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는 22일 조합 창립 20주년을 맞아 'KBS 사장, 정치적 독립 그리고 미래'라는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사장의 조기 퇴진 수순을 밟음에 따라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KBS노조와 일부 직능단체 간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100여 명의 노조원이 참석한 채 3시간 반 가량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KBS 노조는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시도를 비판하는 여타 언론 단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식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KBS 노조 만의 상황인식은 '정연주 조기 퇴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억지 논리로 비춰지기도 한다.
"노조와 뉴라이트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
KBS 노조 윤형혁 정책실장은 토론회 발제에서 "보수 정권의 등장은 공영방송 KBS가 처한 위기의 본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와 KBS 노조가 동시에 '정연주 사장 조기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한 논리다.
윤형혁 실장은 "(이명박 정부는) 공영방송 KBS에 보다 비우호적일 뿐 위기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인식이 다를 뿐"이라며 "정치권과 사장 만을 바라보면서 정치권의 변화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조직문화가 고착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같은 시각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조, 언론정보학회 등이 연 긴급토론회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나온 판단과 대조되는 지점. 이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공영방송에 민영화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내용 통제 의도를 노골화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 내부에서도 이러한 노조의 주장에 비판이 쏟아졌다. 양승동 KBS PD협회장은 "KBS 위기의 본질은 이명박 정부다. 한나라당은 집권 전부터 KBS를 두고 '공영방송답게 만들겠다'며 공영방송을 위축시키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며 "이명박 정부가 공영성을 축소시키고 시장 논리에 의해 KBS를 운영하려 하는 것,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은 "노조는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며 "지금 노조의 입장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 단체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노조의 정체성을 밝혀라"라고 따지기도 했다.
"KBS노조가 낙하산 사장 막을 수 있나"
KBS 노조의 주장은 일단 정연주 사장을 퇴진시키고 정치적 독립성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는 것. 윤형혁 정책실장은 "일부에선 노조가 정 사장 퇴진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우지만 정 사장 퇴진이 투쟁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문제는 '분리 투쟁'을 외치는 KBS 노조도 '정연주 사장 사퇴'만을 외칠 뿐 그 이후의 설득력 있는 대안은 거의 마련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윤형혁 정책실장도 "정연주 사장 퇴진 이후에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는 점에서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며 "이 부분은 지혜를 모아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김현석 기자협회장은 "이명박 정권이 정 사장을 밀어내고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은 하나의 '세트'"라며 "노조가 정 사장 사퇴를 주장하기 때문에 낙하산 사장이 왔을 때 노조는 시늉만 할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정연주 사장 사퇴를 주장하며 언론운동 진영에서 '엇박자'를 낸 KBS 노조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대항해 내·외부의 힘을 효과적으로 그러모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양승동 PD 협회장은 "사장 문제든 KBS2TV 분리 등 구조조정 문제든 KBS 노조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KBS노조가 '국민의 힘을 믿는다'라고 한다면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외부 단체와 연대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외부 시민단체 등과의 연대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정연주 사장 퇴진 문제에서는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김기현 KBS노조 복지국장은 "진보 세력들은 정 사장이 공영방송 수장이기 때문에 임기를 보장하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분명히 KBS노조가 외부와의 연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그러나 외부 세력과의 연대는 분명 중요하고 차기 사장 선임, 방송구조개편 등의 부분에서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해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은 "외부단체와의 연대 문제에서 불신이 아직 해소되지 않아 아프게 느끼고 있다"며 "KBS 노조가 정상적으로 연대체에 참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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