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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습)과 沓(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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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습)과 沓(답)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48>

'익히다'라는 뜻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그런 뜻을 가진 글자를 만들려면 형성자가 가장 무난하다. 그러나 그 뜻을 지닌 習(습)자는 형성자로 보기가 쉽지 않으니, 회의자라는 도피처로 달아나는 게 보통이다. 한자의 글자풀이에서 이런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習은 지금 모습이 羽(우)와 白(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런 구성으로는 회의자식 설명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아래 白은 변형된 것으로 본다. 코의 모습을 상형했다는 自(자)를 옛날에 白처럼 쓰기도 했기 때문에 自의 변형으로 보거나, <그림 1> 같은 옛 모습을 근거로 日(일)의 변형으로 본다. 어린 새가 날마다(日) 날갯짓(羽)을 익힌다는 식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난 회에 나왔던 及(급)의 발음이 習과 비슷한 점에 주목해 보자. 及은 又(우)를 둘 합친 友(우)의 변형이며 羽(우) 역시 그 변형으로 보인다고 했다. 習의 윗부분에 들어 있는 羽는 그렇게 보면 발음기호일 수 있고 習은 형성자가 된다. 그렇다면 아랫부분이 의미 요소일 텐데, 白·自·日 가운데 어떤 것이 맞을까? 그 해답을 지니고 있는 글자가 踏(답)의 발음기호인 沓(답)이다.

沓은 水(수)와 曰(왈)로 이루어졌는데, 曰을 '강가의 돌멩이'로 보고 흐르는 물이 돌과 부딪칠 때 나는 소리에서 '시끄럽다'의 뜻이 나왔다는 설명이 있지만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설명이다. 그런데 羽는 雨(우)와 같고 <그림 2>와 같은 雨의 모습이 합성자에 들어갈 때 水와 충분히 헛갈릴 수 있다고 보면 沓은 習과 같은 구성일 수 있다.

우선은 沓-習의 모양과 발음이 비슷한 것이 눈에 띄지만, 더욱 결정적인 증거는 의미다. 둘은 '겹치다'의 뜻을 공유하고 있다. 모양-발음-의미가 비슷하다면 같은 글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의미에 주목하면 沓=習의 아랫부분 曰·白은 모두 '날'을 뜻하는 日의 변형이고, 이를 의미 요소로 해서 '여러 날이 지나다'의 뜻이었다가 '겹치다'나 '익숙하다' 등으로 의미가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회에 羽가 友의 변형이고 그 또 다른 변형으로 多(다)가 있다고 했는데, 習은 여러(多) 날(日)이 지난 것을 의미해 회의 겸 형성자가 되는 것이다.

畓(답)은 沓과 발음이 같고 모양도 비슷한데, '논'이라는 뜻의 이 글자는 '오리지널 중국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水)을 대어 농사짓는 농토(田)라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회의자인 듯하며, 회의자에 매우 인색한 필자도 그것이 회의자임을 인정한다. 한자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회의자(회의 겸 형성이 아닌 순수 회의자)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후대에 회의자라는 허구의 이론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만든 글자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답'이라는 발음이다. 한자의 훈·음은 각기 그 글자의 우리말과 중국말인데, 그것이 국산 한자라면 '중국말'인 음 부분은 공란이 돼야 한다. 우리가 중국의 '논' 개념 글자를 만들어 선물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중국은 논-밭 구분을 하지 않고 모두 田이다). 畓의 모양이 沓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 음을 꿔다 채워 넣은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편으로 沓의 윗부분 水가 羽의 변형으로 발음기호라면, 국산 한자 畓은 水=羽가 발음, 田이 의미인 형성자가 돼버린다. 물론 실제로 그런 형성자로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우연히 그런 꿰맞추기가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걸상'인 榻(탑)은 구조상 오른쪽 부분이 발음기호일 수밖에 없는데, 그 발음 부분이 어쩐지 낯이 익은 듯하다. 윗부분 曰은 沓의 아랫부분과 같고, 아래 羽는 習의 윗부분과 같다. 習의 본래 모습이 <그림 1>과 같이 羽 밑에 日이었음을 생각하면 榻의 오른쪽은 習의 위아래만 바뀐 것이다. 구성 요소는 같고 위치만 다른 것이니 옛 글자에서 별개의 글자로 볼 수 없다. 결국 榻은 習의 다른 형태가 발음기호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榻의 曰 부분은 보통 冃(모)의 변형으로 보지만 그것도 사실과 다른 셈이다.

'성금이 遝至(답지)한다'는 말에나 쓰이는 遝(답)은 眔(답) 부분이 발음기호인데, 그 부분은 다시 目(목)과 水(수)로 이루어졌다 해서 '눈물'을 나타내는 淚(루)나 涕(체)와 같은 글자로 본다(<그림 3>). 그러나 합성자를 이런 식의 상형적인 글자로 보기는 어렵다. 沓과 비교하면 曰이 罒으로 바뀌고 두 요소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이어서 같은 글자로 봐야 한다. 다만 '홀아비'인 鰥(환)에 들어간 眔은 전에 다룬 泉(천)=衆(중)의 변형이 우연히 眔과 같은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젖다'인 濕(습)은 구조상 오른쪽이 발음기호인데, 햇볕(日) 아래서 실(絲)을 말리는 모양이라는 식의 설명이 있지만 미덥지 않다. 발음이 習과 일치함을 감안하면 榻의 오른쪽과 같은 모습에서 羽 부분이 조금 더 변해 絲의 간략형 형태로 정리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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