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라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중국의 동해(우리의 서해) 부근에서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해의 모습이 당연할 거고,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더라도 넓은 평야 지대니 수평선과 마찬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지평선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뜻하는 旦(단)은 바로 그런 모습의 상형이라고 한다. 위의 日(일)은 말할 것도 없이 해의 모습이고, 아래 一은 수평선 또는 지평선이다. 지금 글자꼴로는 완벽할 듯도 한 이 설명이 조금 어색해지는 것은 <그림 1>과 같은 갑골문을 볼 때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것도 설명해냈다. 해가 수(지)평선에서 막 올라올 때 일시적으로 수(지)면과 붙어 보이는 오메가현상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림 2>가 그 모습이다.
그럼 <그림 3>은? 그 설명을 유지하자면 검은 부분이 해를 그린 것이고 아래 점 찍힌 부분이 오메가현상이라고 해야 할 텐데, 우리가 머릿속에 그렸던 내용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그림이 돼버린다. 그냥 잘못 전해진 글자꼴이라고 봐야 할까?
해결책이 있다. <그림 1>의 아랫부분을 囗(성/정)으로 보는 것이다. 초기 한자에서 초성 ㄷ/ㅈ은 분화되지 않았으니 그것이 발음기호다. 위의 日을 의미 요소로 해서 '아침'을 뜻하는 형성자로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그림 2, 3>은 조금 후대인 금문 모습인데, 위와 아래 구성 요소가 비슷한 모양이니 발음기호 쪽을 까맣게 칠해 구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까만 부분이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상관이 없다. 발음기호 囗은 正(정)의 경우에서처럼 一로 단순화되는 일이 가끔 있다.
그런 旦의 본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글자가 昌(창)이다. 日 밑에 曰(왈)을 더한 구조지만, 옛 글자꼴에서 '날 일'과 '가로 왈'은 거의 구분할 수 없다. 오죽하면 '鹿皮(녹비)에 가로왈'이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또 日과 口 역시 점 하나 차이여서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昌은 한쪽이 日이고 다른 한쪽은 囗의 변형이어서 旦의 본래 모습과 똑같은 구조다.
昌의 의미가 '햇빛'에서 '퍼지다' '번성하다'로 확대됐다고 보면 의미 역시 旦과 직결된다. 발음은 초성 ㄷ=ㅈ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囗(성/정)과 더욱 가깝다. 따라서 曰에서 의미를 찾는 회의자식 설명은 모두 잘못이다.
豆(두)는 '콩'의 뜻이지만 콩과는 관계가 없고 엉뚱하게도 제사용 그릇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 4> 같은 모습을 보면 굽이 높은 제기 모양인 듯도 하다. 그런데 이 모양은 <그림 2> 같은 旦의 모습과 비슷하다. 제기를 상형했다는 게 전혀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형의 범위를 좁게 본다면 다소 찜찜한 대상인 것이다.
발음은 旦과 초성만 일치하지만, 登(등)·短(단)처럼 豆가 구성 요소로 들어간 글자들에 ㄴ/ㅇ 받침이 들어 있는 게 눈에 띈다. 登·短이 일반적인 해석대로 회의나 상형적인 구성이 아니라 豆를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라는 얘기고, 豆 역시 본래는 받침이 들어 있었으나 탈락된 것임을 드러내주고 있다. 豆는 旦의 변형인 것이다.
且(차)는 男根(남근)숭배 사상을 반영한 남근의 상형으로 보기도 하고, 위패의 모양을 그려 '조상'을 의미했다고 보기도 한다. 모두 祖(조)자에서 힌트를 얻은 얘기들이다. 고깃덩이를 담은 도마를 그렸다는 얘기는 '도마'의 뜻인 俎(조)에서 나왔다.
옛 모습(<그림 5>)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역시 旦과 연결될 수 있는 모양이고, 발음도 昌에서 받침만 빠진 정도다. 받침이 빠진 것은 豆와 같은 사정이어서 且 역시 旦 등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남근이나 위패 같은 것까지 상형의 대상으로 삼았으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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