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24일 10면 하단에 "'촛불 900명', '보수 20명'에 '죽이겠다' 협박"이라는 기사에서 "촛불시위대 900여 명(경찰 추산)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던 보수단체 회원 20여 명을 둘러싸고 '죽여버리겠다'는 등 협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앞서 보수단체가 KBS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여성을 각목 등으로 집단 폭행한 사건에 대해서는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이 신문은 "(촛불) 집회에 참가한 700여 명은 오후 8시30분쯤 여의도 KBS 본관 앞으로 이동해 '아고라', '국민참여네트워크' 등 단체가 주도한 '감사원 특감반대 촛불집회'에 합류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들 시위대가 왜 여의도로 이동했는지는 역시 보도하지 않았다.
이어 이 신문은 촛불 시위대가 몰려와 다짜고짜 보수단체에게 행패를 부린 것처럼 묘사하고 이날 1면에도 경찰을 둘러싸고 보수단체의 폭력 행위를 방관한 것을 항의하는 시위대의 사진을 내보내며 앞뒤 정황 설명 없이 "경찰 둘러싼 시위대"라는 캡션을 달아 시민들이 일방적으로 억류한 것처럼 묘사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의 말미에 "한편 이날 오후 보수단체 회원과 촛불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로 주먹다툼을 벌여, 촛불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고만 덧붙였다. 이 역시 당시 사건을 목격한 시민들의 증언과도 어긋나는데다 피해자 측의 입장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인 왜곡 보도다.
앞뒤 정황은 쏙 빼먹고 … 취재는 했나
<조선일보>와 함께 '조·중·동'으로 묶이는 <중앙일보>도 이날 촛불시위대를 '폭력집단'으로 묘사하는데 열을 올렸지만 적어도 이 사건 보도에서는 최소한의 균형을 맞췄다.
<중앙일보>는 이날 "촛불시위대-보수단체 물리적 충돌"이라는 기사에서 "박 씨는 본지 기자와 만나 'KBS 정문 맞은 편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는데 고엽제전우회 10여 명이 달려들어 '빨갱이년'이라고 욕을했다. 평화롭게 의견 표현하니 말리지 말라고 하자 '빨갱이년 죽어라'면서 피켓으로 머리를 내리쳤다'고 말했다"며 "박씨 주변에 있던 아고라 회원들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각목을 들고 있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러한 정황은 쏙 빼먹은 채 경찰과 보수단체의 주장만을 들어 "주먹다툼을 벌여 한 여성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보수단체가 물러간 뒤 반핵반김시민연대의 차량에서 상당수 각목과 쇠파이프가 발견된 사실도 무시했다.
만약 <조선일보>가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려면 촛불 시위대가 "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실은 전달해주어야 정당하다. 지상파방송과 몇몇 매체들을 "좌파 매체", "선동 방송"이라고 비난해온 <조선일보>가 정작 양측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기사에서 최소한의 양적, 질적 균형도 맞추지 않고 있으며 시민들의 '조중동 폐간운동'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는 이 기사의 위에 "인터넷 유포 '프락치 의혹'·'여대생 사망설' 허위로 / 무책임한 네티즌의 '키보드 두들기기'"라는 기사를 냈다. 과연 이날 "'촛불 900명', '보수 20명'에 죽이겠다' 협박" 기사를 쓴 기자는 병원으로 찾아가 피해자를 만나보았는지, 현장을 보고도 이런 기사를 쓴 것인지 의문이다. 무책임하게 키보드를 두드린 것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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