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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 밤 8시, 거리 청소년 기다리는 밥차"

거리 청소년들의 힐링버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

매년 가정과 학교를 떠나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지난해 가출한 청소년은 경찰 추산 2만 9281명이다. 신고되지 않은 경우까지 합하면 매년 10만 명 이상의 청소년이 집을 나오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청소년 상담센터들도 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곳에 이동 쉼터를 마련하는 등 직접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7월 첫 활동을 시작한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이하 EXIT)는 경기도 안산과 부천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이동 쉼터이다.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과 함께걷는아이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EXIT는 버스에 밥솥과 싱크대를 설치하고, 일주일에 두 번 거리에서 청소년을 직접 만난다. 목요일에는 안산 중앙역(밤 8시~새벽 1시), 금요일에는 부천 북부역(밤 8시~새벽 2시)에서 활동한다.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청소년이 EXIT를 이용한다.

'청소년을 삐끼 쳐 오다'

2012년 12월 27일 오후, EXIT 활동가 이나경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이날 밤 열릴 'EXIT 송년 파티' 준비로 분주했다. 행사에 쓸 물건 준비 외에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송년 파티 참석을 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2012 EXIT 송년 파티-함께해요, 우리~"가 노래 <슈퍼매직>의 "놀자, 놀자 더!"라는 외침 속에 밤 8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들꽃청소년센터 강당에서 시작됐다. 송년 파티에는 17세에서 19세 청소년 40여 명이 모였다.

▲ "2012 EXIT 송년 파티-함께해요, 우리~" ⓒ프레시안(이명선)


햄토리 복장을 하고 송년 파티 사회를 본 이 씨는 "오늘 온 친구들이 모두 거리 청소년은 아니"라며 "가출 경험이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EXIT에 오거나 거리로 나오는 청소년 중 상당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며 "송년 파티에 참석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들 대부분은 이 씨를 포함한 활동가 네 명의 '아웃리치(out-reach)'로 EXIT를 찾은 청소년이다. 아웃리치는 고정된 위치의 쉼터에서 청소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거리로 직접 찾아 나서는 행위 또는 이동 쉼터를 일컫는 말이다.

아이들은 '아웃리치'를 자신들만의 언어로 '삐끼 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 씨는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에게 '심심하면 밥차로 놀러 와'라고 권하는데, 아이들은 이것을 '삐끼 치는 거잖아요, 아이들한테…'라고 말한다"며 "아이들도 어려운 단어인 아웃리치를 점차 익숙하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여름 그는 청소년과 함께 해변 아웃리치를 기획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들은 줄곧 이 사회가 가하는 폭력에 시달려 왔다는 점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 그들뿐만 아니다. '공부를 못하는 자신', '잘하는 것 없는 자신', '나쁜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거리의 청소년들은 묻곤 한다. 공부와 순종, 돈 이외에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가치는 없느냐고…."

- <오늘의 교육> 5·6월호 "그들은 괴물이 아니다" 중

"저깟 것들이 뭔데?"

학교는 10대 청소년을 위한 거의 유일한 사회 시스템이다. 따라서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뒀다고 하면, 사회는 이들을 '불량하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7년여간 거리 청소년을 만나 온 이나경 씨는 "그들이 거리로 나오는 데에는, 그리고 거칠게 그들이 존재를 표현하는 데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오롯이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학교를 나오기까지는 개인마다 과정이 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있는데, 학교에서 공부를 못했다. 지방에서 현장 노동을 하는 아빠와 한두 살 위 언니와 사는데, 언니마저도 집에 잘 안 들어온다. 혼자 집에서 지내다 보니 성적은 떨어지게 되고, 위생 상태도 안 좋아 꼬질꼬질했다.

이 친구에게는 그저 같이 어울릴 딱 한 명의 친구만 있으면 됐다. 한번은 하루 종일 이 친구를 따라다녀 봤다. 한 명의 친구와 함께 상점 거울 앞에서 섹시 댄스를 연습하고, 힘들면 앉아서 담배 피우고…. 그것 말고는 크게 하는 일이 없다. 심지어 둘 사이 대화도 거의 없다.

그렇게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자연스레 귀가가 늦어지고, 다음날 학교에 지각하게 되고, 선생님께 혼나고, 자주 혼나니까 반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이런 생활 속에서 이 친구가 갖게 된 생각은 '저깟 것들이 뭔데?'였다. 결국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에게도 욕을 하게 되고, 학교 폭력에도 휘말리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를 그만두는 청소년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이 씨는 "학교에서 떠밀려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자퇴해야지'라고 생각하고 학교를 나오는 청소년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저 학교에 가는 게 싫어서 하루 이틀 거리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정학 처리가 돼 학교 밖으로 밀려난다는 설명이다.

학교에 안 가게 되니 밖으로 쏘다니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이들은 제일 먼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을 돌아다닌다. 안산과 부천 지역 청소년은 종종 의정부나 천안 등을 다녀온다. PC방에서 채팅으로 만난 친구와 의견이 맞으면, 만날 약속을 하고 다른 지역에 다녀오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세상에 나오면 할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들은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청소년들이 인식하는 가출은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탈출구나 그 결과이다. 그러나 사회는 가출을 범죄로 들어가는 초기 과정으로 읽는다. 그래서 청소년 가출을 '일탈'로 그리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 <오늘의 교육> 5·6월호 "그들은 괴물이 아니다" 중

거리 청소년, 10명 중 8명은 이동 쉼터 도움 받아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이 거리보다 더 폭력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폭력이 일상화된 가정뿐만 아니라, 돌봄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가정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을 최전방에서 돌보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EXIT인 셈이다.

부천 지역 청소년단체가 지난 8월 6일에서 11일(6일간), 밤 10시에서 새벽 1시 부천역을 중심으로 배회하는 청소년 2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의 청소년이 움직이는 청소년센터와 같은 거리아웃리치(이동 쉼터)의 도움을 받았다.

▲ 부천시청소년유관기관네트워크 푸른모임 주관으로 부천거리청소년전담팀이 8월 초 조사한 내용이다. 부천거리청소년전담팀은 부천 북부역 거리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천지역 아웃리치 단체 및 활동가, 공공기관, 경찰서 등이 모여 만든 곳이다. 부천청소년상담복지센터, 부천청소년성문화센터, 부천모퉁이청소년쉼터, 부천시청소년수련관, 들꽃청소년세상 움직이는청소년센터, 물푸레나무공동체가 참여했다.

이렇게 아웃리치를 통해 쉼터를 접한 청소년이 1개월 이상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경우 단기쉼터로 이동하게 된다. 이곳에서 상담원과 거듭된 상담을 통해 가정 복귀를 결정하거나, 장기쉼터·그룹홈 등으로 연계된다. 자립을 위한 취업 준비에 나서는 청소년도 있다. 그러나 가출 청소년 대부분은 가출팸('가출패밀리'의 줄임말로 또래들끼리 원룸·모텔·쪽방·고시원 등에서 기거하는 형태)이나 친구 집 또는 선배 집에서 혼숙한다.

이나경 씨는 "가출 청소년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진 듯 보이지만, '어떤 사람이 이 공간을 꾸리느냐, 아이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무의미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선 조사에서 거리 청소년의 28.1%는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다음으로 '정서적 지지'라고 답한 경우는 20.8%였으며, 구직활동(17.7%), 쉽게 갈 수 있는 병원(13.5%), 새로 다닐 수 있는 학교(8.3%), 취업에 필요한 기술 훈련(6.3%) 순이었다. 이는 청소년에게도 주거권, 노동권, 건강권, 교육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외침이다.

한편, 이 씨는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가해 학생들이 주로 거리를 방황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학교 폭력 피해 또는 가해 학생들이 EXIT를 찾아와도 이들이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학교나 사회 모두 '일진'으로 대변되는 강자와 대결해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 버스 안에는 조리 기구와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어 늘 따뜻한 식사가 제공된다. 비디오를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편의 시설도 갖춰져 있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


"고통의 시간을 함께해주는 게 우리 몫"

EXIT와 같은 쉼터를 드나드는 청소년이 모두 불량하거나 모가 난 것은 아니다. 이나경 씨의 아웃리치로 지난해 4월 EXIT와 인연을 맺은 최현준 군은 내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최 군은 "EXIT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면서"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다. 그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EXIT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러 올 것이라고 했다.

'안산 마당발'이라고도 불리는 최 군은 송년 파티에도 친구들과 함께 참석했다. 이들 모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EXIT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중 한 명은 "EXIT에서 처음으로 '존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며 "'꼰대' 같은 어른이 아닌 어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나경 씨는 "학교를 그만두는 순간, 거리를 배회하는 순간, 불량 청소년이 되는 게 아니"라며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의 편이 돼 줄 이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찾는다는 얘기다.

이 씨는 "청소년이 한번 밥차를 찾았다고 해서 바로 쉼터로 연계하지는 않는다"며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시간 개념이 없는 아이들조차도 매주 목·금 밤 8시 밥차가 나타나길 기다린다는 것이다.

"가정 복귀나 쉼터 등에 대한 이야기를 '툭툭' 던지며 아이들이 '꼭' 무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시점에 '가자, 가자' 해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다른 방법을 취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고통의 시간을 함께해준다. 거리 청소년이 '내가 선택할 시점이 됐다'라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우리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EXIT, '밥차'는 2013년 1월 3일 목요일에도 안산 중앙역 앞에서 청소년을 맞는다"며 "새해에는 더욱 많은 청소년이 힐링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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