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병역거부자로 이번 회의에 초청된 임재성 씨가 일본 헌법 9조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일본 내의 갈등 양상과 일본 평화운동의 현황 등에 관한 두 번째 현장 리포트를 보내왔다. 임재성 씨는 이번 회의에 포함된 '군대 없는 세계를 향해'라는 워크숍에서도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편집자>
'헌법9조 세계대회'에 앞서 3일 도쿄 히비야에서 열린 헌법집회에 참석했다. 집회는 오후 1시부터 진행될 예정이라서 야스쿠니 신사와 위안부 관련물들을 전시하는 여성 전쟁평화 박물관(WAM,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을 먼저 찾았다.
야스쿠니가 감추려는 두려움
야스쿠니의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에는 황제를 위해 전사했다는 이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출병 직전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라고 외치던 당시 황군의 군인들은 진정 신(神)이 되고 싶었을까.
유슈칸 한편에 전시되어 있는 잠수함은 오직 한 명만이 탑승해 부딪혀 폭발하는 용도였다고 한다. 이제 곧 폭발할 잠수함 속에서 군인은 두렵지 않았을까. 겹겹의 바다 아래 사방이 막힌 공간에 누워서 그는 울지 않았을까. 물론 그 두려움과 무서움이 그들의 죄를 줄이거나 피해자에게 조금의 위안도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야스쿠니의 메카니즘을 통해 군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게 될 수 있다는 분석들을 알고 있었지만 사진 속 그들의 떨림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가해자로서의 일본군인 역시 인간으로서 전쟁이라는 상황 앞에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유슈칸은 그들의 감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즐비하게 전시된 무기와 아시아에서 일본이 점령했던 땅의 지도를 지나 가장 마지막에 마주하는 그들의 얼굴은 감정이 없는 '야스쿠니의 신'으로서 벽면에 채워져 있을 뿐이다.
군인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야스쿠니가 지우고자 했던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을 쏘는 것을 겁내는 군인, 스스로의 죽음을 무서워하는 군대. 이처럼 안 어울리는 두 개의 조합은 자위대의 존재로 인해 이미 얼룩져 있지만 군대 보유를 포기한 일본의 헌법정신이 다시 시작해야 할 지점이라 느껴졌다. 전쟁을 겁내는 국가, 그래서 전쟁포기를 선언하고 전력도 보유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헌법으로서 말이다.
끝이 아닌 시작으로서의 두려움
여성 전쟁평화 박물관(WAM) 입구에서 마주했던 또 다른 얼굴은 과거 위안부였던 이들의 최근 모습이었다. 야스쿠니가 전사자들의 얼굴로 끝이 난다면 위안부의 사진은 WAM의 입구에 배치되어 있었다. 모두 죽었고 신이 되었다는 식의 끝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고통 받았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진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얼굴 공개를 힘들게 결정했지만 어떤 불안함이 남아 있었다.
WAM은 그것을 감추지 않았다. 115평방미터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사진 너머의 공간 가득 위안부였던 분들의 구술기록, 영상자료, 재판서류들로 빼곡했다. 그 자료들은 그녀들이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내가 쏜 총에 맞은 이가 느낄 고통을 안다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 전쟁이 개시되었을 때 군인들에게 가장 먼저 각인시키는 것은 자신들이 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들은 빨갱이다, 저들은 열등한 동물이다, 저들은 표적일 뿐이다. 그러나 WAM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다른 이의 고통이다. 이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과거를 반성하고 총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작일 것이다.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병역거부 이유를 담은 소견서에는 가해자로서의 군인이 만든 고통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나타나있다. 일례로 초등학교 교사로서 병역거부를 했던 최진 씨는 한국전쟁 당시의 양민학살 지역을 순례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고통이 만들어지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다시는 총을 잡지 않겠다는 평화헌법이 여전히도 유지될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이런 작은 자료관들이 진행하는 기억의 노력이 쌓여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리자 헌법, 빛나라 9조"
도쿄 히비야로 이동했다. 5월 3일은 1948년 5월 3일부터 시행된 일본 헌법을 기리는 국경일이다. 히비야 공원에서는 헌법 시행일에 맞추어 호헌세력이 주최한 '살리자 헌법, 빛나라 9조' 일본 5·3 헌법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5·3 헌법집회를 사회당 계열과 공산당 계열이 함께 5.3헌법집회실행위원회이란 이름으로 준비한지 8년째다. 일반적으로 양쪽 계열은 따로 집회를 열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개헌논의에 따른 절박감은 이례적으로 함께 집회를 열어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집회에서는 자위대 해외파병 항구법에 대한 반대, 헌법심사회의 본격화에 대한 반대, 헌법개악 반대라는 3가지 슬로건이 등장했다. 발언자들은 개헌드라이브를 강력하게 진행해서 내외의 반대에 부딪쳤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기대를 받았던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인도양 파병급유법을 중의원에서 재의결하고 통과를 강행한 것은 해외파병 항구법의 성립을 위한 과정이라는 후쿠다 내각에 대한 비판의 쏟아져 나왔다. 헌법 9조를 형해화하려는 또 다른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평화단체를 중심으로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함께 긴자 거리를 행진했다. 집회에 참여한 한국 평화활동가 김영환 씨(평화박물관)는 일본의 평화헌법은 태평양 전쟁이라는 아시아적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헌법이기 때문에 한 나라의 내정이 아닌 공동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생각보다 개헌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시민사회가 힘겹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그러나 점점 그 힘이 부쳐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이 헌법 수호를 위한 큰 규모의 세계대회를 개최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 문제가 일본 안에서만 논의된다면 호헌 진영이 약세일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헌법 문제를 아시아와 세계의 사안으로서 인식하도록 하면서 개헌이 지금과 같이 독단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는 전략의 하나로 세계대회를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아시아와 세계의 시민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일본 헌법 9조를 지켜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전후 일본이 진정으로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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