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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없는 나라 일본'을 만들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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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없는 나라 일본'을 만들려는 사람들

['헌법9조 세계대회' 리포트] ① 회의에 참가하며

5월 3일부터 6일까지 일본 도쿄에서는 '전쟁을 없애기 위한 헌법 9조 컨퍼런스'라는 국제회의가 열린다. 교전권(交戰權)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일본 헌법 9조를 지키고 그 정신을 알리기 위한 이번 회의에는 전세계 평화활동가 1만 여명이 참석한다.

한국의 병역거부자로 이번 회의에 초청된 임재성 씨가 일본 헌법 9조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일본 내의 갈등 양상과 일본 평화운동의 현황 등에 관한 현장 리포트를 보내기로 했다.

고려대 법과대학 재학 중이던 2002년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현재 '전쟁없는 세상'이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재성 씨는 이번 회의에 포함된 '군대 없는 세계를 향해'라는 워크숍에서도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편집자>


일본에는 군대가 없다

진실은 불편하다고 했던가. 일본에 군대가 없다는 것은 진실이다. 2차 대전 패전국으로 일본은 1947년 시행된 헌법에서 국가간의 교전권을 포기하고 육·해·공군 등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다음은 일본 헌법 9조이다.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
1)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2)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 헌법은 평화헌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헌법이 있었기에 같은 2차 대전의 전범인 독일이 징병제를 실시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병력의 일부를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여전히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실은 불편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정의 명령으로 일본은 7만 5000여 명의 경찰예비대를 창설하게 된다. 이것이 1952년 보안대로 재편되었다가 1954년 현재의 자위대가 되었다.

그 후 전력은 지속적으로 확충되었다. 1990년대 일본 우경화의 경향 속에서 동맹국이 위험한 것도 우리의 위험이라 볼 수 있다는 집단자위권 개념이 등장하고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 등이 제정되면서 자위대의 위상과 활동은 더욱 커져갔다. 이것이 분명 군대가 아니지만, 누구나 군대라고 생각하는 자위대의 탄생과 성장 과정이다.

일본은 2006년 기준으로 세계 5위의 국방비 규모(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발표 437억 달러)를 자랑하고 있다. 그 비용은 자위대의 모집과 훈련, 무기구입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 군대 없는 일본이라는 진실이 불편한 이유다.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만 불편할까? 아니다. 일본인들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각각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나는 거추장스러운 헌법을 바꿔서 현실을 정당화 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헌법 9조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방식이다.

양쪽은 흔히 개헌세력과 호헌세력이라고 지칭되는데, 다행히도 여전히 과반수가 넘는 일본인들은 개헌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 '전쟁을 없애기 위한 헌법 9조 컨퍼런스' 로고 ⓒwww.whynot9.jp

평화국가와 보통국가 사이

필자는 평화주의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감옥에 가야 하고 그 후에도 평생 전과자라는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누군가는 먼저 총을 내려놓는 것이 바보 같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답이라 생각했다.

그런 필자에게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평화헌법은 현실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참 가슴 뛰는 대상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유엔본부 앞에 만들어 놓은 구부러진 총 모양의 동상만큼이나 말이다. 헌법 9조가 자위대를 막지 못했고, 유엔이 베트남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막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더욱 추구해야 할 이유라고 봤다.

19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일본 내의 장기 불황으로 사회당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진보세력은 몰락하게 되었다. 흔히 '55년 체제'라고 지칭되는 여당인 자민당과 야당인 사회당의 세력균형이 무너지면서 일본 정치는 급격히 보수화되었고, 그간 마음속으로만 끙끙 알아왔던 일본의 보수파들은 드디어 속 시원하게 개헌해서 '보통국가'가 되자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같은 한자권이어서 이해하기 쉬운 점도 있지만, 일본 사람들이 말을 만드는 걸 보면 참 기발하다. 전쟁을 할 수 있고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국가를 보통국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 프레임 안에서는 평화국가는 무언가 결핍된 국가가 되어버린다. 개헌세력은 이제 과거는 털고, 미군정에게 일방적으로 이식당한 헌법을 바꿔 국제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당당한 보통국가가 되자고 주장한다.

2007년 4월 13일 일본 중의원에서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안'을 통과되었다. 일본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 국민투표에 대한 절차가 없었다. 그래도 문제되지 않았던 것은 아무도 개헌을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없었던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고 일본의 무게추가 점점 더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우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는 목소리와 함께 개헌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국민투표법안이 통과된 뒤 자신의 임기 내에 개헌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비록 몇 개월 뒤 낙마하기는 했지만 아베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개헌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평화국가와 평화헌법. 비록 현실은 불편했지만 가슴이 뛸 만큼 멋진 가치가 사라지려고 한다. 일본이 그러한 헌법을 정했던 것은 단지 당시의 미군정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호헌세력 쪽에 수많은 역사적 사료로 증명한 바대로 전쟁포기는 전후 전쟁에 대한 철저한 반성 위에서 당시 시데하라 기주로 총리가 먼저 제안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즉, 시데하라의 제안은 아시아의 수많은 죽음과 울부짖음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비록 껍데기만 남은 것이지만 그 값비싼 성찰의 결과물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9조가 죽었다고 말하는 이들과 실리려는 이들

이미 많은 이들이 9조는 죽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말 하나를 더 만날 수 있다. 해석개헌. 헌법의 명문을 바꾸는 것은 절차도 복잡하고 반대여론도 크기에 명문은 그대로 두고 해석만 다르게 하는 것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물론 법률에 있어서 해석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그 해석이 시대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탄력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노골적으로 '해석개헌'이라고 표현하면서 본래의 가치를 짓밟는 결정을 하고 있는 상황은 이미 9조의 생명이 다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헌은 단지 이미 죽어있는 시체를 염해서 관에 넣는 일일 뿐일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1만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을 들 수 없다는 신념을 이유로 군대 대신 감옥을 택했다.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던 국가보안법은 지금도 구속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들어 병역거부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리 현실에서 그 가치가 더렵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더러움을 비판하고 닦아낼 수 있는 힘은 헌법이 '양심의 자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한국이지만, 그럼에도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우리의 헌법이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헌법 9조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일본에서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보루다.

지난 4월 18일 일본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자위대 이라크 파견 위헌 소송에서 항공자위대의 공수활동은 헌법 9조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또한 전투지역인 바그다드에서 무장병력을 수송하는 것은 무력행사와 같은 행동이라고 위헌 판결을 내렸다. 세계 5위권의 무력대국 일본이지만 평화헌법이라는 제약 아래서 해외지역에 파병할 경우 후방지원 업무만으로 행위가 한정되었는데, 그 업무까지도 결국 무력행사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에 헌법 9조를 위반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는 왜 헌법 9조가 지켜져야 되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다.

이에 대해 일본 항공자위대의 다모가미 도시오 항공막료장은 '그딴 것 관계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헌법도 해석으로 바꾸는데 법원 판결 정도야 신경 안 쓴다고 하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좀 껄끄러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거추장스러운 9조를 없애고 싶어 한다. 그러나 9조를 부여잡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것마저 놓치면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외치는 이들이다. 이번 재판은 나고야시민 등 1100여 명이 정부를 상대로 벌인 소송이었다. 그들이 기댄 것은 헌법 9조였다.

'전쟁을 없애기 위한 '글로벌 아티클 9 컨퍼런스'

5월 3일은 일본에게 제헌절과 같은 날이다. 당연하게도 헌법 9조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이 날을 즈음해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3일부터 6일까지 도쿄에서 열리는 '전쟁을 없애기 위한 헌법 9조 컨퍼런스'는 그 중 하나다. (☞관련 사이트)'가 열린다. 이 회의에는 아시아와 전 세계에서 1만 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일본 헌법 9조를 지키고, 그 정신을 널리 알릴 예정이다.
▲ 필자 임재성 씨 ⓒ임재성

필자는 이번 회의에 포함된 '군대 없는 세계를 향해''라는 워크숍에 참석한다. 어떤 이가 평화헌법을 가진 일본을 '양심적 군대거부 국가'라고 지칭했던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 참가하는 워크숍은 그러한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가해자인 일본에서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평화주의 운동이 뿌리박고 보다 대안적인 모색을 해 나가는데 피해자인 한국에서는 여전히 병역거부자는 파렴치한 인간일 뿐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고 오늘도 감옥으로 보내지고 있다. 다른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점들이 있지만 말이다.

폭력이라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과정의 악순환이라던데 수많은 침략의 역사를 통해 크나큰 아픔과 상처를 가진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군사대국이 되어있고 감옥에는 전 세계에서 수감된 병역거부자들 중 80%가 넘는 젊은이들이 갇혀있다. 이라크에는 한국의 군인들이 파견되어 있고, 베트남 총리가 먼저 과거를 잊자며 돈독한 경제협력을 부탁한다.

그렇다고 헌법 9조나 일본의 평화운동을 낭만화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되는 일본 집권세력의 언행을 보면 헌법과 운동이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헌법 9조가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는 하나의 마지노선으로,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전세계의 국가와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서 사고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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