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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어떻게 '미국'을 '기업'에 넘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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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어떻게 '미국'을 '기업'에 넘겼나

[해외발언대] '기업'의 먹잇감이 된 '미국', 한국은?

다음은 <뉴욕타임스>에서 20여 년 동안 해외특파원으로 활동했던 크리스 헤지스가 지난 5월 28일 퍼먼 대학교에서 행한 연설 '기업국가와 민주주의의 전복'이다. (원문보기)

이 연설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당국이 지난달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하도록 초청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항의한 교수와 학생들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뤄졌다.

지난달 초 대학 당국의 결정이 발표된 직후 222 명의 학생과 교수들은 학교 웹사이트에 "우리는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게시하기도 했다.

이 성명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방해한 부시 행정부가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석유회사들에게는 엄청난 감세와 보조금 지급을 해주려고 애쓰는 점을 대비시켰다.

학생과 교수들은 이 성명에서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라크 전쟁은 4000명이 넘는 미군의 목숨을 희생시켰다"면서 "우리는 이 나라와 이 나라가 표방하는 이상적 이념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시민으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성명과 미국이 기업의 손에 넘어간 나라가 되었다고 개탄하는 헤지스의 연설은, 고유명사만 바꾸면 최근 국내에서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 대해 반발해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항의하는 우리의 상황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공감을 준다.

다음은 크리스 헤지스가 한 연설의 요지다.<편집자>


나의 조국 미국은 국내외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명예롭게 생각할 만한 점이 많은 나라였다. 그래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예전의 언어로 스스로를 묘사하고 있지만, 껍데기만 남았다.

나의 조국 미국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서서히 초라한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된 미국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피지배에 대한 동의'라는 것은 공허한 말이 되었다. 정치학에 대한 우리의 교과서들은 쓰레기다. 미국은 독재자와 기업과 편협하고 이기적인 정치엘리트, 돈을 좇는 소수의 특권층에 의해 인질로 잡힌 신세가 되었다.
▲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진보진영으로부터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노골적인 친기업적 정책을 추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서서히 진행되는 쿠데타

존 롤스턴 사울이 썼듯, 우리는 '서서히 진행되는 쿠데타'를 겪고 있다. 우리는 법적, 경제적, 정신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우리가 이런 흐름을 빨리 뒤집지 못한다면, 우리가 나라를 기업의 손아귀에서 구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인과 하인만이 있는 어둡고 소란스러운, 아메리칸 드림은 그저 꿈에 불과한,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자신과 가족들을 지탱할 적절한 임금을 벌 수 없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반역자로 낙인찍혀 무자비하게 침묵을 강요당하는 세계화된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나는 특정 정당을 거론하지 않겠다. 민주당도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다. 민주당을 기업의 떡고물을 받아먹도록 이끈 자는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은 민주당이 정치적 동지였던 노조가 더 이상 표를 모으거나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되자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민주당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기업의 돈을 받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990년대 들어 클린턴이 이끈 민주당은 정치자금 모금에 있어서 공화당과 막상막하였다. 오늘날 민주당은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정치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배신행위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가 미국,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국민들에게 더 많은 소득과 혜택을 가져다 줄 기회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멕시코 이민자들에게도 나프타는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1994년에 발효된 나프타는 클린턴이 그려준 장밋빛 전망과는 모든 면에서 거꾸로 된 기괴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멕시코 정부가 멕시코 농부들이 재배한 옥수수와 콩에 대한 가격 지원 정책을 철회하자마자, 멕시코 농부들은 미국의 거대 농기업들과 경쟁하는 상황에 몰렸다.

멕시코 농부들은 순식간에 파산했다. 1994년 이후 최소한 200만 명의 멕시코 농부들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다. 가난한 멕시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미국으로 흘러들어갔지만 국경 부근의 공장들이 중국의 값싼 임금을 노리고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상품가격이 싸지고, 노동자는 소득이 많아지고,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하더니 어떻게 이처럼 모순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나프타는 기업에게는 좋은 것이고, 노동자에게는 재앙이었던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사악해지는 동안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더욱 사악해졌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외교정책인 이라크 문제는 차치하도록 하자.

조지 부시는 근대 미국의 역사상 어느 대통령보다 우리의 헌법을 해체하고, 법률을 무시하고 폐지했으며, 미국 시민들을 기업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규제를 철폐하는 데 앞장섰다.

부시 행정부는 환경, 식품, 산업제품 안전과 노동자 안전을 위한 규제들을 파괴했다. 그 결과 탄광이 붕괴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주택거품이 결국 터지고, 중국에서 납 성분이 함유된 장난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부시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직접적으로 정부 예산을 기업들에게 넘겨주는 일을 많이 했다. 경직성 지출 이외의 연방 예산 중 40%에 달할 정도다.

지난 2003년 핼리버튼은 수의계약으로 70억 달러짜리 이라크 유전 수리 업무를 따냈다. 이라크 전체 석유 생산을 감독하고 통제하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핼리버튼은 이라크 관련 업무만 130억 달러어치 계약을 수주했다.

미국의 납세자로부터 나오는 이런 돈을 가지고 핼리버튼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아는가? 절세를 위해 이른바 '조세회피지역'이라는 나라에 계열사들을 설립했다. 143개 계열사 중 미국에 설립된 것은 36개에 지나지 않는다.

핼리버튼, 누구를 위한 기업인가

미국 납세자들의 돈을 탈취해 가서 흥청망청 쓰고 있는 이런 기업들에 대해 우리의 '기업 정부'는 그들에게 자금 지원을 할 뿐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 핼리버튼은 전형적인 사례로서 조지 부시와 핼리버튼의 회장 출신인 딕 체니 부통령 같은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새로운 형태의 불량 기업국가에서 엔진에 해당하는 것이다.

독과점 체제와 노동자 계급 격차가 심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일종의 농노제가 형성되었다. 크레디스위스의 분석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에서는 앞으로 2년 동안 139만 건에 달하는 주택압류사태가 발생하고, 2012년 말에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자 중 12.7%가 집을 잃게 된다고 한다.

기업국가라는 것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추상적인 개념으로 들리겠지만, 조각들을 신중하게 맞춰 현재의 빈곤, 헌법적 권리의 침해, 영구적인 전쟁 상태를 불가피한 것으로 만드는 기업의 힘과 연결해 보면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은 구체적인 결과로 이미 나타나 있다.

조지 부시가 취임했을 때와 비교하면 현재 미국에서 32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했다. 지난 3년 동안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미국의 노동자가 해고됏다.

미국의 중산층에 대한 공격도 진행중이다. 소프트웨어로 대체할 수 있는 업무는 금융에서부터 엔지니어링까지 모두 인도나 중국의 값싼 노동자들에게 아웃소싱되고 있다. 기업들 덕분에 돈과 권력을 거머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방치하고 있다.

군산복합체도 이런 과정에서 가능하다. 2008년 회계연도에서 국방비 관련 지출은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매년 4000억 달러가 넘는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2008년도 국방예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다.

기업국가, 혹은 참여 파시즘

이코노미스트 샬롯 트와이트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각종 화려한 쇼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가 허물어져가는 기업국가체제를 '참여 파시즘'이라고 일컬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투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투표가 그렇게 효과가 있는 제도라면, 시민운동가 필립 베리건이 말했듯, 불법화되기 마련이다.

투표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투표를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을 되찾길 원한다면 투표는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아우구스트 성인이 썼듯, 희망은 분노와 용기라는 아름다운 두 딸을 낳았다. 우리는 공포를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파괴하려드는 조지 부시와 딕 체니 같은 자들에게 우리의 조국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몽땅 넘기라고 요구받고 있다.

공포는 잔혹함으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가 분노하지 않고, 용기를 모으지 않는다면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린 상황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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