력 등이 진행되면서 급속한 관계 개선이 점쳐졌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성과를 무력화하는 노선 전환이 이루어졌고, 2001년 6월 '포괄적 현안 해결시 광범위하고 과감한 지원'을 내세운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가 나오면서 북미관계는 냉각되었다.
핵문제 해결 과정과 남-북-미 관계
남북관계가 비교적 순항한 반면 경색되기만 해 온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2002년 10월 미국 특사가 북한을 방문해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제기하면서 위기가 도래했다. 당시 미국 정부의 문제 제기는 '의혹' 수준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북한과 벌인 신경전 끝에 HEU 계획은 기정사실화되었고, 그 결과 대북 중유 제공 중단과 북한의 NPT 탈퇴로 플루토늄 핵개발을 동결시킨 제네바기본합의 체제가 붕괴되어 버렸다.
북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하나의 버팀목이 되었다. 한국 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 등 고위급 협의를 통한 문제의 조기 해결과 더불어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북핵 문제의 군사적 해결 대안을 불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3년 3월 미국 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입장에 동의한 뒤에는 이를 유지하고 나아가 문제 해결의 포괄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진력했다. 이라크 파병 등을 통해 미국이 평화적 해결 입장을 유지하도록 조력하는 한편 대미 또는 대미·일 협의를 통해 핵문제 해법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렇지만 북핵 문제 해결은 매우 더뎠다.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에서 애초에 대화 자체를 거부했던 북미 양국은 우여곡절 끝에 2003년 4월에 3자회담, 그 해 8월에 6자회담 석상에 함께 자리했지만 입장차는 여전했다. 북한은 선(先)보상 후(後) 완전 타결 입장을 견지했고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결'(CVID) 원칙을 내세웠다.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해결 원칙이 구체화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2005년 6월초 우리 정부가 미국에 공동의 해법을 제안한 뒤,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구체적 해법을 강구하고, 그 직후 대북 특사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으로 강화된 협상력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대북 협의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면서 9.19 공동성명이 도출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직후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따라 상황이 악화됐고, 결국 돌파구는 또 한 번의 위기로부터 왔다. 2006년 7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단행하고 그 해 10월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하는 등 한반도 안보에 먹구름이 깔렸다. 전면적 대북제재의 분위기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에 마지막 협상 노력을 촉구했고, 부시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핵문제 해결시 대북 관계개선과 안전보장 제공, 평화협정 체결 용의가 있음을 천명했다. 그 뒤 몇 달 간의 확인 과정을 거쳐 9.19 공동성명의 초기 단계 이행에 관한 2.13 합의가 도출되었고, 이후 10.3 합의도 이어졌다. 핵문제에 진전이 이루어지면서 남북관계에서도 걸림돌이 제거되어 작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많은 분야의 합의를 담은 '2007 남북정상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
그동안의 관찰에서 보건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같은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다. 두 관계가 모두 긍정적이라면 2000년 후반처럼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적극적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또 모두 부정적이라고 해도 지난 몇십 년처럼 북한에 대응한 한미의 강력한 결속으로 적어도 안보는 유지된다.
그런데, 서로 엇박자를 보인다면 불안이 초래될 수 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남북관계에 비해 북미관계가 뒤처지면서 핵위기가 증폭되었고 결국 미국의 정책 전환으로 해결 수순에 들어가게 되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북미관계보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이지만, 이 역시 이번 핵합의 이행을 계기로 선순환적 변화를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선순환적 접근
북핵 문제와 군사관계 등 한반도 안보에서 미국은 주요 행위자이다. 미국은 1953년 정전협정의 사실상 당사자이자 그 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보장자로서 역할을 해 왔고, 1990년대 이후 핵문제를 둘러싸고 북한과 협상을 지속해 왔다. 특히 북한은 자신의 안보 관심사를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해결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인 안보 보장을 실현하고 스스로의 위상도 제고하기 위해 매우 의도적이고 도발적으로 대미 자극을 해왔다.
이미 전쟁을 거친 바 있는 남북간에 안보 문제는 핵심적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당국간에 대화가 진행되고 경제 및 사회 교류협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군사적 긴장이나 국지충돌이 발생하면 남북관계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북한에 비해 30배 이상이나 큰 경제력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은 일정한 대북 자신감이 있지만 극심한 안보 불안이 언제라도 경제발전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항상 핵심 이슈에서 서로의 입장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재래식 군사력 문제는 현존 위험의 통제나 군사적 긴장완화 등 각각 대군을 보유한 남북한의 이해가 우선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전쟁 억지나 유사시 증원, 주한미군 등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입장도 강하게 반영되기 마련이다.
또한 핵무기 등 전략무기는 전세계적 비확산 노력과 관련해 미국의 일차적 관심사지만, 북한이 이를 전력화하고 실제 한반도에서 평화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서 등장한다면 한국도 이를 소홀히 넘길 수 없다.
한반도 안보와 평화의 문제는 단순한 평화관리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장차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과정과 맞물린 중요한 이슈로서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특히 대규모 병력의 통제 및 해소와 관련해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나아가 군축의 문제는 미래 한반도의 안보 입지를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으로서 적극적인 검토와 대비가 필요하다. 또한 9.19 공동성명과 후속 합의 등에서 명시된 대로 앞으로 직접 유관국들은 적절한 장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협의를 하게 되며, 미국 정부의 관심으로 미루어 이번 핵신고 및 불능화 조치 이행 이후에 이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점차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문제에 대한 정책적 준비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북핵 2단계 합의 이행 이후 예상되는 한반도 평화체제포럼의 성과를 북핵의 완전 폐기와 아울러 한반도 평화보장의 실질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협정 및 종전선언의 유용성과 관련한 기존의 소모적 논란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체제포럼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그 성과를 북핵 폐기에 선순환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우선 북핵 합의 이행을 평가할 6자 외무장관회담 계기에 4자가 모여 한반도 평화체제포럼의 출범을 기리고 전쟁 종식과 평화구조 창출을 위한 진지한 협력을 다짐할 수 있도록 시도할 필요가 있다. 향후 우리 안보의 최대 이슈이자 평화와 안정의 보루가 될 북핵의 완전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최종 단계에서 상호 조율되면서 타결될 수 있도록 관련국간, 관계 부처간 면밀한 협조체제를 가동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브리핑이 새롭게 시작합니다 <프레시안> 한반도브리핑을 사랑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반도브리핑은 독자여러분들의 관심을 보다 많이 충족시킬 수 있는 코너로 거듭나고자 다각도의 평가와 검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여덟 분의 필자들이 매주 연재하는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특별한 이슈가 발생할 경우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과 진단을 게재하는 방식을 추가하는 한편, 독자여러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반도브리핑에는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겸 <민족21> 대표,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 기존의 필자 외에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前 청와대 안보정책수석), 박후건 경남대 교수, 정영철 현대사연구소 소장 등이 참여해 한반도 문제에 관한 보다 정확하고 분석적인 시각을 제시할 것입니다. 한반도브리핑에서 다뤘으면 하는 이슈, 한반도브리핑에 대한 각종 제안이 있으신 독자분들 께서는 언제든 관련 사항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적극 반영토록 노력하겠습니다. (☞연락처 : anotherway@press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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