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䧹자의 구조가 이상하다. '집'인 广(엄)과 '추하다'인 倠(휴)의 결합이라면 의미-발음을 어떻게 봐야 하나? 䧹은 '매'인 鷹의 본래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거의 의미 요소로 쓰이는 广을 발음기호로 돌리고 倠에 새와 관련된 의미가 있었다는 억지 결론을 끌어내 설명하면 될까?
여기서 함께 봐야 할 글자가 '기러기'인 雁(안)이다. 䧹에서 广 부분이 비슷한 의미를 지닌 厂(한)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역시 倠자로는 설명이 곤란하다. 그래서 倠를 人(인)과 隹(추)로 분리해 둘 다 의미 요소로 설명한다. 기러기가 인간의 덕성을 갖추어서 '사람이 예물로 쓰는 새'라거나, '사람에게 절기를 알려주는 철새'라는 식이다.
鷹 등의 옛 모습은 <그림 1>처럼 돼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그 윗부분인 䧹이다. '새'인 隹(추)를 제외한 부분이 广과 점 하나, 또는 厂과 T 정도로 재정리될 수 있을 듯한 모습이고,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한다면 '广+亻'이나 '厂+亻'이 될 수도 있겠다. 결국 雁과 䧹은 같은 글자가 조금 달리 정리된 것뿐이다. 발음 '응'과 '안'이 그리 멀지 않으니 같은 발음을 나타내는 발음기호로 볼 수 있고, 자연히 나머지 부분인 隹가 의미 요소다.
그 발음기호 부분은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雁의 '厂+亻'은 바로 지난 회에 나온 仄(측)이고, 그것은 䧹·雁과 비슷한 발음인 斤(근)의 이체자다. 그러고 보니 <그림 1>의 왼쪽은 획이 좀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斤자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䧹=雁은 仄=斤을 발음기호, 隹를 의미 요소로 하는 형성자다.
鴈(안)이라는 글자도 있다. 의미 요소만 隹의 다른 모습인 鳥(조)로 바꾸었을 뿐이니, 雁과 같은 글자다. 䧹은 鷹의 본래 모습이니 '매'고 雁·鴈은 '기러기' '거위' '오리' 등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여러 새를 나타내기 위해 별개의 글자가 만들어졌다기보다는, 같은 글자가 조금씩 모양과 발음을 달리하면서 세분된 새의 종류를 나타내는 글자로 분화했다고 볼 수 있겠다.
䧹=雁은 斤이 변형돼 들어갔으니 알아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멀쩡하게 斤자가 보이는데도 그것을 발음기호로 보지 않고 이상하게 해석하는 일이 많다.
折(절)은 왼쪽 扌=手(수)부터가 문제다. 그것을 手로 인정치 않는 것이다. <그림 2> 같은 갑골문 때문인데, 도끼(斤)로 풀(艸)을 자르는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풀과 도끼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선지, 도끼로 동강난 나무를 그렸다는 얘기도 있다. <그림 3>은 이런 관념의 연장선상에서, 동강난 나무 중간에 二를 덧붙여 잘라졌음을 친절하게 부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풀이냐 나무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식의 '장면 상형'은 한자 만들기 방법으로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그림 2>의 위아래로 놓인 풀의 모습이나 <그림 3>의 끊어진 모습 등은 후대의 글자 꾸밈으로 봐야지, 글자 자체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얘기로 봐선 곤란하다. 手는 '꺾다'라는 의미에 딱 맞는 의미 요소고, 斤도 발음기호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斤의 초성 ㄱ은 옛ㅇ과 반치음(△)을 거쳐 ㅈ과 연결되고, 받침 ㄹ도 ㄴ과 가깝다. 斦(은)을 거쳐 斤 발음을 이어간 質(질)과 비슷한 경우다. 따라서 折은 도끼로 '끊다'가 아니라 손으로 '꺾다'인 엄연한 형성자다.
折이 기존 설명처럼 상형적인 글자라면, 특히 나무를 자른 모습이라면 그것은 析(석)자와 구분이 애매하다. 나무가 두동강 난 모습은 折, 온전한 모습은 析일까? 그러나 '꺾다'(折)와 '쪼개다'(析)로 남아 있는 현재의 의미가 분석의 근거다. 折은 앞서 본 대로의 단순형성자고, 析은 木(목)이 의미, 斤이 발음인 형성자다. 다만 斤은 의미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의미 요소 겸용이다. 발음은 지난 회에 보았던 斤의 이체자 斥(척)과 비슷하다.
匠(장)은 대바구니(匚)에 연장(斤)을 넣었으니 '목수'를 나타낸 글자라고도 하고, 匚을 工(공)의 변형으로 보아 두 가지 모두 연장을 나타내니 거기서 '기술자'의 뜻이 나왔다고도 한다. 그러나 折과 초성이 같음을 생각하면 斤이 발음기호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받침 ㄴ/ㅇ은 같은 계통이기 때문이다. 다만 匚 부분을 의미와 연관시키기 어려운데, 그것이 工의 변형이라면 '工(의미)+斤(발음)'의 깔끔한 형성자로 설명된다. 工의 이체자라는 <그림 4>가 匠의 변형이 아닐까 생각되는 대목이다.
斷(단)의 왼쪽은 '실'인 絲(사)와 '칼'인 刀(도)를 합친 絶(절)의 본래 모습이라고 한다(<그림 5>). '끊다'의 의미인 두 글자를 합친 회의자라는 얘긴데, 글자가 복잡해지는 것을 감수하는 것은 그만한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斤은 약간 달라진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들어간 발음기호로 보인다. '단'이라는 발음은 초성 ㄷ/ㅈ이 처음에 구분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匠의 '장'이나 折의 '절'과도 같은 뿌리여서 斤이 발음기호로 쓰였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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