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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4대강 사업과 인도 나르마다강 개발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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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4대강 사업과 인도 나르마다강 개발의 차이는?

[새움의 '인도, 우리에게 말을 걸다']<5>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20년 동안의 저항

(* 이 연재의 원고는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인도의 사회운동들(가제)"의 원고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州) 만들라 지방에는 길이가 1,240km에 이르는 나르마다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을 힌두교도들은 갠지스 강 다음가는 신성한 강으로 받들고 있다고 합니다. 나르마다 강의 본류와 지류에 걸쳐 30개의 대형댐, 135개의 중형댐, 3000개의 소형댐을 건설하는 대규모 개발계획인 나르마다 강 유역개발 사업이 거의 30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은행과 인도정부가 함께 주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은행은 주로 과거의 식민지였던 지역에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은행과 인도정부가 대규모 댐 건설 사업을 벌인 것은 이론적으로는 발전주의 모델에 근거해서 인도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전주의는 우리나라에서 박정희시대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입각해서 중화학 공업 위주로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했던 것을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이렇게 후발 산업국가들이 국가주도로 급속한 산업화를 할 때 의존한 이론적 틀이 바로 발전주의 모델이었습니다. 세계은행이 보기에 인도가 원활하게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과제 하나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었습니다. 산업화가 가능하려면 공장을 짓기 전에 발전소를 먼저 지어야 합니다.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이 나르마다 강 유역 개발 사업의 명분이었습니다. 세계은행 주도의 사업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큽니다. 2000년 전후로 약 5년 동안 전 세계에서 1700여 개의 댐이 건설되는데 그 중의 40%가 인도에서 건설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 짐작이 될 것입니다.

주변부에서의 댐이나 발전소 건설 사업에 세계은행이나 선진국들이 힘을 쏟는 데에는 후진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논란 많은 명분 외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후진국의 경제를 위해 세계은행이나 선진국이 돈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이자를 받는 빚입니다. 수력, 화력 발전소 건설 자체가 선진국의 자본가들에게는 엄청난 돈벌이입니다. 반면에 개발도상국들이 외채에 빠져드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산업발전을 위한 발전소나 도로, 항만 같은 인프라 건설에 외채를 필요 이상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인프라에 투자하라는 것이 세계은행의 주장인데 산업을 발전시켜도 투자비용을 건지지 못한다면 불필요한 투자를 해서 국가 경제에 손해를 입히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해 고속성장에 성공한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산업발전 초기에 투하된 인프라 건설비용을 갚은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후진국 경제는 채권국인 선진국 경제에 종속됩니다.

미국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 사업을 돕습니다. <경제 저격수의 고백> 이라는 책을 보시면 이 문제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인프라 건설비용을 갚지 못하는 이유는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설비를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건설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필요한 것보다 부풀려서 전력수요 예측을 하고 과도하게 많은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만드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의 수기입니다. 댐 건설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니까 후진국 민중들의 저항이 발생하고 이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 선진국 정부나 댐 건설 회사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세계은행이나 민간 원조단체를 내세워서 댐 건설을 추진합니다.

인도에서도 세계은행이 댐 건설에 필요한 차관을 제공합니다. 원조도 아니라 차관 즉 빚입니다. 이 차관은 고스란히 선진국으로 흘러갑니다. 서류상으로는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돈이 간 것으로 기록되지만 실제로 돈은 뉴욕의 한 은행계좌에서 다른 은행 계좌로 이동합니다. 왜냐하면 댐을 비롯한 산업 인프라를 건설할 기술력을 가진 나라들은 모두 선진국의 기업들이고 세계은행에 기금을 제공한 선진국의 기업들이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시공권을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또 댐 건설로 산업이 발전해서 인도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그 이익은 도시의 자본가나 상층 노동자에게만 돌아갑니다. 즉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된 산업자본가, 댐 건설사업의 하청을 받은 인도 건설업체들, 전력공급의 확대로 가전제품을 만들고 팔고 사용하게 된 도시인들에게 댐건설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 기반인 땅을 잃어버린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미미합니다.

▲ 2009년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에 출품된 <나르마다강 죽이기>의 한 장면 ⓒ서울환경영화제

나르마다 강의 댐 건설 사업에 반대하는 저항이 처음 촉발된 것은 이주비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인도 정부가 제시한 이주 원칙은 수몰되는 땅 대신에 다른 땅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만한 땅을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돈으로 보상해준다는 말도 실행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부가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은 수몰되는 지역과 사람 수를 처음부터 지나치게 축소해서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의 정부예상은 30만이 이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1600만 명 이상이 이주한다고 추산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도 정부가 처음부터 수몰민 수를 계산도 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거주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고려하지도 않고 댐 건설 계획부터 세운 것입니다.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주민들, 댐 건설로 인해 삶의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의 저항이 격렬하게 전개됩니다. 이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년 이상이 지나도 세계은행을 내세운 선진국 자본가들과 인도 정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도 더 물러설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기보다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인해서 삶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되는 현지 농민들의 투쟁이란 성격이 강했습니다. 즉 강과 강 유역의 농지라는 천연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나 대자본에 의해 빼앗긴 농민들의 생존투쟁인 것입니다.

몇 년 전 한국의 환경영화제에서 나르마다 강 개발 사업과 반대 투쟁을 다룬 영화가 소개되었을 때 꽤 많은 관심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연상시켰기 때문이겠지요.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과 자본가 집단의 이윤을 위해 생태적 재앙을 초래할 일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두 사건이 유사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4대강 반대 투쟁은 몇 년 만에 동력이 약해졌지만 나르마다 강의 투쟁은 상대적으로 더 지속적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나르마다 강 유역 농민들이라는 피해당사자이자 저항의 주체가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 우리의 4대강 반대 운동은 여야 간의 정치적 힘겨루기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저항의 목표가 희석되고 저항의 강도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된 측면도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생태적 위기가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닥칠 것입니다.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명확하지 않을 때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대중들 스스로 생태적 위기에 맞서 싸우는 운동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면 환경 파괴로 인한 이익을 직접 향유하는 자본가들의 환경파괴 행위를 막을 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생태적 위기가 다른 정치적 동기에 종속되지 않는 것도 대중들이 직접 싸움의 당사자가 될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은 대중들이 정치권력, 학교와 같은 지식 생산 유통의 제도들, 자본, 미디어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힘과 실천으로 지식의 주체가 되어 앎을 획득하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더 깊은 지식은 사회적 특권의 보장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새움'은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식들을 좌파적 관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제들을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부 과정에서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맑스주의 전통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배타적으로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 첫째, 새움은 지식, 학력 등의 어떠한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새움의 모든 활동에는 참가비가 없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지식에의 접근을 막는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새움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않습니다.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지니는 지에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만 가지신다면 누구나 새움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새움은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모든 실무가 결정되고 집행됩니다.

새움에서 열리는 세미나, 특강 및 새움의 운영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www.seumnet.com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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