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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 살리기' 고군분투 하는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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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6.15선언 살리기' 고군분투 하는 DJ

MB정부 들어 처음 맞는 6.15의 풍경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다른 곳으로 돌렸던 적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2006년 10월만큼 결정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은 핵실험 당일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 계속 주장하기는 어렵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격분, 각종 강연과 기자회견에서 "핵실험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핵 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여론전을 맹렬히 폈다.

핵실험 다음날인 10일 노 대통령의 초청으로 전직 대통령 오찬 모임에 다녀온 김 전 대통령은 전남대 강연을 위해 광주에 내려가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햇볕정책이 무슨 죄가 있냐"고 강하게 따졌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한 인사는 10일 밤 광주의 분위기를 훗날 이렇게 전했다.

"난리가 났더라고. 소위 가신들은 DJ가 화나면 말리지 못하고 그냥 떨고만 있어. 난 좀 늦게 도착했는데 '빨리 들어가 대통령 좀 말려보라'는 거야. 그래서 방에 들어가 보니 정말 화가 잔뜩 나 있더라고. 그래서 '그러지 말고 청와대로 전화해 보시라'고 해서 겨우 진정시키고 청와대를 연결했지."

그리고 다음날인 11일 전남대 강연에서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 실패했다는 해괴한 이론이 돌아다닌다"며 "(북한은) 미국이 못 살게 굴어서, 살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핵을 개발한다고 그런다"고 일갈했다. 그 뒤로도 그는 서울에 주재하는 외신기자들을 동교동으로 불러 모아 똑같은 메시지를 반복해 말했다.

그의 집중적인 여론전이 핵실험이라는 대형사고를 친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대북 포용정책을 버리고 예컨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 참여하는 등 노무현 정부가 대북 압박·제재 모드로 전환하는 것을 막는 강한 제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뒤 다시 "평화적 해결"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PSI에 전면 참여해야 한다는 정부 일각의 의견을 가라앉혔다. 그 후 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결의안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10월 말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 12월 6자회담 재개, 다음해 2월 '2.13합의'로 이어지는 긴장 완화 국면이 펼쳐졌다.

DJ는 이번에도 물길을 돌릴 수 있을까
▲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어쩌면 제 생각과 똑같냐'는 말을 다섯번이나 되풀이했다는 게 김 전 대통령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내놓은 정책은 동교동의 설명과는 사뭇 다르다. 이 대통령은 DJ의 집중적인 설득을 끝내 내칠 것인가 ⓒ연합뉴스

6.15공동선언 8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크게 치르고 각종 행사를 주관하거나 참여하는 동교동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2006년 10월이 재현되는 듯한 인상이다.

올 6.15 행사는 지난달 30일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부터 시작했다. 이 회의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미 사회과학연구소의 리언 시걸 등 DJ 측 인사들이 여럿 참여했다. 그 후 지난 8일에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 <피스메이커>가 출간되어 6.15정상회담 전후의 긴박했던 상황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김 전 대통령은 10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행사에 직접 나와 강연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인 박지원 당시 문화광광부 장관은 다음날 정상회담이 성사된 막전막후의 생생한 이야기를 공개하며 6.15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김대중평화센터는 12일 서울 63빌딩에서 대대적인 8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강연했고, 750여명의 각계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DJ 측이 6.15선언 5주년도, 10주년도 아닌 8주년 기념행사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2000년 6.15선언이 탄생한 후 처음으로 포용정책 대신 '엄격한 상호주의'를 표방하는 정부가 들어선 첫 해에 맞는 6.15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6.15선언과 그 액션플랜이라고 할 수 있는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에 대해 '전면적으로 계승하지도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3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만을 강조하면서 두 선언은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6.15선언을 적극 띄우는 것은 그저 자신의 치적을 다른 정부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DJ 측 인사들의 말이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6.15선언 이후 최악의 경색 국면이라는 증거는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문제는 남북관계가 핵 문제와 관련해 북미 사이에서 불고 있는 훈풍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고, 이게 계속된다면 향후 한반도 정세변화에 있어 한국 정부는 주도권을 잃은 채 북미간의 합의에 돈만 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은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과 10.4선언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한 인사는 북한 사람들이 "쌀도, 비료도 다 필요 없고 그냥 6.15만 계승하겠다는 말만 하면 더 이상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에게 6.15선언의 계승을 선언하라는 DJ의 톤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방문에서 "이명박 정부도 햇볕정책을 계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희망 섞인 말을 했던 김 전 대통령은 10일 특강에서는 "6.15선언과 10.4정상선언을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선언해서 북한에 믿음과 회담 복귀의 명분을 줘야 한다"고 직설화법으로 말했다.

12일 8주년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아예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계승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남북정상이 직접 서명하고, 실천해온 역사적인 문서를 다음 정부가 묵살한다면 남북관계에 신뢰를 쌓을 수 없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북핵 문제의 진전으로 지구상 유일의 냉전구도가 흔들리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서 DJ의 '고군분투'가 다시 한 번 남북관계의 물길을 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면적인 민심이반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관계 같은 '사소한' 일에 관심 둘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북한 문제라면 이제 고개부터 돌려 버리는 냉랭한 여론도 그의 외로운 투쟁에 커다란 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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