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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귀에 대한 미풍양속과 관련한 소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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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귀에 대한 미풍양속과 관련한 소문 하나"

김민웅의 세상읽기 <259〉정치꽁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고 외치고 싶었던
  왕궁 전속 이발사는
  결국 그 답답한 가슴을
  갈대숲에서 풉니다.
  
  자기 혼자서만 알게 된
  이 기가 막힌 이야기를
  누구에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속병이 날 것 같았던 겁니다.
  
  그러나 갈대숲도
  그걸 저 혼자서만 품고 있기는 쉽지 않았던지
  바람이 불면,
  그 순간을 놓칠 새라
  이발사가 쏟아놓고 갔던 국가기밀을
  바람결에 흘린 소문처럼 슬며시 누설하고 맙니다.
  
  갈대숲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발사 혼자만은 아니어서
  그 기밀 아닌 기밀은
  결국 모두가 다 아는 '공개된 비밀'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밀은 공개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그걸 내놓고 말하는 것과 그냥 알고 있는 것은 또한
  하늘과 땅의 차이라서
  그저 쉬쉬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만일 임금님이 이 일을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 누구도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을
  임금님에게 알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정작의 비밀은
  따로 생기게 됩니다.
  
  사람들이 임금님의 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을
  임금님만 모르게 되는,
  그래서 혼자 바보처럼 되고 마는 겁니다.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가면,
  우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권력자는 스스로를 더더욱 우스개로 만들고 말았다는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발사도 좀 그렇습니다.
  임금님이 숨기고 싶어 하는 약점을 굳이 까발리겠다는 심보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고 크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임금님 귀는 그렇게 커야 됩니다.
  물론 꼭 그렇게 생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귀를 가진 사람처럼 여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이지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러기에
  그런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이 권력자의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임금님은 다만 그 귀의 겉생김새를 창피하다고 여겼지,
  그것이 정작 가지고 있어야 할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일 임금님이 민중들의 이런저런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선정을 베풀었다면
  그 당나귀 귀는 거꾸로,
  칭송의 대상이 되었을 겁니다.
  
  너도 나도,
  그런 귀를 가지고 싶어서 밤낮으로 귓밥을 문지르며
  귀야, 귀야 길어져라, 커져라 주문을 외웠을지도 모를 일이고
  아이를 낳자마자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귀인가 아닌가 확인하는
  (남들이 보기에는 무척 괴이할지 모르나)
  전 세계에서 우리만 있는 고유한 미풍양속이 생겼을지 누가 압니까?
  
  또는 이제 앞으로 최고 지도자 또는 대선에 나올 사람들은
  누구든 그런 귀를 가진 사람으로 자격 요건을 제한한다,
  뭐 이런 선거법이 나왔을지 모를 일이기도 합니다.
  
  정작 문제가 되어야 할 바는,
  이 임금님이 그런 귀를 가진 권력자답게
  귀를 아주 크게 열고
  쫑긋쫑긋하면서(물론 기품 있게)
  눈빛도 반짝반짝 또는 눈물이 비치면서
  세상의 아픔, 하소연, 눈물, 갈망, 기원
  그런 것들에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 귀를 보고 놀란 이발사에게
  임금님은,
  허허 점잖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뭘 그리 놀라나,
  나도 처음에는 좀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게 날이 갈수록 길어지더라구.
  적당히 멈출 때가 있겠지.
  잘 때 조금 불편한 것 빼고는 그런대로 괜찮아.
  일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라는 작품을 보면
  코가 길어져서 그걸 어떻게 고쳐보려다가
  낭패를 봤던 스님도 계시니,
  아예 어찌 할 생각을 버려야지.
  무슨 피노키오 코도 아니고. 참 내.
  하지만 이 귀를 가지고
  세상의 민심을 나는 듣고 있지 않은가?
  자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언제든 하게.
  내 귀가 요렇게 쫑긋거리며
  자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을 테니 말이지,
  허허허."
  
  그런 인자하고 마음이 넉넉한 임금님을 보고
  이발사가
  밤중에 냅다 갈대숲에 달려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다,"
  하고 남몰래 소리를 지르고
  다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집으로 횡 하니 돌아왔겠습니까?
  
  아, 그런데
  당나귀 귀는 꼭 그런 귀만 있는 것은 또 아니라고들 하긴 합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잘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길을 가다가 엉뚱한 길을 가고 마는
  그런 간단치 않은 당나귀도 있으니 말이지요.
  
  마이동풍(馬耳東風).
  이럴 때 馬는 당나귀 "마"자던가요?
  
  음,
  그럴 땐
  아무래도 갈대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고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요즈음 갈대숲은
  사이버 공간이라고 하기도 하고
  방송 미디어 매체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대답은
  오, 내 친구여,
  바람만이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한-미 FTA,
  그리 문제가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게다가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의원 열세 명이
  이거 정말 문제다,
  절차적으로도 헌법 위반이다, 라고 용감하게 나서서 외치고 있는데...
  
  아, 그런데
  요즈음은 효자동 이발사가
  한강으로 갔다는 둥 아니라는 둥 해서
  귀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듣기 어렵더라 하는
  안타까운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지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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