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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08년 세대'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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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08년 세대' 태어나다

[기고]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 집회가 있었던 2008년 5월 31일을 넘기고 6월 1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넓게 트인 광화문 거리의 한쪽은 경찰버스로 가득 찼다. 기이한 것은, 청와대로 가는 길은 효자동 입구까지 열려 있고, 미국 대사관은 겹겹이로 쌓여 있는 점이었다. 행진 중에 누군가 말한다. 이명박 정권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실세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는 것이라고.
  
  "촛불은 내 돈으로 샀다."
  
  효자동 입구는 또 하나의 시민 민주주의 해방구였다. 함성이 그치지 않는다. 경찰과의 최전선 대치, 연좌시위, 거리에서의 연주, 즉석 토론, 춤과 연설, 술 한 잔 돌리면서 시위의 동지적 연대를 다지는 자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아기를 안은 엄마와 아빠들이 그 늦은 시각까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각자가 만든 구호가 적힌 종이들은 기발한 생각들을 여지없이 쏟아낸다. "명박지옥, 탄핵천국", "촛불은 내 돈으로 샀다, 배후는 양초공장", "청와大 미친소科 08 학번 이명박"
  
  아이들이 만든 뽀뽀뽀 노래는 선풍적 인기다. "아빠가 출근할 땐 기름 값/엄마가 시장가면 미친소/우리가 학교가면 O교시, 우리네 수면시간 4시간/우리는 자랑스런 민주시민, 촛불 소녀들/미친 소, 민영화, 대운하 싫어!" 이명박 정권은 미래세대에게 철저하게 거부당하고 있다.
  
  2008년 세대, 마침내 태어나다
  
  마침내 '2008 세대'가 태어났다. 21세기 한국의 주축이다. 이들의 뇌리와 가슴에는 2008년 5월과 6월의 광장이 평생의 원체험으로 남을 것이다. 이들은 권력의 그 어떤 오만과 폭력, 그리고 기만과 거짓도 용납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주체적 개인으로 서서, 함께 하는 이웃과 문화적으로 연대할 줄 아는 민주공화국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건 단연코 <2008년 체제>다. 지난 20년 민주화 투쟁의 역사는 그렇게 귀결되면서,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이루어냈다. 6.10 항쟁 87년 체제는 박물관 속의 유물이 아니었다. 군화의 폭력, 경찰의 고문, 투옥과 비상조치, 그리고 최루탄과 백골단의 장벽을 뚫어냈던 선배 세대의 치열한 희생은, 이들 유쾌 발랄하고 거침없는 2008년 세대와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소멸되는 법이 없다. 우리의 사회적 영혼의 피가 되어, 대를 이어 그 정치적 육체에 흐르고 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권력은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 지난 역사의 증언이다. 그 증언에 귀를 막은 권력은 무모해진다. 그러나 그것이 자멸을 재촉하는 것임을 우리는 언제나 목격해왔다.
  
  '공동의 기억' 창출되다
  
  얼굴 모르는 시민들이 서로 인사한다. 누군가 알아보곤 반가워한다. 익숙한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뜨인다. 멀리서 올라온 이들도 있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라는 역사의 현장에 대한 공동의 기억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 기억은 역사를 진전시키는 능력이 된다.
  
  새벽 2시가 지나면서 사태는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침이 떨어진 모양이다. 비상대책 회의라고 한 바가 결국 소통의 완전한 포기와 폭력 동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태다.
  
  경찰과의 대치 최전방에 있던 한 후배가 물에 잔뜩 젖은 채 부인, 아들과 함께 후미로 빠져 나온다. 그도 이제 오십이 되어가는 사나이다. 역사의 현장에 온 가족이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의 미소에 담뿍 담겨 있다. 이 싸움은 이미 이겼다는 기분이 그득하다. 그건 다만 그와 그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물대포, 특공대 진압, 이명박 정권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물대포와 특공대 진압은 이명박 정권의 자기 방어 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국민을 설득할 힘이 없는 권력이 의존하는 최후의 수단을 드러내는 순간, 패배는 자명해진다. 힘으로 누르면 된다는 생각은, 비폭력 시위의 도덕성이 가지고 있는 마그마 같은 잠재력과 민심의 분노가 얼마 만큼인지 모를 때 저지르는 실수다. 그런데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2008년 5월 마지막 날 서울의 도심 한 복판에서 여학생들이 가장 격렬했다. 구호선창은 이들이 주도하고, 남학생들은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외치는 소리는 재협상 요구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이명박을 몰아내자."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기성세대의 판단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독재타도"를 부르짖는다. 이들에게는 이런 수준의 권력도 이미 독재가 된 것이다.
  
  '불순'한 민주주의, '불온'한 공화국
  
  지난 시기의 잔혹한 권력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다만 어리석은 권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반해, 이들은 단호하게 독재라고 부르고 있다. 민주주의의 단계는 이미 달라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아무리 되풀이해도 새롭다. 신선하고 힘이 솟는다. 오직 권력자들에게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불순'하고 "공화국" 역시 '불온'하다. 그 불순하고 불온한 힘이 존재할 때, 민주주의는 생명의 힘을 갖는다.
  
  10대가 깔아놓은 멍석에 어른들이 춤을 춘다. 역사의 춤을 춘다. 30대와 40대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오고, 20대가 봉쇄된 길에 돌파구를 여는 실력을 과시한다. 50대 이후는 이 거대한 물결에 함께 하면서 어떤 미래를 책임 있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 고뇌한다. 각 세대가 각자의 역할을 해나가면서 하나가 된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하루 전인 5월 30일, "민변 20주년" 기념식에서 신영복 선생은 노래 하나를 부른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동요가 가진, 그저 스쳐지나왔던 힘이 새삼 확인된다. 5월 서울의 광장은 그렇게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있다. 역사의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여기 저기 냇물들이 하나가 되어 강물을 따라가고 바다로 흘러간다. 그 바다를 막을 자 누구냐?
  
  합법적 선거로 집권한 세력도 민심을 거스르면 퇴진의 운명에 처할 수 있다. 혹여 이명박 정권의 제도적 존속이 가능하다 해도, 그 정치적 수명은 이제 종식될 판이다. 국민 앞에 깊이 머리 숙여 무릎 꿇고 진정한 반성과 "미워도 다시 한 번"의 기회를 호소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시민권력' 필요하다
  
  결국, 그 다음이 문제다. 위기국면의 극복을 위한 시민민주주의 결집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국민들이 만일 또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해준다면, 이명박 정권의 시국 수습 대책을 위해서라도 이는 필요하다. 참신한 '시민 권력'의 등장이 요구되는 것이다. 역사의 변혁적 기회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탐욕적이고 위선적인 세력들이 발을 디딜 틈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이 순결한 혁명의 정신은 더럽혀지고 만다.
  
  2008년 세대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급진적이며, 경제적으로는 공공성을 앞세운 반(反)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자들이며, 사회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는 세력이다. 그걸 한국형 사회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고 그냥 뭉뚱그려 진보적이라고 해도 좋다. 그 어떤 이름이라도 그 핵심은 '민주주의와 민생, 그리고 공적 가치의 수호'다.
  
  시민 권력은 이러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나설 것인가? 이제부터 이걸 고민해야 한다. 앞에서 일방적으로 지도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자기희생적으로 실천해내는 존재와 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모이기 시작하면.......
  
  실로, 국민적 존경과 시대적 지혜를 가진 이들을 제대로 갖지 못한 현실이 지금 뼈아프다. 그러나 이젠, 그 어떤 특정한 명망가나 한 특출한 개인에 의존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모이기 시작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거리에서 즉석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 아닌가? 이미 이 운동을 선두에서 책임지고 나선 이들도 있지 않은가? 역량 있는 존재들도 우리 사회에 다수 포진하고 있다. 집회 무대에 올라선 30대 여성들의 육성은 너무도 또렷했고 그들은 이미 탁월한 시민 권력의 정치적 지도자였다.
  
  바다로 가자
  
  그런 줄까지인 줄 모르고 있다가 무모하고 무능한 권력의 실체를 목격하고 국민들은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 대치는 계속 될 것이다.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 섰다를 거듭할 것이다. 누가 더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일어선 이 역사의 기세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이 물결을 담아낼 바다만 있으면 된다. 그 바다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면 된다. 넓은 세상 보고 싶으면, 바다로 가자. 광장이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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