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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보여주는 우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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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보여주는 우주관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72> 우주와 인간 ②

자연과학이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과학을 통해서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도 자연에 속해 있습니다. 우주의 일부분이죠. 지난시간에 우주를 공부했는데 인간이란 우주에서 아주 미약하기 짝이 없는, 하찮은 존재 같습니다. 그런데 이같이 미미한 우리가 우주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제법 잘 해석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자연과학이 성립하기 전 고대세계부터 이런 경향이 있었죠. 인간은 언제나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이에 따라 인간의 의식 속에 나름대로 우주의 영상이 투영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세계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우주를 해석했지요? 우리나라에서 고대세계하면 어떤 것이 생각납니까? 단군신화 생각나지 않아요? 서양이라면 그리스 신화가 먼저 생각나겠네요. 고대세계에서는 우리나라나 그리스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의 모습이 신화라는 방식을 통해 투영돼 있습니다. 한편 현대세계에서는 자연과학을 통해서 우주를 바라보는데 자연과학은 보통 모형이라는 방식을 가지고 자연을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서 우주의 영상이 의식에 투영되면 결국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고대인들은 나름대로 신화라는 방식을 통해서 우주의 영상을 가졌고 그것은 당연히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과학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우주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당연히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신화에서 과학의 시대로 바뀌면서 사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주 전체에 대한 관념이 크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관념의 전환이었고, 이러한 방식 자체가 삶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결국 문화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대세계의 신화로 단군 신화도 있고, 그리스 및 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도 있고, 구약에 나타난 히브리 신화도 있습니다. 자연현상의 해석에서 이런 신화들과 현대 자연과학의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떤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데에 신화에서는 본질적으로 이른바 초자연적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성서 같으면 야훼, 그리스 신화에서는 올림포스 신들이죠. 단군신화를 보더라도 환인이라고 하는 한울님 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하느님이라고 표현하든 또는 하나님이나 둘님, 셋님 또는 여러님 따위로 표현하든 상관이 없지요. 또는 도깨비라고 표현하든 귀신이라고 표현하든 요정이든 해리포터든 반지의 제왕이든 하여튼 그런 존재가 필요한 겁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초자연적 존재를 인격화한 점입니다. 모든 신화에서 하느님이란 인격신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인간에 대한 경험과 자연에 대한 경험이 혼재돼 있는 겁니다. 이에 따라 자연현상 자체도 인격화된 과정을 통해서 하나로 통합하여 해석하려는 시도가 고대 신화의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이와 달리 자연에 대한 경험과 인간에 대한 경험을 분리시킵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에 대한 경험을 인격체로부터 해방을 시킨 거지요. 자연 자체가 규칙적인 질서를 지니므로 우리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연을 자연 자체로서 해석하는 거지요. 물론 해석은 인간이 하는 것이지만 자연에 대해 이해한다는 시도 자체가 유사 인격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대세계에서는 자연은 신비로운 존재였습니다. 옛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면서 계수나무가 한 그루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는 그런 생각을 했지요. 참 신비와 경외의 느낌이 드는데 현대인은 달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토끼와 떡방아 생각하는 사람은 없죠? 여러분들은 달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온기가 없고 사막보다도 더 황량한 죽음의 세계, 그렇게 생각합니까? 옛날에는 해를 쳐다보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을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와 달을 보고 오누이를 생각했겠지요. 호랑이가 쫓아오는 바람에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서 해님과 달님이 됐지요? 그래서 오빠가 해가 됐어요? 누이동생이 해가 됐어요?

하여튼 그런 이야기는 아름답고 낭만적이네요. 밤하늘의 별을 보면 옛날에는 견우직녀가 생각났어요. 칠월칠석에 까막까치가 놓아주는 다리로 은하수를 건너서 1년에 한번만 만나 애틋한 사랑을 하는, 뭐 그런 게 생각났는데 요새는 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요? 물리학에 따르면 별은 그냥 불덩어리란 말입니다. 수소가 핵융합 과정을 통해서 헬륨이 되면서 질량이 조금 없어지고 그것이 빛에너지 형태로 방출되는 불덩어리라는데, 아무래도 좀 삭막한 느낌이 들지요.

고대에는 자연현상의 근원 자체가 신들의 역할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신비와 경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느님이 경이롭고 신비로운 존재라는 거지요. 예컨대 엿새 동안 우주를 창조하고 일곱 번째 날에 쉬었다는 식의 얘기들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보고 초자연적 존재에 기인하는 기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이라는 존재 때문에 기적이 가능하고, 그래서 자연계에 경이와 신비가 있었지요.

현대의 자연과학에서는 자연을 해석하는 보편지식 체계, 곧 자연법칙에 반하는 '초자연적' 현상으로서 기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관측된다면 기존 지식 체계에 대한 변칙에 해당합니다. 결국 체계 자체의 수정이 요구되고, 이러한 것들이 쌓이게 되면 이른바 패러다임의 교체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거꾸로 자연계 자체에 자연법칙이라 부르는 정해진 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자연계에 경이와 신비를 주는 근원이고, 바로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 아무렇게나 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을 통해서 놀라운 자연현상이 생겨난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계의 경이와 신비를 주는 거지요. 예컨대,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질서와 혼돈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의미에서 중요하게 동전의 앞뒤면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는 자연계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적'이란 자연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어날 수 있고, 어떤 의미로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결론적으로 현대에서 우리도 자연계의 경이로움과 신비를 느끼지만 그 근원은 고대인이 느끼는 근원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계의 질서를 하나하나 이해하고 이를 통한 자연현상의 해석이 가능해지면서 자연 자체가 경이롭고 신비롭다는 점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우주의 구조뿐만 아니라 기원과 진화, 즉 시간과 공간의 문제와 생명의 존재 양식 및 기원과 진화 같은 것들이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현대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대조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전체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설정함과 동시에 생명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결국은 삶의 의미와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리라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 어떻게 배웠나요? 우리나라 중ㆍ고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교과목으로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이 있지요. 고등학교 때는 윤리, 중학교 때는 도덕이었던 것 같네요. 도덕이 무슨 뜻인가요? 사전에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이라고 나와 있네요. 그런데 도덕이라는 말은 사실 라오쯔(노자)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이라는 것 알죠? 인류 최고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번 보면 좋겠네요.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짧다는 겁니다. 그러나 읽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요. 하여튼 도덕이라는 말은 노자에서 나온 건데 그렇다고 도덕 시간에 노자의 철학을 배우지는 않았지요? 원래 덕이 먼저고 도가 뒤여서 '덕도'였는데 이를 노자의 주석가로 널리 알려진 왕삐(王弼)라는 사람이 도덕으로 순서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의 도덕경 주석이 지금까지도 최고로 꼽힌다는데, 17살 무렵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을 기죽게 만드네요. 요즘 언론에서 걸핏하면 천재라 하는데 참다운 천재란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겁니다.

한편 윤리란 '인간의 행위 규범' 쯤으로 풀이하는데 ethics를 번역한 것이죠. 그러니 윤리는 서양의 개념이고 도덕은 동양사상의 개념입니다. 원래 서로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개념이지요. 그런데 윤리 과목을 옛날에는 국민윤리라고 불렀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대학에서 필수과목이었지요. '국민윤리'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인데 영문성적표에는 National Ethics로 표기되더군요. '국가의 윤리'이니 '국민의 윤리'와는 반대의 느낌도 주네요.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인 시절이었는데,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군사독재 시대가 그렇게 오래 전이 아닌데...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전체 우주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타당한 해석과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제는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앞날의 주역으로서 학생들에게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교과목 내용보다는 한 차원 높은 삶의 의미와 방식을 성찰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합리적 과학정신, 곧 과학적 사고와 자연과학의 성과 및 호소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 이 글로 우주에 관한 강의는 끝을 맺고 다음 호부터는 '복잡계와 생명현상'이라는 큰 주제 아래 21강 복잡성의 의미, 22강 복잡계의 물리, 23강 생명현상의 이해가 이어집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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