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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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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38>

제대로 점을 치는 법에 대해

오늘은 점을 치는 법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어 얘기하고자 한다.
  
  "들에서 사람을 만나 함께 하면 큰 강물도 건널 수 있으리라."
  
  이 말은 周易(주역)의 同人卦(동인괘)에 대한 해설 내용에 실린 글이다. 원문은 '同人于野 利涉大川 (동인우야 이섭대천)'이다.
  
  큰 강물이란 험난한 고비를 말한다. 옛 사람들은 물이나 강을 일종의 시련이나 역경으로 받아들였다. 우리의 옛 가요 '정읍사'에도 '젖은 데를 밟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담은 구절이 있고, '공무도하가'에도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큰 강물도 건널 수 있다'는 말은 어렵고 험난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큰 강물을 건널 수 있는지에 대해 '들에서 사람을 만나 함께 하면 그럴 수 있다'고 답하고 있다.
  
  먼저 同人(동인)이란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한다. 同志(동지)를 말한다. 뜻이 같으면 행동도 같이 하는 것이다. 함께 길을 가는 것 같아도 뜻이 다르면 얼마 가지 않아 길을 달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반대로 몸은 따로 있어도 뜻이 같으면 기어코 같은 길로 접어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냥 동지가 아니라 '들'에서 만나야 한다고 글에는 되어있다.
  
  在野(재야)라는 말을 우리들은 자주 쓴다. 재야운동권 또는 재야인사 등등, 모두 들에 있다는 뜻이다.
  
  들이란 어떤 곳인가?
  
  먼저 얘기할 것은 자유로운 곳이다. 가고프면 가고 있고프면 있을 수 있는 곳, 자유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들이다.
  
  다음으로 들은 꾸밈이 없는 곳이다. 野合(야합)이란 말이 있는데, 들에서 남녀가 교합하는 것을 이른다. 그만큼 마음만 통하면 격식이나 꾸밈없이 서로의 노골적인 성욕을 나타낼 수 있는 방식이 야합이다.
  
  우리들은 정치권에서 툭하면 야합이다 아니다로 시끄러운 바람에 일단 나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야합은 건강한 두 욕정이 만나 불꽃을 튀기는 것이니 사실 그다지 나쁜 것도 아니다. 天然(천연)의 情調(정조)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들은 자유롭고 꾸밈도 없지만, 동시에 아무런 보장도 대책도 없는 곳이다. 재야인사는 먹고 살 길에 보장이 없으며 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재야의 활동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직장에 다니거나 공식 직함이 있는 사람은 재야가 아니다. 재야에 있는 사람은 명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들에서 활동하려면 강인해야 한다. 어디든 날이 저물면 노숙할 수 있어야 하고, 배가 고프면 거친 음식이라도 먹어야 한다.
  
  이제까지 들이란 어떤 곳인가를 얘기했다.
  
  재야단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것 역시 서로의 뜻이 비슷했거나 아니면 정말로 맞았으나 시간이 가면서 틀려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럭저럭 보장이 되고 나아가서 부귀영화도 가능하다 싶으면 약간 뜻이 달라도 얼마든지 유지가 된다.
  
  조직운영에 관한 모든 진실은 이 말 속에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동지를 들에서 만난다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지를 얻는다는 것이니 당연히 큰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同人卦(동인괘)는 위에 하늘을 뜻하는 乾卦(건괘)와 밑에 불을 뜻하는 離卦(이괘)가 만나서 만들어진다. 즉 天火同人(천화동인)이라고도 한다. 불은 상승하므로 하늘로 간다. 그래서 同人(동인)이다.
  
  어떤 일을 사람들과 새롭게 도모할 때 이 점괘를 얻으면 大吉(대길)로 치지만 무조건 대길함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를 요한다.
  
  周易(주역)이 좋은 책인 까닭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새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점괘를 얻었다면 다음과 같이 해석함이 마땅하다.
  
  먼저는 좋은 동지를 만날 것이니 큰 강을 건널 수 있으리라는 예지적인 측면이다.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하니 즐겁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좋은 동지를 들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만나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일을 시작하는 장본인 스스로가 들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솔직담백해야 하며, 격식을 떠나 사람을 보는 눈을 지녀야 할 것이며, 타이틀이나 직함을 떠나 사람의 능력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때 만났으니 훗날 일이 잘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처음 먹은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자신이 되어야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역을 비롯한 모든 占書(점서)는 이처럼 양면을 지닌다. 하나는 이렇게 되니 저렇게 될 것이다 하면서 안심을 주는 측면과 이렇게 되어야만 저렇게 될 것이라고 단서를 다는 측면이 있다. 앞의 말이 '조건절'이 되어 'if ... then...'의 형태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니 새 일을 할 때 동인괘를 얻었다면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번에 하는 새 사업은 '나를 포함한 사람'이 핵심요소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사람 간에 만나 일을 할 때 '윈윈(win-win)'이라는 말을 쓴다. 너도 승리하고 나도 승리하자는 것인데, 하는 짓은 대부분 쌍방 패배로 끝이 난다.
  
  처음부터 '윈윈'하자는 사람, 경계할 필요가 있음이다. 일에 있어 성공은 나중 일이고 우선은 함께 고생하고 더 나아가서 함께 죽을 각오가 앞서야 하는 것이니 '윈윈'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結盟(결맹)은 들에서 만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을 '동인괘'는 설파하고 있다. 반대로 겉 무늬만 同人(동인)일 경우 大川(대천)에 빠져죽지 않으면 다행으로 알라는 엄중한 경고의 말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까지 '동인괘'를 들어 어떻게 하면 점을 제대로 치는가에 대해 얘기했다.
  
  점은 하나의 중요한 啓示(계시)를 준다. 그러나 그 계시와 함께 주어지는 부수적인 것 속에는 마땅히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그 계시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지도 알려주고 있다.
  
  占(점)이란 글자는 卜(복)이라는 글자에서 왔다. 卜(복)은 옛날 소뼈나 거북 껍질을 태우면 터지면서 균열이 생기는데 이것이 卜이며 계시가 된다.
  
  그러면 卜, 즉 계시를 보면서 전문가가 해석을 하게 되는데 물론 말로 한다. 그래서 卜에 입 口를(구)를 붙여서 占(점)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占은 계시인 卜을 해석하는 말이고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점이 미신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있다. 하지만 미신이란 말은 그 자체로서 미신적이다.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혹된 가운데 믿는 것이 '미신'이란 말의 뜻이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은 대다수가 미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내 아이들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엄밀히 따지면 미신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희망이고 이런 희망은 모든 부모가 지니고 있다.
  
  이념이나 사상이라 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리 명확한 근거가 없다. 이 역시 자신의 소망을 담은 희망이라 볼 것이다. 거기에 서로의 인간적인 애증이 얽혀들면 격렬한 사회적 투쟁으로 전개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뚜렷한 근거나 이유보다는 의지가 앞서는 존재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점을 치는 것이 미신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점을 제대로 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점을 친 결과는 우리의 희망과 염려를 동시에 반영한다.
  
  다만 문제는 점을 내가 치지 않고 이른바 전문가란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는 데 있다.
  
  요즘 타로 카드가 한창 유행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 어디서나 별로 비싸지 않게 타로 점을 볼 수 있다.
  
  우리 사랑은 이루어질까요,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데 될까요 등등, 해서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한 없이 많다.
  
  재미로 점을 본다고 하지만 과연 이 세상 어느 누구가 재미로 점을 보는가? 물어보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간절한 내 삶의 일이건만. 그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거기에 심리적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 필자도 동감이다.
  
  다만 이왕 타로 점을 보려면 조금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있어 얘기하고자 한다.
  
  앞서 '동인괘'를 예를 들어 얘기했듯이 타로 카드 점 역시 거기에 주어진 계시를 잘 해석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뽑아든 카드 결과를 돈을 받고 해석해주는 사람이 뛰어난 직관과 경험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잘못된 해석을 당신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좋은 타로 카드 점술사를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을까? 좋은 점술사를 만나는 것 역시 당신의 운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타로 점을 정말로 제대로 보고 싶다면 당신 스스로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타로 점을 치는 법을 공부하고 경험과 식견을 쌓는 방법이 정답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싸고 손쉽게 좋은 것을 얻는 법은 없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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