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중·동 기자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일 열리는 촛불 집회를 취재 할 때, 이들 신문의 왜곡 보도에 항의하는 시민을 상대하는 게 버겁기 때문이다. 촛불 집회 자유 발언의 절반 이상이 조·중·동 규탄 발언이고 구호는 "조·중·동 폐간하라"인 마당에 떳떳이 회사 이름 찍힌 명함 내밀고 취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갖가지 편법이 등장했다. 한창 자기 언론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 '막내' 기자들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시민을 인터뷰하는 것은 기본이다. 일부 사진 기자는 카메라 등 취재 장비에 붙은 회사 스티커를 떼고 촬영한다. 그러나 스스로 '조·중·동 경계령'을 발동한 시민은 곧잘 '어디 소속이냐'고 따져 묻기 때문에 이조차 쉽지 않다.
시민의 냉정한 반응에 놀란 한 보수 언론의 한 수습기자는 <경향신문>, <한겨레> 신문지를 들고 다니며 이들 신문사 기자인 양 취재를 하기도 했단다. 아직 수습 '딱지'도 못 뗀 그 기자,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회사의 조직 논리와 현장의 소리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이 심할까?
매일 촛불 집회가 열리는 청계광장 바로 옆에 본사 건물이 있는 <동아일보> 기자도 죽을 맛이다. 지난 5월 2일 촛불 집회에서 시민들이 "동아일보 불 꺼라"를 외치자 동아일보 직원들이 하나 둘씩 창에 블라인드를 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아예 촛불 집회 시작 전부터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는다.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이제 출입문도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 건물 안에 있어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고 불안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화일보> 기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도 회사 로고가 적힌 스티커를 떼고 취재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종종 신분이 드러났을 땐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로부터 "너희도 똑같아", "조·중·동보다 더해"라고 항의를 받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이들 신문이 신분을 감추고 '몰래 취재'를 하다보니 <프레시안> 등 애먼 타사 기자들이 취재에 애를 먹기도 한다. <프레시안> 기자가 다가가도 시민들이 "조·중·동 기자가 속이는 것 아니냐"며 취재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 조·중·동과 일부 방송에 대한 불신이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 때문인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들 신문을 멀리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정부 부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최근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조·중·동 기자들을 소외시키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면서 "그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내던 기자들이 이번 쇠고기 사태를 겪으면서 '너희도 신문이냐'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기자 스스로도 예전보다 위축된 모습이라는 전언이다.
"MBC, KBS는 경찰에 맞고 SBS, YTN은 시위대에 맞는다"
이는 비단 조·중·동 기자들만 겪는 고초는 아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KBS 신봉승 기자, MBC 서두범, 김신영 기자가 경찰에게 폭행당한 사건과 관련해 "요즘 'MBC, KBS는 경찰에게 맞고 SBS, YTN은 시민에게 맞는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SBS나 YTN의 카메라 기자가 촬영하고 있으면 시민들이 기자의 뒤통수를 치고 지나가곤 한다는 것. 시위 진압 와중에 경찰에게 의도적으로 폭행을 당한 KBS 신봉승 기자나 MBC 서두범, 김신영 기자의 사례에 댈 것은 아니지만 취재진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역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이 직접 촛불 집회에 참여하면서 현장과 보도 사이의 큰 괴리를 인식하면서 생긴 불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 집회에 나선 시민들은 KBS, SBS, YTN 등의 영상 취재를 거부하기도 한다.
지난 1일 촛불 집회에서는 KBS, SBS 촬영기자가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 전체를 찍으려 하자 20여 명의 시민들이 기자를 둘러싸고 "촬영하려면 주최 측에 허락을 받고 하라"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시민은 "KBS, SBS, YTN은 실컷 찍어가놓고 전경이 시민을 방패로 내려찍는 장면 등 진짜 중요한 장면은 내보내지 않는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조·중·동의 위기, 자업자득
시민들 사이에서 조·중·동 구독 거부 운동, 광고주 항의 운동 등 '폐간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는 까닭은 간단하다. 조·중·동 폐간 운동을 '선동'한 세력은 바로 조·중·동 자신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권력에 대한 비판은 언론 본연의 임무"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해 온 이들이 바로 조·중·동이다. (물론 비난의 '근거' 역시 '공익'이 아닌 '사익'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정부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한미FTA만 빼고) 반대로만 일관했다. '노무현 씹기를 국민 스포츠'로 만들고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판을 일상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들 신문이다.
이랬던 이들이 정권이 바뀌자 권력에 대한 태도가 180도 표변했다. 이명박 정부를 홍보, 찬양하기에만 열을 올린 것이다. '권력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언론 본연의 임무'가 됐다고나 할까. 이들 신문은 시민의 이명박 정부 비판을 온갖 '괴담'으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진실 보도조차 외면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광우병의 위험성을 그토록 구구절절이 강조해 왔던 이들이 이명박 정부가 되자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도 위험하지 않다", "미국인들도 먹고 있으니 안전하다", "한국인 유전자가 광우병에 더 취약하다는 것은 낭설" 등 정부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기만 했다.
한 달 동안 계속된 촛불 집회를 "배후 세력의 선동 탓'이라고 몰아간 것도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진실보도보다는 적대적 정권은 '까고', 우호적 정권은 '빨아 주는' 편싸움의 논리가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언론으로서의 자격 상실, 이것이 시민들이 조·중·동에 내린 평가다. 그러나 이들은 땅에 떨어진 신뢰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이명박 대통령만 바라보면서 '신문-방송 겸영만 허용하면 지상파 방송으로 진출한다'는 단꿈에 젖어있는 것같다.
글쎄, 지금 분위기를 보면 이들은 방송 진출을 기대할 게 아니라 종이 신문 폐간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 사이에서 시민들은 "조·중·동 폐간"을 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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