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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위해 헬싱키 프로세스를 배우자"

이대 평화학연구센터 "동방정책의 일관성 배워야"

1970~80년대 유럽의 동서 양진영이 추진했던 이른바 '헬싱키 프로세스'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가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일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발표자들은 군비경쟁이 강화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헬싱키 프로세스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75년 헬싱키 최종의정서에 서명하고 있는 동서 양 진영의 지도자들 ⓒ로이터=뉴시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동북아에)다자간 지역안보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 당사국간 '대화와 협력의 습관'이 축적되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성공적인 협력안보의 사례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헬싱키 프로세스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위원은 동북아 지역의 안보구조는 냉전시대의 쌍무동맹을 중심으로 이뤄져 기본적으로 대립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서도 "역내 국가들이 상호 군사적 신뢰수준을 높여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려는 다자간 지역안보협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그 사례로 6자회담을 꼽았다.

그는 "동북아 안보협력의 최종적인 목표는 지역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라면서 "지역공동체를 실현한다면 국가 사이의 세력균형은 물론 전쟁의 근본원인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헬싱키 체제 / 헬싱키 최종의정서 / 헬싱키 프로세스

헬싱키 프로세스는 1975년 헬싱키 최종의정서 채택을 기점으로 1989년 베를린 장벽 해체, 1991년 소련 해체에 이르는 공산권 붕괴 과정을 의미한다. 헬싱키 의정서에는 미국, 소련, 서독, 동독 등 동서 양 진영 35개국이 참여해 안보협력, 경제협력, 인권협력 등에 관한 10대 원칙이 담겼다. 헬싱키 체제는 소련이 1950년부터 거론해 오다가 1969년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공식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를 통해 유럽 지역의 긴장은 완화됐고 결국 사회주의 체제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된다.

신인아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서독은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독일 통일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역사적 선물'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주장했다.

신 연구위원은 "서독은 동방정책이 독일의 역사적 특수성에 따른 동구권 진영의 불신 때문에 제대로 진척되지 않자, 소련이 제안한 유럽 다자간 회담, 즉 헬싱키 프로세스를 동방정책과 연계시켜 신동방정책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의 제도화 과정에서 서독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분단과 불신 관계를 신뢰관계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이러한 것들이 훗날 독일통일을 가져다준 맹아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서독 관계개선을 향한 정책적 일관성, 그리고 그것을 데탕트 구도 속에서 전개한 점을 동방정책의 특징으로 꼽고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일관된 대북정책, 남북관계 개선과 역내 다자안보협력 정책을 병행하는 것이 남한에 주는 특별한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 학술회의 전경 ⓒ프레시안

서보혁 연구위원은 "범유럽 안보 논의에는 전쟁 재발 방지와 유럽의 공동번영을 목표로 한 서유럽국가군과 소련의 이해관계가 기본 동력이었다"면서도 "구체적인 상황 진전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했다.

서 연구위원은 "미국은 국제정치에서 다자적 접근보다는 양자적 혹은 일방적 접근을 선호해왔다"며 미국은 초기 헬싱키 프로세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국이 태도를 바꾼 것은 전략무기제한협상, 상호균형감축협상 등 소련과의 전략적 균형에 우선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소련과의 군사협상이 진전하거나 혹은 그것을 위한 대소 협상력 제고를 위해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는 탈냉전기 미국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박경서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센터장

초대 대한민국 인권대사를 역임(2001~07년)한 박경서 이대 석좌교수는 이 학교 학술원의 평화학연구센터장으로 지난 1년간 헬싱키 프로세스에 관한 연구를 책임져 왔다. '헬싱키 프로세스의 역사적 복원과 동북아 적용 가능성에 관한 연구'라는 이름의 첫 학술회의는 이 연구의 중간 결산이다.
▲ 박경서 이화여대 석좌교수. 전 대한민국 인권 대사 ⓒ프레시안

프레시안 : 헬싱키 프로세스를 과연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을까?

박경서 : 물론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 비전과 영감, 프로세스, 테크닉을 동북아적인 맥락에 맞춰 적용하자는 게 우리 연구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인권, 경제협력, 안보, 인도주의적 원조를 한꺼번에 논의하자는 헬싱키 프로세스의 '포괄적 접근' 같은 개념은 한반도에 주는 교훈이 굉장히 크다. 헬싱키 프로세스에는 10개의 원칙이 있었는데 참여하는 35개국이 2~3개만 찬성해도 들어오게 하는 식으로 포용적인 틀을 만들었다. 그런 정신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인권, 평화에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응용할 수 있나?

박경서 : 동서독과 미국, 소련, 동유럽, 서유럽이 다 같이 참여해 1975년 헬싱키 의정서에 사인을 한 것 자체를 본받을 수 있다. 6자회담이 지금은 핵 문제만 얘기하고 있지만 좀 더 발전되어 몽골 같은 나라까지 들어와 헬싱키 프로세스처럼 공동으로 뭔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안보, 평화정착, 경제협력, 남북한 문제를 그 자리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프레시안 : 헬싱키 프로세스는 기본적으로 다자틀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전략동맹을 한다고 한다. 양립할 수 있나?

박경서 : 양자 협력이 평화 정착에 부정적으로 작용할지 긍정적으로 작용할지에 따라 다르다. 한미 전략동맹이 어느 쪽으로 갈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오픈된 상태다. 현 단계에서 나오는 말들은 단지 추측일 뿐이다.

헬싱키 프로세스에서도 처음에는 소련이 이니셔티브를 쥐었다. 동구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서구에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동구의 몇 나라들은 소련과 완전히 따로 놀았다. 알바니아는 중국편을 들었고, 유고는 독자노선 걸었고, 헝가리나 체코도 자기 생각대로 움직였다. 소련은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한 틀에 묶어 두려고 했다. 소련이 주도하니까 처음에는 헬싱키 프로세스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들어왔다. 그렇게 여러 맥락 속에서 각자 자신의 생각을 가지면서 한 틀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남과 북이 대치 국면을 지나 화해하고 공존하게 되면 동북아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은 북대로 중국에 대한 영향력이 있고, 남은 남대로 우방국에 대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남북공조가 되면 동북아에 새로운 시대가 올 수 있다. 집단안보나 지역안보로 갈 수 있고, 경제협력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고, 중국이나 북한의 인권 문제도 서로 상의해서 개선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있을까?

박경서 : 지금은 과도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포용정책에 대해 '노(No)' 한 적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통일부 장관이 '북핵 해결 안 되면 개성공단 확대 못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스태프 몇 사람이 몇 마디 한 게 전부다. 통일부 장관은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6자회담은 곧 성공할 것이다. 그럼 개성공단은 더 발전할 것이다'라고 했어야 한다. '핵이 발견되면 어떡할 거냐'고 물으면 '우리 군인들에게 맡겨 주십시요'라고 해야지 '부숴버리겠다'고 했던 것도 그렇다.(김태영 합참의장 발언)

북한도 이명박 정부 스태프들의 피상적인 발언만 가지고 강하게 나왔는데 양쪽의 당사자들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인식시키면 과도기적인 현상은 곧 바뀔 것이다.

프레시안 : 헬싱키 프로세스 하면 우선 동구 인권 개선이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의 북한 인권 접근법을 평가한다며?

박경서 : 인권 개선의 첫 번째 원칙은 당사자주의다. 당사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3자가 대신 인권을 신장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원칙은 인권이 정치적 도구가 되어 당사자를 코너에 몰아 공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권이야 말로 평화적인 대화에 의해 당사자가 인권은 정말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제3자들이 만들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인권에 완전무결한 나라는 없다. 따라서 북의 인권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헬싱키 프로세스의 6번째 원칙은 내정불간섭이고 7번째 원칙은 인권이었다. 그래서 동구에서 저항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의정서에 모두 사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구도 인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하게 됐기 때문이다. 1975년 헬싱키 의정서가 완성되면서 서독은 동독의 인권을 건설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런 걸 우리가 배워야 한다.

또한 인권은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권에는 자유권, 사회권 외에 발전권, 평화권, 환경권까지 있다. 자유권만을 인권으로 보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유엔은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 특별선언에서 자유권과 사회권을 균형적이고 보완적으로 다루라고 권고했다.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자유권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다른 인권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

프레시안 : 동독이 서독을 건설적으로 도왔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박경서 : 동독이 서독으로부터 받은 인도주의적 원조는 말도 못 한다. 남에서 북에 주는 원조의 몇십배에 달했다. 심지어 폭스바겐 공장까지 동독에 지어서 스스로 걸음마를 걷도록 했다. 우리도 (지난 10년간) 그렇게 했다. 이명박 정부도 그걸 안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과거의 대치국면으로 간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문제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우리는 여야가 남북문제에 대해 같은 길을 걷지 않았는데 서독은 같이 갔다. 분단 45년 간 기민당과 사민당이 같이 갔다. 민족의 문제는 정권 차원이 아니라 훨씬 높은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속성을 가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걸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 잔뜩 퍼주기만 하고 이니셔티브를 뺏겼다고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6자회담도 잘 돼가고 있고, 작년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전세계가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치국면으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특히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박경서 : 남과 북의 문제는 역지사지의 사고를 가져야 한다.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봐야한다. 그걸 나는 '2분의 1 운동'이라고 부른다. 내 고집과 주장을 2분의 1로 줄이자는 것이다. 북도 자기 주장과 고집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

둘째, 남남갈등이 문제다. 비행기나 독수리는 모두 두 날개로 난다. 우리 사회에는 합리적 보수가 많다. 1인당 수입이 2만 불을 넘으면 어떤 사회건 보수화되기 마련이다. 또 나라가 개혁하고 전진하려면 다수의 이성적인 진보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 역시 많다. 문제는 몇몇 완고한 보수 세력이 합리적인 보수들을 누르고, 파괴적인 진보세력이 이성적인 진보세력을 누르고 진보의 대표인양 한다는 점이다. 이제 지성인들, 특히 언론이 가운데에서 양쪽을 추슬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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