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길이 있었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가지 않은 길'로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노무현이 했던 것과 반대로만 하면 만사형통할 줄 알았다. 그러나 출발점이나 그 지향점은 달라도 그 걸음걸이나 하는 짓은 두 정권이 난형난제(難兄難弟)라 할 만큼 너무도 닮았다. 거칠고 서툰 것이 그렇고, 가볍고 천박하기가 또한 그렇다. 분별없는 천방지축이나 온갖 수선 다 떠는 그 소란스러운 품세까지도 꼭 닮았다.
코드로 패거리 짓는 일이나 부자로 편을 가르는 것이 닮았고, 문제가 생기면 언론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배후세력 또는 지난 정권에 그 탓을 돌리는 것까지 쏙 빼 닮았다. 심지어 로드맵이니 프렌들리니 영어를 좋아하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잘할 것 같다는 기대는 무너진 지 오래요, 해도 너무 못하니 차라리 노무현 정권 때가 나았다는 이야기조차 나오고 있다.
'6.3사태'와 '6월 민주항쟁' 연상
많은 사람들이 '6월의 거리'를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촛불시위가 두 달째 계속되고 있는 뒤에 그 촛불이 날로 커지고 있다. 그들의 요구로 쇠고기재협상에서 '이명박 물러가라'로 바뀌고 있다. 40여년 전의 6.3사태와 20년 전의 '6월 민주항쟁'이 실감으로 연상되는 시간이다. 세계화가 불가피하더라도 굴욕과 종속은 싫다는 점에서 '6.3사태'와 '6월의 거리'는 그 출발점이 같다. 정권의 도덕성이 사태를 키웠다는 점에서 '6월 민주항쟁'과 촛불시위는 성격을 같이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6월의 그 광장에 서있는 것이다.
일본은 생후 20개월 이하면서 위험한 부위를 제거한 경우에 한해 수입을 인정하는 데 반해, 한국은 30개월 이상에 검역주권까지 포기했다. 별장에 초대해 준 데 감읍하여 제 발로 달려가 헌상한 꼴이니 이명박 정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명박 정권 가지고는 세계화도 FTA도 안되겠다고 국민은 걱정하게 되었다. 공기업 민영화도 외국자본에 팔아넘기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 국민은 의심하고 있다.
재협상을 하자니 상대가 들어주느냐도 문제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용과 위상이 추락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대로 가자니 정권의 존립자체가 위험하니, 빼도 박도 못할 처지란 실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율 규제가 곧 재협상이라는 구차한 미봉책으로 어물쩍 넘어보려 하지만, 거기에 속아넘어갈 국민이 이미 아니다. 무능한 여당, 정처 없는 야당으로는 그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현안도 현안이지만,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신과 반대가 급속히 확대되자 누구는 복기(復棋)를 해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고 주장하고, 누구는 과감한 인적쇄신만이 살길이라고 말한다. 복기도 좋고 인적쇄신도 좋다. 그러나 문제는 이명박 정권의 진정성이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진정성을 보여준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진실한 것을 진솔하고 진지하게 고백한 적이 없다.
노무현 정권이 '아니면 말고'식이었다면 이명박 정권은 미봉책과 속임수로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술수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국민은 그 수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 소통이 안돼서 그랬노라는 지난번의 사과나, 국민을 섬기겠다는 다짐은 다만 말 뿐이라는 것을 국민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진정성 없이 해결책 없다
제 입으로 BBK는 내가 창설했다는 동영상이 나왔어도 해명이나 사과가 없었고, 도곡동 땅 문제 등 재산문제가 터져 궁지에 몰리자 사회에 헌납한다 해놓고도 여태까지 후속조치가 없다. 국회의원 공천과정에서도 비열한 수법으로 자기를 밀었던 중견과 원로를 제거했다. 누구도 속고 국민도 속을 만큼 배신을 밥 먹듯이 했다. 대운하에 대해서도 하다는 건지 안한다는 건지 정략적 모호성으로 이 고비만 넘기고 보자 한다.
저돌성으로 호가 난 이재오가 "대통령의 형과 맞설 등신이 어디있느냐"고 할 만큼 호가호위로 전횡하고 있는 그 형을 그대로 놔두고서야 백번 천번 인적쇄신을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또한 한때의 미봉책이요 속임수일 뿐이다. 진실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거든 먼저 그 진정성을 보여라. 국민의 눈에 그 진정성이 보일 때만 국민은 이명박 정부를 비로소 받아들일 것이다. 오직 진정성만이 해결책이다. 그리고 진정성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조차 없다.
*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www.edasan.org)'에 실린 글을 연구소측의 양해를 얻어 전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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