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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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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

[김민웅 칼럼] KBS의 공익적 존재가치 VS 괴벨스가 필요한 정권

패배는 역사적 범죄다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은 역사적 범죄다. 이기는 것도 의무고 책임이다. 촛불광장의 시민들이 지난 40일 이상의 집결을 통해 직접행동으로 의사를 표시한 이후, 일단 다음 단계의 진화에 필요한 숨고르기에 들어가자 이를 역공의 순간으로 판단한 세력이 있다. 반전을 위한 절호의 계기가 왔다고 본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권의 대반격은 시작되었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도처의 진지장악과 선택적 토벌작전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대한 안이한 대응은 패배의 지름길이며, 견고한 의지를 끊임없이 내뿜는 것은 승리의 덕목이다.
  
  권력과 진실의 싸움은 언제나, 누가 국가의 운명을 주도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오직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분주한 권력과 자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은, 먼저 누구의 말이 이 사회의 영혼을 움직이는가에 달려 있다.
  
  누구의 말이 이 사회의 영혼을 움직일 것인가?
  
  바로 그런 까닭에 말을 지배하는 권력은 모든 지배세력이 바라는 바다. 언론과 방송은 그 말의 진로를 가늠하는 현장이다. 아니나 다를까, 광우병 쇠고기 정국에서 출발한 촛불항쟁의 진화는 이제 언론의 주도권을 놓고 일대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명박 정권은 오늘의 정국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볼 때 꼬인 것은 언론 때문이라고 여겼고, 이는 막대한 투자가 드는 홍보 전략과 인사권을 기본수단으로 삼는 언론통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사고했다. 따라서 언론에 대한 권력의 지배전략은 10 퍼센트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여론 지지율에 턱걸이를 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될 영역이 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대충 보아도, 이명박 정권은 민심에 대한 진솔한 반성이 전혀 없는 권력이다. 다만 반대세력을 어떻게 하면 빠르게 솎아내는가에 대한 전술추진에 주력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만 지나면 이른바 "꾼"만 남고, 시민들은 빠져나갈 것이라고 보고 타격의 순간을 노리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괴벨스가 필요한가?
  
  따라서 적당히 애매하게 포장된 대책을 내놓고 국민들을 기만하며, 다른 한쪽으로는 자기 사람 심기와 저항세력에 대한 조직적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그로써 시민과 운동진영의 분리작전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촛불집회의 왜소화를 위해 매우 중대한 관건이 된다.
  
  이들에게 언론을 장악하는 것은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한 최대의 전략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최시중은 바로 이 수단을 얻기 위한 이명박 정권의 칼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의 괴벨스는 과연 최시중이 될 것인가?
  
  그에 대한 언론계의 반발과 저항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이유는 그가 다만 언론의 재편을 통한 권력의 안정적 지배를 꾀하는 인물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정국 전반에 걸친 위력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언론은 그 사회의 두뇌 회로, 프로파간다의 참호가 될 수 없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회의 두뇌 회로다. 이걸 조정 관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사회의 영혼을 쥐락펴락하는 힘과 통한다. 매일 무엇을 접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는가에 따라 그 사회의 진로는 달라진다. 사회적 담론이 무엇으로 결정되는가에 따라 권력의 운명이 바뀐다.
  
  언론과 방송이 권력의 입이 되는 순간, 권력은 이 사회를 압도하는 확성기가 된다. 권력의 지휘 아래 놓이게 되는 언론과 방송은 그렇게 해서 정치적 선전인 프로파간다의 진지로 자신의 가치를 증폭시켜 나간다. 한 사회의 두뇌 회로를 마비시키고 조작하는 체계는 그렇게 뿌리를 내려간다.
  
  파시즘이 자라는 방식
  
  여기서 인간의 존엄한 권리와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파시즘은 자란다. 폭력의 일상화가 진행된다. 그 폭력은 다만 물리적 폭력에 한정되지 않는다. 권력의 밀어붙이기는 거침없어지며 시민 민주주의는 하루하루 점점 더 위태로운 지경에 몰려 질식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전열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때 절체절명의 때다. 촛불항쟁의 힘을 희망적으로 신뢰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의 반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역사 속에서 목격하게 되는 모든 파시즘의 등장에는 이들에 대한 진보진영의 과소평가가 한 쪽에 자리 잡았다. 진보세력의 단결은 그래서 절박하다. 그걸 바탕으로 시민 민주주의의 요구와 한 치의 틈도 없이 결합하는 것은 마땅한 책무다.
  
  KBS 지키기가 의미하는 것
  
  KBS를 표적으로 각종 정치적, 법적 작업을 벌이는 것은 이 권력을 시중들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참호를 구축하는 작업에 다름이 아니다. 정연주 사장의 진퇴 문제는 그래서 다만 한 개인의 진퇴로 끝나지 않는다. 그를 버텨내는 힘이 그 개인의 의지로 멈춰있다면 그것은 KBS 사장 정연주의 욕망이라고 지탄당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KBS 정연주 사장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정연주 사장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KBS는 언론의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시험대적 보루가 되고 있다. 여기서 밀리면 그 다음은 자칫 파죽지세다. MBC는 바람 앞의 촛불이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날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로 역사의 장벽을 뚫고 나갈 의지의 열정적 분출이 절실하다.
  
  야만의 습격을 대처하는 법
  
  자본의 탐욕에 이 사회의 목숨을 맡기게 되는 신자유주의 파시즘을 막아내지 못하면, 야만의 시대가 온다. 광우병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그 야만의 한 증거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는 순간, 우리는 모두 포위될 것이다.
  
  야만의 습격에 대한 대답은 오직, 다시 뜨겁게 모이는 것뿐이다. 어떤 권력도 억압할 수 없는 힘을 우리는 창출할 수 있다. 빼앗긴 나라는 그렇게 되찾는 것이다. 광장의 시민민주주의는 우리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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