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큰 문제는 <그림 1>이 대략 전서 단계부터 나타나는 지금 글자꼴과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臼 부분을 쥐의 머리에 이가 강조된 모습으로 보는 등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억지스럽다.
생각을 바꿔보자. 鼠의 아랫부분은 羽(우)나 그와 같은 글자로 보이는 雨(우)와 비슷한 모습이다. 모두 友(우)가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정리된 것이다. 臼는 白(백)과 모양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 모습은 習(습)의 구성 요소 위치만 바꿔 놓은 것이다. '쥐'의 뜻은 가차가 된다.
鼠의 아랫부분과 같은 모습은 獵(렵) 등의 발음기호로 쓰이는 巤(렵)에도 남아 있다. 巤은 그 부분을 제외한 윗부분이 腦(뇌)·惱(뇌)의 오른쪽, 또는 거기서 획이 하나 빠진 정도의 글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옛 모습(<그림 3>)을 보면 <그림 2> 같은 鼠의 臼 부분이 다소 다르게 정리된 것일 뿐이다. 巤 역시 鼠=習의 변형이며, 갈기털이 달린 짐승 모습 운운하는 설명은 '갈기'의 뜻인 鬣(렵)자에 현혹된 것이다. 요즘 말로 '낚인' 것이다.
'꿩'인 翟(적)은 <그림 4>가 옛 모습이어서 꿩의 화려한 머리털을 강조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림이 그럴 듯하기는 하다. 그러나 羽와 隹(추)의 두 구성 요소가 너무 뚜렷하다. 새의 머리에 무엇을 더 강조해 그렸다는 식의 설명도, 세부적인 차이로 별개의 글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믿기 어렵다.
'새'인 隹가 분명한 의미 요소인 만큼 羽는 발음기호일 가능성이 높다. 翟의 발음이 鼠나 習의 발음과 그리 멀지 않으니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상형의 범위는 아주 제한돼 있었다고 생각해야 하며, 특히 어떤 대상을 그린 글자가 따로 있는데 그 일부분의 모습을 강조해 별개의 글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코를 강조해 그렸다는 象(상)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전의 얘기와 같은 맥락이다.
'보다'인 瞿(구)는 目(목)을 겹친 䀠(구)가 발음기호라고 하지만 䀠는 허구의 글자일 가능성이 높다. 전체를 상형으로 보아 눈을 강조한 새의 모습이라는 설명은 翟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형의 과잉이다. 윗부분 䀠가 羽와 비슷해 瞿=翟으로 봐야 할 듯하다.
'빠르다'인 霍(곽)은 윗부분이 雨다. 이번에는 전에 나왔던 羽=雨의 공식을 적용할 수 있으니 좀 쉽다. 羽=雨면 霍=翟이다. 발음도 멀지 않다. 霍의 옛 모습 가운데 <그림 5>처럼 隹가 둘 들어 있는 모습도 있는데, 그것이 둘이라는 데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장식적인 필요에 의해 겹쳐 넣은 것일 뿐이다. 한자의 옛 글자꼴에서 그런 경우는 흔하다.
弱(약)은 '약하다'의 뜻이다. 弓(궁)부에 속해 보통 '弓+彡' 형태의 글자를 겹친 것으로 본다. 이를 상형으로 보고 오래된 활줄이 너덜거리는 모양, 지친 새가 날개를 축 늘어뜨린 모양, 구부정한 나무의 모습 등 여러 설명이 나왔다. 龍(룡)의 오른쪽을 뒤집은 모습이니 강함의 반대 의미라고도 한다.
역시 믿기 어려운 얘기들뿐이다. 아래 羽부분이 눈에 띄며 그것이 발음기호인 듯하다. 윗부분이 의미 요소일 텐데, 어떤 글자였는지 분명치 않다. 위아래 요소가 뒤섞여 지금으로서는 弓자가 뼈대를 이루는 듯한 모습이지만 弓과는 관계가 없는 글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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