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厤(력)/兼(겸)/麻(마)/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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厤(력)/兼(겸)/麻(마)/里(리)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46>

나무를 그린 木(목)을 둘 겹치면 '수풀'인 林(림)이고 셋 겹치면 '빽빽하다'인 森(삼)이다. 이 林·森의 발음은 木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會意(회의) 구조의 글자가 과연 있었는지에 대해 매우 懷疑(회의)적이지만, 이런 방식의 중첩자에 글자가 없는 개념을 배당하는 원시적인 회의자는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어서 木과 林·森 사이의 발음 차이가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연관된 발음이라는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잡힌다.

秝(력)이라는 글자는 벼를 그린 禾(화)를 겹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쓰인 글자였는지는 분명치 않고, 歷(력)·曆(력)의 구성 요소로 낯익을 뿐이다. 그 중간 단계인 厤(력) 역시 존재가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秝은 또 兼(겸)에도 들어 있다. 지금 모습으로는 알아볼 수 없지만, <그림 1> 같은 옛 모습을 보면 ⺕로 변한 又(우)를 제외한 부분이 秝이다. 그래서 秉(병)은 벼 한 포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고 兼은 두 포기를 함께 잡고 있는 모습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주목되는 건 발음이다. 兼 계통의 廉(렴)은 林과 비슷한 발음이고, 謙(겸)·嫌(혐)은 禁(금)·森과 가깝다. 歷·曆으로 이어진 秝 역시 廉과 받침만 다르다. 秝 계통 글자들과 林 계통 글자들의 발음이 비슷한 범위에 몰려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서 木과 禾의 옛 모습을 비교해 보자(<그림 2, 3>). 지금도 그렇지만 禾는 아랫부분이 완전히 木과 같고, 위에 작은 삐침획이 하나 더 들어 있을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미 없는 획일 수도 있으니 禾 자체가 木자를 가차해 쓰다가 독립했다고 볼 수도 있고, 설사 별개의 글자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 글자들이 다른 글자의 구성 요소로 들어갈 경우 작은 점 하나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림 4> 같이 林과 又를 합친 듯한 兼의 모습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秝-厤이 독립된 글자로서의 존재가 분명치 않고 그 파생자들의 발음이 林 계통 글자들의 발음과 비슷한 분포를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禾와 木을 요즘 같은 활자시대처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면, 秝은 林의 변형이라고 보는 게 좀더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秝 계통 글자들에 대한 기존의 설명들은 모두 수정돼야 한다. 우선 秝은 별개의 글자가 아니라 林의 변형이니 허구의 글자인 셈이고, 厤이 벼랑 밑 또는 집안에 벼를 가지런히 늘어놓은 모양이라는 얘기도 엉터리다. 歷은 갑골문이 <그림 5>처럼 '秝+止' 형태여서 늘어선 벼 사이를 '걷다'에서 '지내다'가 나왔다고 하지만, 발상의 엉성함은 넘어가더라도 최소한 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글자다.

한편 厤은 부수자의 하나인 麻(마)와 비슷한 모양이다. 厂(한)=广(엄)이니 윗부분은 같은 요소로 볼 수 있고, 아랫부분도 秝=林이라면 麻의 아랫부분과 거의 비슷하다. <그림 6>이 麻의 모습이니 厤=麻라는 게 전혀 엉뚱한 상상은 아니다. 발음 역시 초성 ㄹ/ㅁ은 쉽게 변하는 사이여서 받침만 빠진 셈이다.

林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글자가 里(리)다. 里는 田(전)과 土(토)를 합친 글자로 본다. 경작지(田)와 주거지(土)를 합친 글자라고 하는데, 田·土가 그렇게 구분되는 개념도 아니고 '마을'이 그런 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개념이라는 얘기도 어설프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파생자 하나가 필요하다. 野(야)는 里와 予(여)를 합친 글자다. 里가 의미, 予가 발음이겠다. 그런데 野의 옛 모습으로 埜가 있다. 楙 밑에 土를 받친 형태도 있다. 나중 것은 '埜+予'라고 할 수 있으니, 埜는 野의 옛 모습이라기보다는 里의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里에서 田 부분을 林으로 바꾼 게 埜이다.
별개의 글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田이 林의 변형이라면 어떨까? 현재 모습이 많이 달라 보이지만, 埜가 野와 연관이 있는 글자라고 보면 埜=里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里는 본래 '田+土'가 아니라 '林+土'가 변한 것이다. '田+土'에서는 발음기호를 찾기 어렵지만 '林+土'라면 林이 발음기호일 수 있다. 받침만 떨어져나간 것이다.

里를 구성 요소로 지니고 있는 글자 가운데 埋(매)가 발음이 조금 동떨어진다. 그러나 그 발음은 여기서 또 다른 林 계통 글자로 봤던 麻와 비슷하다. 埋·麻의 초성은 다시 木의 초성과 같다. 木의 발음이 한 바퀴 돌아 林 계통으로 보이는 埋·麻에서 나타난 셈이다. 木의 발음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였던 林·森 등의 발음이 木과 연관이 있음은 이런 발음 범위를 생각하면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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