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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도덕의 거래, 그 부조리극의 끝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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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밥과 도덕의 거래, 그 부조리극의 끝이 두렵다

[기고] 맨체스터시티를 보고 이명박을 떠올리다

영국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최근 필자의 관심을 끌고 있는 구단은 맨체스터시티다. 초반의 놀라운 선전에 비해 9위로 시즌을 마감한 뒷심이 아쉽기는 했지만 맨체스터시티의 경기력은 지난 시즌에 비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 시즌 부임한 전 영국 국가대표 감독 에릭손은 마침내 맨체스터시티에 그들만의 독특한 팀컬러를 입히는 데에 확실히 성공했다. 축구전문가들이 9위인 맨체스터시티가 내용적으로 성공했다고 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리모델링된 구단을 다름 아닌 그들의 구단주가 지금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단주는 저 유명한 탁신 치나왓 전 태국 총리다. 탁신은 시즌 중 자신이 선택한 에릭손 감독을 모욕하는 발언을 여러 번 하면서 팀의 내부 기율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고, 비교적 자율적 질서 체계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구단 운영에 1인 전횡을 일삼으며, 팀을 순전히 장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럽에서 스포츠 이상으로 하나의 역사와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축구팀을 외국자본이 단지 장사꾼의 논리로 접근해 인수·운영하는 사례는 여럿 있지만, 맨체스터시티의 사례는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탁신은 태국 최대의 갑부이자 전임 총리로서, 총리 집권기간 어마어마한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더했으며, 마침내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과 쿠데타로 외국으로 도망한 인물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잘 알고도 맨체스터시티의 서포터즈들 상당수가 그의 막강한 자금력에 현혹되어 그의 구단 인수를 환영 또는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가디언>에 축구 칼럼을 연재하는 저명한 스포츠 기자 사이먼 번튼은 최근 한국의 한 축구 사이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정작 놀라운 것은 탁신의 전횡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도덕불감증이라고 쓰기도 했다.
  
  맨체스터시티 팬들의 도덕 불감증
  
  맨체스터시티의 사례는 단지 남의 나라 축구팀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어딘지 이 이야기는 2008년 현재 한국에서 정부와 국민 간에 벌어지고 있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갈등과 충돌 상황의 근본문제를 그대로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비록 이명박 후보에 대한 특검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상당수는 대통령 선거 이전에 그 무수한 스캔들들 때문에 그의 도덕성에 대해 상당한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BBK 의혹과 도곡동 땅투기 의혹 등 실로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정도의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에 관한 의혹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제기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어떤 메가톤급 의혹도 그의 지지율을 떨어뜨리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그에 앞선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가 본인도 아닌 자식 병역문제로 발목이 잡혔던 것을 상기해 본다면 이 변화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물론 이명박 후보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었으며, 유일한 무기이자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무기인 '경제살리기 적임자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었으나 2007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두 명 중 하나도 여전히 그를 원했다.
  
  대안이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 지난 대선의 상황이지만, 그 어떤 정치적 이슈도 도덕적 문제 제기도 국민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는 점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도덕성 문제에 관한 국민적 무관심 내지는 방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며 국민들의 구체적 일상에 부메랑처럼 돌아와 '복수'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강부자' 내각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고소영' 인맥으로 공공기관을 사당화하고 있는 현실을 '때늦은' 공분 속에 무력하게 목도하고 있다.
  
  국민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영어몰입교육이 아무런 대책이나 국민 의견 정취도 없이 강행되어 교육 현장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 뻔한 일을 커다란 긴장 속에서 목격해야 했으며, 급기야는 불안해서 국민이 먹지 않겠다는 쇠고기를 '안전'하니 먹으라고 윽박지르는 정부의 행태를 목격하고 있고, 이에 항의하는 국민들을 감옥에 쳐 넣겠다는 더 기막힌 으름장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다.
  
  600년 문화제를 태워먹은 지가 두세 달 밖에 안됐는데, 대통령은 근신을 하지는 못할망정 수 만년 이어온 금수강산을 제집 안마당처럼 두 동강으로 잘라 물길을 내겠다고 계속 버티고도 있다. 오직 건설업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뿐, 생태·문화·역사·경제·국민적 공감 그 어떤 관점에서도 설득의 논리를 갖추지 못한 이 무모한 사업에 대통령이 목숨을 거는 진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며칠 전에는 여러 명의 교육과학부 고위관료들이 자신들의 모교와 자녀들의 학교에 국가예산을 제 주머니 쌈짓돈 쓰듯 꺼내 거액의 선심성 지원 약속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동창회비와 제 자식을 위한 촌지를 국민 세금으로 지불하는 꼴 외에 아무 것도 아님은 물론이다. 부족하나마 가까스로 쌓아놓은 사회적 투명성과 민주적 절차, 공적 차원의 도덕성의 기준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경제살리기에 유능하다고?
  
  이렇게 도덕적 해이와 교만함이 팽배해 있는 정부에서 국민의 소원대로 '밥' 문제라고 잘 해결될까? 1998년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후생경제학의 권위자 아마티아 센은 경제 행위를 순전한 기술적(도구적) 합리성이나 자기이익의 관점에서만 규정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오류를 비판하고 수정된 견해를 제시해 왔다.
  
  그의 성찰에 따르자면 경제 행위란 행위자의 가치관이나 행위 동기 또는 지향, 공동체에 대한 권리나 의무감, 사회적 정의 등 윤리학적 관점 속에서 훨씬 더 잘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학이 정치학과의 연계를 피해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윤리의 문제는 빵 생산과정에서의 '효율성'과 분배 문제 모두에 있어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도덕)와 경제의 긴밀한 상관성 문제를 현재의 정책에서 찾아보자. 오직 내세울 것이 경제밖에 없었던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전년 대비 같은 달 50% 이상 치솟은 원자재 물가 폭등과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장기불황의 그림자는 단지 국제원유가 폭등 같은 외적인 요인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계획했던 1년치 물가상승률인 4%를 이미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넘겨버린 현시점에서 환율상승은 물가상승 요인의 0.4%를 차지했다. 물론 이것이 수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치솟는 환율을 방조하고 있는 정부 환율정책에서 기인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같은 이유로 정부는 물가폭등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금리인하 정책을 밀어붙이며, 시장의 불안정성과 투기심리를 자극하고 있기도 하다. 그 결과 살인적인 물가 속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극소수 수출대기업들은 손 하나 까닥 않고 앉은자리에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중이다.
  
  또 정부는 구조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전기·수도·철도 등 상당수의 알짜 공기업들을 대기업에 팔아넘기려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알짜배기 공적 자산을 인도받은 대기업은 해당 사업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막대한 이윤을 생산하게 되는 반면, 다수 국민들은 공공요금 인상의 폭등 속에서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복지제도가 전무한 나라에서 최소한의 공적 부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의료보험조차 민영화된다면 그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이제 집권 세 달 밖에 안 된 정부가 했거나 막 추진하려는 일이며, 앞으로 4년 9개월 동안 무수히 추진되거나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바로 나와 당신, 우리들의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이 점은 최근 많은 언론들도 지적하고 있으나 더 깊이 강조되어야 하는 사실은 이 선택의 의미가 바로 도덕과 밥을 바꾼 결과라는 사실이다.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밥과 빵을 위한 거래만이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칭송되는 오늘의 '세계화' 시대에도, 도덕의 문제는 그렇게 쉽게 등한시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거래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는 초중고생에게까지 불신임을 받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웃지 못 할 현실이 그대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냉소적인 관점도 존재한다. 도토예프스키는 예수가 대중들에게 고발되어 십자가에서 죽게 된 이유를 '들판에 있는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마귀의 유혹을 거절한 데에 있다고 보았다. 빵을 위해서라면 노예가 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질일진대, 예수는 보이는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같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존중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혹시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갈등의 중요한 본질에는 우리에게 빵을 주겠다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라도 일단 선택하고 보겠다는 우리 욕망의 결과가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교회의 장로라는 분이 천상의 정신적 가치가 아니라 지상의 빵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이 부조리극의 관객이자 주인공으로 참여하고 있는 우리가 이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고통스러운 덤이다. 이제 우리는 이 부조리극에서 적잖은 교훈을 얻을 수 있겠으나, 그 대가는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지나치게 가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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