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는 주로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 지역에 하사되었는데 이 때 브라만을 따라 농민, 장인 등이 그곳으로 함께 이주하였고 그들에 의해 새로운 주거지가 널리 개척되었다. 인도 전역에 광범위한 농경 확장과 이주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 간 브라만은 여러 차원에서 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적으로 브라만은 이미 그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살아 온 '미개' 부족민과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문명'의 힘을 가진 브라만은 그 부족민을 복속시켰고 그 위에서 새로 확보된 토지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면서 그 토지 위에서 지금까지 실제 경작을 해 오던 그 부족민은 브라만 중심의 사회 질서에 통합되었다.
그렇지만 양자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통합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브라만은 '문명'의 기반이 되는 카스트, 남녀, 장유의 차별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질서 이데올로기를 이곳에 세우려 하였다. 하지만 부족민들이 그러한 세계관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동의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브라만들은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차원에서 딱딱한 의례나 난해한 이론을 배제하고 쉬운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보급하였다.
쉬운 이야기란 베다에서 체계화 된 카스트 사회 구조론, 제사론, 우주론 등을 부족민들에게 친숙한 자연 환경이나 숭배물에 맞춰 변형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다 부족민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의 토착 신앙을 모두 포함시켰다. 그 과정에서 적당한 변형이 일어난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브라만교에는 세상을 창조하는 브라흐마, 세상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비슈누, 세상을 징벌하고 파괴하는 쉬바 이렇게 세 신이 중심축을 이루었다. 창조라는 게 보존을 하기 위한 것이고 보존을 하기 위해서는 파괴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파괴라는 게 새로운 창조라는 생각을 하는 그들은 결국 브라흐마가 비슈누고 비슈누가 쉬바고 쉬바가 브라흐마고 하는 식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지역의 부족이 멧돼지를 숭배한다면 그 멧돼지 신은 비슈누의 한 화신으로 - 요즘 젊은이들이 컴퓨터에서 자기 자신을 대신해서 내세우는 가상의 존재로 '아바타'를 사용한다. 이 '아바타'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끄리뜨어로 '화신'을 뜻한다 - 편입을 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부족이 뱀을 숭배하면 그 뱀은 쉬바를 따라 다니는 신으로 편입시키고 하는 이런 식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고대 인도가 행한 정복의 방식을 알 수 있다. 정복을 해가는 과정에서 브라만은 부족민을 자신들의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 공존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 안에서 브라만은 정치경제사회의 주도권은 가지되 부족민의 신앙 공간은 허용해주면서 문화적으로 공존의 틀을 만든 것이다. 그들의 정복 방식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유럽인이 원주민들을 정복하면서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초기 유럽인들이 풍토병에 시달리면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들에게 작물 재배와 질병 퇴치의 방법 등을 가르쳐주었지만 돌아 온 것은 무력 정복과 학살뿐이었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공존을 할 수 있는 틈은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브라만교 신앙과 부족민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이 쉽게 통합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브라만교는 이미 우주를 상징적으로 축소해 놓은 제사를 중심으로 깨달음, 속죄, 구원, 윤회 등과 같이 관념화되어 있는 반면 하루하루를 생산이라는 실재의 세계에서 사는 부족민은 다산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보다 기복적이고 물질 추구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질 추구의 근본을 여성성에 두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왜 여성인가? 우리는 세계 곳곳의 자료를 통해 농경이 정착한 신석기 시대 이후 여성은 생산의 원천으로 상징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씨를 받아들인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생산물이 나온다는 메커니즘이 땅이 씨를 받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생산물이 나온다는 농경 생산의 원리와 동일하게 인식되었다. 그래서 여성은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생산 메커니즘의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인식되면서 다산의 상징이 되었다.
생산 숭배의 신앙은 비단 부족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슈드라에게도 해당되었다. 당시 슈드라는 도시가 몰락하고 도시의 카스트가 와해되면서 농촌으로 모이게 되고, 봉토가 넓게 형성되면서 농업과 수공업을 통해 생산의 근본을 담당해 그들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갈수록 커갔다. 그들은 그 동안은 카스트 체계 내에서 유일한 생산 계급이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소외된 계급이었지만,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결국 슈드라와 부족민들의 커진 영향력을 무조건 억누를 수만은 없었던 브라만은 그들에게 적당한 문화적 자리를 내주는 양보를 함으로써 통합을 이룬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여러 가지 이름의 모신, 성(性) 의례, 사당, 치병과 기복 의례 등이 브라만교 안으로 들어와 정당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하였다. 심지어는 모든 진리란 물질 혹은 육체 안에 있고 물질 혹은 육체를 벗어난 관념, 의례, 의식은 모두 허위이며 그 안에서 제사를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거나, 카스트를 기초로 하는 불평등과 그것을 대변하는 법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조차도 허용하였다. 브라만은 그들 스스로가 물질 기반을 다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반제사, 반카스트의 외침이 한낱 공허한 구호 내지는 그들의 자위 수단으로만 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피지배층 인민의 급진적인 세계관을 브라만 지배층이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고대 사회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사회적 갈등은 원만히 융합되었다. 그것은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브라만이 커져 가는 사회적 불만을 껴안되 기존의 법과 도리 (즉 다르마와 카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산스끄리뜨 체계 안에다 일정한 자리를 내줌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사회 바깥 지대의 불안 세력으로서가 아닌 사회 안의 피복속 세력으로서 공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토록 성스럽고 신성한 산스끄리뜨 경전 안에 불경스럽고 황망한 여신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여신이 최고의 신인 비슈누나 쉬바까지도 발 아래 두고 지존 위에 등극하는 일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밀교의 세계다. 관념이 아닌 물질의 세계를 찬양하고 그러다 보니 여성의 성적 원리가 궁극으로 추앙받는 세계관, 밀교. 그 안에서 이제 쉬바도, 비슈누도 여신의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하고 애걸하는, 우주 최고의 지존무상의 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 지존무상의 여신 가운데 대표적 존재로 '깔리'라는 여신이 있다. 깔리는 한 손으로는 칼로 잘라 낸 머리를, 또 다른 손으로는 그 머리에서 떨어지는 피를 받는 해골로 된 잔을 들고 있는 형상을 한다. 그리고 목에는 칼로 잘라 낸 머리들을 이어 만든 목걸이를 두르고 있고 허리에는 칼로 잘라 낸 손들을 이어 만든 치마를 걸치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항상 피를 갈구하는 검붉은 혀로 상징된다. 또 다른 지존무상의 여신 두르가는 악을 응징하는 여신으로서 모든 힘을 소유하는 존재다.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두르가는 백전불패의 전사이다. 또 다른 여신 락슈미도 마찬가지다. 악마를 향해 가차 없이 처단의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용맹스러운 것을 넘어 가히 섬뜩하기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러한 잔인한 모습은 슈드라, 불가촉민, 부족민, 여성과 같은 생산에 직접 담당하면서도 생산물을 다 빼앗기고 핍박을 받으며 사는 피지배 계층의 인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에 충분하였다. 생산을 직접 담당하는 그들은 그 지존무상의 여신의 직접 보호 아래 있고 그들을 괴롭히는 모든 문명과 문화에 대해 그 여신은 처절하게 응징을 해준다는 종교적 행위가 바로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그 카타르시스는 환상 속으로의 현실 도피일 뿐이었다. 세상의 물질 구조는 변화하지 않은 가운데서 핍박 속에서 좌절당하는 사람들은 현실 사회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다만, 신화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어지러운 약육강식의 질서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인도 중세의 철저한 계급 사회에 속박되어 있던 인민들이 무기력한 사회적 현실에서 이상적 세계로 도피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상주의 종교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지배자들에 의해 강화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대 말 중세 초기의 인도에서 깔리, 두르가, 락슈미와 같은 여신이 신앙의 세계에서는 지존무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모습이 사회에서 추앙받는 여성의 표본이 될 수는 없었던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브라만이 신앙의 세계에서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세계를 용납해주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의 세계 안에서 뿐이었다. 그러한 용납이 신학의 불일치와 부조화를 발생시키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갈등없는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양보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비록 신학적으로는 불일치를 나타내겠지만 베다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카스트 사회 구조의 핵심은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화와 신앙의 세계에서는 반제사, 반관념, 반카스트의 세계를 허용해 주었지만, 카스트 사회 질서와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맥락에서는 사회 질서가 더욱 강화되었다. 브라만은 끊임없는 담론을 통해 여성성은 독립성이 아닌 모성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으니,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커서는 남편에게,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규정이 힌두 최고의 법전인《마누법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한국의 경우와 똑같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양자가 본질적으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동일하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일치하는 것이 그리 놀랄만한 것도 아니다.
이 사상에 따라 이상적인 여성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고, 남편이 살아 있어야 하고, 아들을 낳아 기르는 여성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힌두 사회에서 여성이 추구하는 상은 남편에 복종하고, 집안에 복을 불러 오는 '착한' 여성이고, 가정에 질투와 악을 끌어들이면서, 남편과 가정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여성은 악의 화신이라는 딱지를 달아주었다. 결국 신앙의 세계에서 여성의 위치는 상승하였지만 실재 사회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차별적 사회 구조는 강화되고, 그 안에서 여성을 비롯한 차별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는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이상주의 이데올로기는 현실 포기일 뿐이다. 종교의 이상주의도 그렇지만 사회 운동의 이상주의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마르크스주의 (혹은 공산주의)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이념도 포함될 것이며 이슬람 신정 국가 건설도 포함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특정 이상주의에 함몰하여 진행하는 사회 운동은 결국 거대한 보수 사회 유지 메커니즘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 적어도 인도는 물론이고 전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 소위 좌파 운동 진영조차도 그 이상주의 이념의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웃지 못 할 이상주의의 비극은 90년대의 주사파 파동이었을 것이다. 분단, 미국의 독재 정권 지원, 12.12 쿠데타와 5.18 민중항쟁의 유혈 진압 등과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소위 운동권 진영에서 친북은 반미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신성불가침의 구역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북한'은 엘리아데가 말하는 영원의 회귀이자 원초적 공간인 신화의 세계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그들과 동조하고 그들이 세운 이념 위에서 말하는 것은 가장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세력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그 신화는 깨져 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에서는 그 사상을 바꾸지 않고 있다. 정말 그토록 날카롭고, 논리적이고, 양심적인 그들이 왜 아직도 이 사회에서 '민족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것일까? 꿈꾸는 사회 변혁에 실패하고 좌절하여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그 안에서 자위의 카타르시스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영원 회귀의 공간 그 유토피아 세계 안의 카타르시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보수 진영이다. 그것은 보수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그 민족자주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진정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에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는 운동이 사회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때 소위 보수 진영에서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만약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누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고 다니면 어떡할 것인가 라고.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어떡하긴 뭘 어떡한단 말인가? 가만 두면 그 혼자 미친 사람 취급받을 텐데. 아직도 한국 사회가 북한이 침투시킨 간첩 몇 사람으로 인해 봉기가 일어나고, 결국에 적화통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사회 변혁에 좌절당한 자가 갖는 이상주의의 카타르시스보다 권력욕에 눈 먼 자가 갖는 광기에 더 침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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