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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부자나라에서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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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부자나라에서만 가능한가?

[새움의 '인도, 우리에게 말을 걸다'] <6> 인도 케랄라 주(州)의 대안적 발전모델

(* 이 연재의 원고는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인도의 사회운동들(가제)"의 원고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몇 년 사이 한국사회에서는 복지국가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바람직한 대안이라는 공감대가 급속히 퍼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참조할 모델로서 북서유럽 복지선진국들의 사례가 많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존에 소개된 사례들은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훨씬 높은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복지국가의 실현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즉 아직 우리 사회는 복지를 실현할 때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상당한 수준의 경제 발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복지정책은 실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흔히 인용되는 사례가 인도에 있습니다. 서구 사회를 쫓아가는데 안달인 우리 사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케랄라(Kerala) 모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도의 웨스트벵갈(West Bengal)과 케랄라 두 주(州)에서는 공산당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성공적인 발전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케랄라에서의 성취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통념과는 달리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높은 삶의 수준이 가능함을 보여준 케랄라의 사례는 '케랄라 모델'이라는 새로운 발전 전망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케랄라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차차 살펴보겠습니다.

케랄라 모델의 건설은 1957년 선거에서 인도공산당이 주 정부를 장악하면서 시작됩니다. 공산당은 1967년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하고 케랄라의 놀라운 변화를 주도합니다. 집권 후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1975년에 UN은 케랄라가 낮은 소득 수준에도 불구하고 기근을 해소하고 교육과 보건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여서 인도에서 가장 높은 기대수명과 문자해독률을 가진 주가 되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케랄라의 유아사망률은 미국의 흑인보다 낮았고 어린이들은 인도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키가 크고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갔습니다. 이런 삶의 수준의 상승은 불균등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도시가 농촌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좋은 조건을 누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케랄라에서는 이런 불균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여성차별과 카스트 간의 차별도 현저하게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케랄라는 남녀 차별과 그에 따른 성비 불균형이 극심한 인도에서 남성 대비 여성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주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기 전인 1991년에 케랄라는 90.6%의 문자해독률(인도 전체는 61%), 천 명당 13명의 유아사망률(인도 전체는 62명), 73세의 기대수명(인도 전체는 63세, 미국은 77세)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 인도 케랄라주 코치 변두리의 포구에서 어부들이 중국식 어망(Chinese Fishing Net)으로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케랄라주는 유려한 자연환경으로도 정평이 나있는 곳이다. ⓒ연합뉴스

케랄라가 인도의 다른 주들은 물론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보다 탁월한 사회적 성취를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연구자들은 케랄라의 자연환경이 우호적이었다는 점, 일찍부터 대외 개방의 중심지였다는 점, 강력한 민중운동에 기반한 공산당이 집권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중운동의 힘은 공산당이 집권하지 못했을 때에도 개혁 정책을 중단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노동자 농민 운동 외에도 반(反) 카스트 운동과 교육, 의료 등 기초적 공공서비스 확대를 목표로 한 사회운동들도 다수의 대중을 동원하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케랄라 모델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이 모든 성취가 도덕적이고 현명한 지배집단이 제공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싸워서 얻은 결과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대중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이들이라면 케랄라의 사례에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복지 정책의 실현은 위로부터의 시혜로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케랄라에서 민중들의 힘을 정치적으로 결집한 당이 인도공산당-맑시스트(CPI-M)입니다. 인도에는 합법적인 세 개의 공산당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당이자 케랄라의 집권세력이 되기도 한 당이 CPI-M입니다. 1980년부터는 CPI-M이 중심이 된 좌익민주전선(Left Democratic Front: LDF)과 회의당이 중심이 된 통일민주전선(United Democratic Front: UDF)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고 있습니다. 케랄라의 변화는 좌익민주전선이 주도했지만 통일민주전선 집권기간에도 어느 정도는 유지되었습니다. 민중운동의 강한 영향력이 이런 일관성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인도공산당은 어떻게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 케랄라 모델을 건설할 힘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1940년대에서 1950년대 동안에 케랄라의 인도공산당이 대중적 지지를 확대한 중요한 계기는 도서관 운동에 몰두한 것입니다. 1947년까지는 대부분의 마을에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도서관을 지어서 그냥 책만 갖다놓는 게 아니라 교육의 거점으로 삼습니다. 도서관을 짓고 교재를 갖추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공산당 활동가들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들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공산당 활동가들의 인기는 그들이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모습을 하층 계급들 속에서 직접 보여주면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민중 속에서 생활하면서 일상생활의 사회적 문화적 금기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상층 카스트 출신의 당원들도 하층 카스트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고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한국 진보, 좌파 지식인들이 요즘 보여주는 말만 앞세우는 엘리트주의적인 태도와는 사뭇 다르지요.

도서관 운동을 기초로 과학 대중화 운동이 전개됩니다. 1962년 창립된 '케랄라 인민과학운동(KSSP)'이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KSSP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맹퇴치운동, 댐 건설 반대운동, 집단농업 지원운동, 지역자원 지도화(resource-mapping)운동, 분권화를 위한 인민 캠페인 등 케랄라의 중요한 활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다음으로 대규모의 문맹 퇴치 운동도 벌입니다. 소규모의 자발적인 문맹 퇴치 운동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대규모의 문맹 퇴치 운동이 좌파정부 주도로 시작됩니다.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케랄라"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많은 공산당 당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촌락단위로 들어갑니다. 이 운동은 단순히 글자만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생활에 필수적인 내용을 담아 글을 가르치는 사회문화 전반을 개량하는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맹퇴치 사업은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주민들의 정치참여도 적극적으로 변모시켰습니다.

당은 이 외에도 공적 분배 시스템을 통해 사실상 거의 모든 가구에 주요 식품을 공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아동노동을 감소시켰고 5학년 이상을 마친 아이들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일터보다 학교로 보내는 것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점심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인도 전역에서 5학년을 마친 아이들의 비율이 1991년 기준으로 26%인데 비해 케랄라에서는 이 비율이 82%에 이릅니다. 또한 1980년 CPI-M정부는 농업노동자, 노인, 과부를 위한 연금을 도입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인도공산당은 더 이상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하는 당이 아니었습니다. 서유럽식의 사민주의에 입각해 인도 상황에 맞는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당면한 과제로 삼고 실제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낮은 경제수준과 높은 복지 수준의 공존이라는 특이한 모델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델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산은 인도 케랄라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약화되고 사회적 자본 이론에 근거한 새로운 케랄라 모델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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