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尸(시)/卩(절)/乃(내)/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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尸(시)/卩(절)/乃(내)/乙(을)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34>

'어질다'인 仁(인)은 人(인)과 二(이)를 합친 글자다. 그런데 그 이체자로 尸(시) 밑에 二를 더한 형태가 있다. 人 대신 尸가 들어간 것이다. 仁자는 두(二) 사람(人)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 것이라는 등의 미덥지 않은 회의자식 설명이 있을 뿐인데, 人 대신 尸자가 들어간 이체자가 있다면 그나마 이런 설명은 더욱 힘을 잃는다. 회의자에서는 한 요소가 다른 의미의 글자로 대체된다면 전체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尸는 '주검'의 뜻이다. <그림 3>이 그 소전체다. 보통은 사람이 몸을 굽힌 모습으로 설명한다. 사람이 쭈그려 앉은 모습이라고도 하지만, 몸을 굽힌 상태로 시신을 묻었던 장례 풍습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屈葬(굴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의 부수자의 하나인 尸는 죽음과 관련된 구성 요소로 쓰인 사례가 별로 없다. 居(거)·屋(옥)·層(층)·屢(루) 등 일부는 '집'과 관련된 의미로 쓰였다. 이는 아마도 옛날 비슷한 모습이었던 戶(호)나 广(엄)·厂(한)·宀(면) 등 집과 관련된 글자가 잘못 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꼬리'인 尾(미)는 尸 부분을 사람의 모습으로 보기도 하나 그 경우에도 죽은 사람은 아니다. 屈(굴)·尿(뇨)의 尸는 尾의 생략형이다.

屍(시)의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주검'이라는 그 뜻은 死(사)에서 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尸가 죽음과 관련된 글자였음을 분명하게 입증해주는 사례는 아니다. 대부분은 尸가 죽음과 관련 없는 글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尸는 人의 단순한 이체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림 2> 역시 尸의 옛 모습이라고 하는데, 이는 人의 옛 모습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지금 尸자로 분류되고 있는 글자들은 人자 가운데 구부러짐이 심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얼마나 심하게 구부러졌느냐는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로 별개의 글자가 될 수는 없다.

尸가 人의 이체자 목록에서 이탈한 것은 屍자 때문인 듯하다. 尸의 의미와 발음이 모두 屍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尸는 屍의 훈·음을 빌려다 버젓이 독립된 글자 행세를 해왔고, 人의 변형이나 戶 등의 변형이 들어간 글자들을 끌어모아 부수자로까지 '출세'한 것이다. 어쩌면 尸가 屍의 약자로 쓰이면서 이런 독립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尸는 人의 단순한 변형에 불과하며, 그 화석 증거가 '尸+二' 형태인 仁의 변형이다. <그림 1>과 같은 仁의 모습이 그런 이체자로 남은 것이다.

人의 변형 가운데 亻과 儿은 그런 내력이 이미 인정된 글자들이다. 亻은 人이 다른 글자의 구성 요소로 들어가 왼쪽에 자리잡을 때의 모습이며, 儿은 아래로 들어갈 때의 모습이다. 물론 儿은 별개의 부수자로 '어진사람 인'이라는 독자적인 훈·음을 지니고 있지만, 그 훈·음에 여전히 人의 자취를 남기고 있어 별개의 글자가 아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여러 가지 포즈를 이용해 각기 다른 글자를 만들었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그 글자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구부러진 모습으로 그린다 하더라도, 보는 사람에게 그런 주관적인 느낌까지 전달한다는 것은 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는 글자가 尸 외에도 또 있다. 卩=㔾(절)이다. 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의 모습이니, 죄인이나 포로나 아랫사람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에서 무릎의 관절을 나타낸 글자라고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 4>와 같은 卩의 모습은 <그림 3>의 尸보다도 더 人의 옛 모습에 가깝다. 이것 역시 별개의 글자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단순한 이체자다. '병부 절'이라는 훈·음은 2차 파생자 節(절)에서 얻어온 것이다. 尸가 屍에서 훈·음을 얻어온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따라서 卩이 兵符(병부)를 반으로 쪼갠 모습이라는 등 이와 관련지은 풀이들은 모두 허구다.

乃(내)는 간단한 모양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인지, 어떻게 만들어진 글자인지 추측이 쉽지 않다. 여자의 젖을 그렸다거나, 몸을 동그랗게 구부린 태아의 모양, 노끈 모양, 심지어 기운이 굽이치는 모양이라는 설명까지 있지만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얘기다.

<그림 5>가 그 옛 모습인데, 이는 <그림 3> 같은 尸자와 비슷하다. 지금 글자꼴인 乃는 또 卩과 비슷하다. 오른쪽 획이 한 번 더 꺾어진 모습일 뿐이다. 이는 <그림 2> 같은 모습과 연결될 수 있는 필획이어서, 乃 역시 人의 이체자였다가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파생자 孕(잉)·仍(잉) 등의 발음이 人과 흡사한 점이 눈에 띈다.
乙(을)은 후대에 정착된 모습이 새를 닮아, 새를 그렸다는 주장이 뿌리깊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봄에 새싹이 구부정하게 자라는 모습, 사람 목의 모습, 물고기 창자의 상형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물이 흐르는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이는 水(수)자의 세 줄기 흐름의 모습을 한 줄기로 줄인 것에서 착안한 듯하다.

乙의 옛 모습은 간단히 말하면 S자 곡선이다(<그림 6, 7>). 그런데 이는 <그림 5>와 같은 乃의 옛 모습을 조금 더 간단히 처리한 것이고, 특히 <그림 7>은 <그림 3> 같은 尸와 비슷하다. 乙이 乃나 尸와 닮았다면 결국 역시 人의 변형인 셈이다. 발음은 받침이 달라졌지만, 받침의 ㄴ/ㄹ은 종종 호환되는 발음이다.

尸·乃 등은 人의 옛 모습을 휘갈겨 쓴 모습에서 나온 변형으로 보이는데, 乙 역시 마찬가지다. 尸·乃·乙은 모두 人의 원시적 초서체인 셈이며, 특히 乙은 휘갈김의 정도가 가장 심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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