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올라 자리 잡고 우리는 옆사람에게 그날은 왜 노느냐고 물었다. 쯧, 하며 턱을 치켜들어 그게 아니라는 아랍식 제스처를 하고, 옆사람은 말했다. 그날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에 항의하기 위해 라말라 시 전체가 문을 닫은 거라고. 그날 새벽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에서 20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날은 축제도 휴일도 아니었다. 애도의 날이었다.
다음날 고속버스가 예루살렘 터미널에 서자마자 우리는 튀어 내렸다. 하이파에서 예루살렘까지 세 시간 반,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전날 하이파에 갈 때도 버스의 이스라엘 승객들이 그리 정숙한 편은 아니었으나, 올 때는 특히 젊은이들이 많아 무척이나 부산스러웠다. 과자 들고 통로에 서서 떠들고, 자리 옮겨 다니고, 여기저기서 웃음 터트리고 음악을 틀기까지 했다. 우리 바로 뒤에 앉은 아가씨는 버스가 출발할 때 휴대전화를 걸더니 설 때까지 계속했다.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 걸어 방금 다른 친구와 한 이야기를 옮기는 듯했다. 더구나 목소리가 칼칼했다.
도망갈 수도 없이 폐쇄된 공간에 꼼짝없이 앉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히브루어 잡담 세례를 받다보니, 급기야 복태는 그들의 말소리가 '짹짹' 소리로 들린다고 했다. 짹짹짹짹짹짹........ 그 버스가 무슨 수학여행 버스 같다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스무 살 직전이거나 갓 넘었을 앳된 젊은이들은 거의 다 제복을 입고 있어서 학생처럼 보였고, 왁자한 분위기는 수학여행하고 비슷했다. 한 가지, 그들이 남자건 여자건 군인들이라는 것만 빼면. 그들의 제복은 교복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복이었다. 몇 명은 엠씩스틴을 들고 버스에 탔다.
그 유쾌한 젊은이들이 군복무를 수행하러 팔레스타인 안에 파견되어 검문소에 서있으면, 폭군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검문소 앞에 몇 시간 줄 서 있는가는 그들의 변덕스러운 맘에 달렸으며, 검문소를 통과해도 되는가 마는가는 그들의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달렸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손가락이나 발끝을 까딱하여 명령했다.
예루살렘 택시 운전사가 서안 지구로 들어가는 버스들이 모이는 터미널까지 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우리는 큰길에서 내려 걸어갔다.
"집에 가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조용하잖아."
그러나 우리가 틀렸다. 그날따라 라말라 행 마지막 버스는 끔찍이 시끄러웠다. 앞자리의 승객들은 뒤로 돌아앉고, 가운데 승객들은 통로를 향해 옆으로 앉고, 뒷자리의 승객들은 앞으로 다가앉아 다같이 대토론이라도 벌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어디나 떠드는 날인가 봐."
우리는 한숨지으며 속삭였다. 라말라와 예루살렘을 오가는 버스는 물론이고 서안 지구의 다른 도시 행 버스도 여러 번 타보았지만, 버스 승객들이 떠드는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떠들어도 너무 떠들었다. 서로 말하려 하고, 말하는 사람마다 두 손을 흔들면서 열변을 토했다. 한 중년남자는 말하는 데 능숙하여 직업이 교사나 성직자이지 싶었는데, 너무 능숙해도 듣는 사람한테는 고문이었다. 우유처럼 부드럽고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청중을 매료시키다가, 갑자기 정수리 가르고 심장 쪼개는 기세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리고 다시 달래는 듯, 홀리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 다시 고래고래...... 가슴팍이 딱 벌어지고 상체가 퉁퉁하여 타고나기를 목청이 좋은 데다, 흥분하여 평생 쌓인 공력에 감정까지 한껏 목소리에 얹으니 가히 사자후의 경지였다. 공기와 함께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까지 찌르르 울렸다. 창가 쪽에 앉은 나는 통로 쪽에 앉은 복태가 막아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복태는 손짓으로 내게 말했다. 자기 고막이 뚫어진 것 같다고.
라말라에 도착하여 아직 문 닫지 않은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물었다. 역시 그랬다. 그날 또 가자 지구에 이스라엘이 미사일을 퍼부어 하마스의 고위 지도자가 죽었다. 내가 팔레스타인에 머물면서 절망감을 느꼈다면, 그날이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비극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일상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마다 두 손을 흔들면서 열변을 토했다는 것도, 그 전날 항의와 애도의 표시로 라말라 시민들 전체가 하루를 보이콧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아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날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저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였다.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 유린을 지탄하는 양심적인 이스라엘인들조차 대부분, '안전'을 이유로 검문소나 장벽 자체에는 찬성한다고 한다. 안전한 삶을 원하는 거야 당연하고,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당연한 군복무를 수행하러 총 들고 팔레스타인에 간다. 그러나 그들의 안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를 전제로 한다. 이 모순을 그들은 모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상에 대해 누군가 따진다면 그들은 억울한 느낌이 들고 분통이 터질 것이다.
복태와 나는 어둡고 적막한 라말라 거리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우리는 장벽에 갇힌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 다녀왔으나, 장벽 안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장벽 안에서 바깥으로 나온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 애먹을 쪽은 팔레스타인이 아닌 듯싶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분리시키려고 장벽을 쌓았으나, 그럼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쪽은 자신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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