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나 사슴들도 저렇게 안온한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아우성치고 괴로워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던 것일까...?
산책을 나왔다는 것을 잊은 채 그들 곁에 머물렀다. 그들은 먹는 일에 열중하고 있거나 편안히 앉아 쉬고 있었다. 잠든 녀석들도 있어 보였다. 조금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소리 질러 그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모두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산도 나무도 사슴도 노루도 사람들도 모두 서로를 받아들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자이언에서 나를 위로한 것이 어찌 그들뿐이었을까. 지난 밤 내내 영롱한 빛을 발하던 수많은 별들 또한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였다. 별은 밤하늘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암벽의 산마루에서도 빛났고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나뭇가지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마루턱에 걸린 별들은 그곳에도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고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별들은 그곳에도 위로 받아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뿐인가. 별은 고요히 흐르는 버진 강에도 내려 앉아 있었다. 별빛 내려 앉은 버진 강은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 낸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며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흐르는 강은 너무나 깊은 듯 멀리 있는 듯 아스라하기만 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발걸음을 멈추고 강을 바라보다 눈물지었던 그 밤이 내 가슴 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겠지.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며 아스라하게 흐르고 있겠지.
2,000피트, 3,000피트 솟은 암벽들과 참나무들과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로, 버드나무와 단풍나무들 사이로 흐르고 있겠지.
강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흐르고 있겠지.
그 모든 것들이 자이언의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안온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안온함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조금 들떴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길을 나섰다. 오후에는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가능하면 많은 Trail을 걸을 계획이었다.
Temple of Sinawava로 향했다. 버진 강을 따라 약 2마일 정도 오르다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자이언 국립공원의 비경 중의 비경이다. 길손들에게 섣불리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려진 땅이다. 가히 신의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땅이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길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차가 한 대도 없으니 좋지요? 이 공원에서는 Zion Lodge 투숙객들만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어요. 다른 관광객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해요.'
창밖으로 흐르는 버진 강가의 나무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내게 동행은 말을 건넸다.
'정말 차가 한 대도 없네...! 예약하느라 고생은 하였지만 그래도 Zion Lodge에 투숙한 보람이 있네.'
우리가 흐뭇해하며 달리는 사이에 어느 덧 차는 Temple of Sinawava로 갈 수 있는 Trail Head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가벼운 배낭을 챙긴 후 Trail로 향했다. 그 때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이언 국립공원의 교통수단인 버스를 운전하는 마음씨 좋게 생긴 기사였다. 살집 통통하고 귀염성 있게 생긴 그녀는 이 공원에서는 버스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차를 몰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해요. 공원을 지키기 위한 것이에요."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지만 돌아가 차를 숙소에 두고 버스를 타고 나오면서도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이 아름다운 땅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하들도 이렇게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Temple of Sinawava로 향하는 이들이 많았다. 남녀노소 한데 어울린 가족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길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반가운 눈인사를 하며 지나는 곁으로 젖은 암벽마다 자란 이름 모를 풀들과 잎들이 다소곳이 나를 반긴다. 쓰다듬고 사진을 찍으며 가는 사이에 어느 새 길은 끊어져 있었다. 그곳에서부터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강물은 짙은 옥빛이었다. 흙탕물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바지를 걷고 강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들처럼 청바지를 입고 가벼운 배낭까지 메고 온 이들도 있었지만 수영복차림이나 반바지에 가벼운 셔츠 하나만 걸치고 온 이들도 많았다. 우리는 왜 사람들이 수영복이나 반바지 차림으로 왔는지 알지 못한 채 강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사진으로만 보았던 신의 손길이 빚었다는 자연의 원형극장인 Temple of Sinawava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짙은 물빛으로 인해 강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강바닥은 온통 자갈과 돌멩이들이었다.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물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강물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깊이 흐르는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강이 매우 깊어지고 있으니 조심하세요.'
말하는 사이 허방다리를 짚은 듯 몸이 강바닥으로 꺼지듯 빠져들었다. 강물은 금방 허리까지 차올랐다. 이미 옷은 상의까지 거의 젖어 있었다. 강물은 점점 깊어져 앞선 사람들의 가슴과 어깨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강물이 차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굽이만 돌면 Temple of Sinawava가 보일 것 같은데...
자연의 손길로 암벽들을 빚은 후 빗자루로 곱게 쓸어낸 듯 층층이 결이 나있는 사층리 암벽인 체커보드 메사와 함께 자이언 국립공원을 유명하게 만든 Temple of Sinawava가 저 굽이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은데...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너무나 준비가 부족했다.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 만나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강물을 거슬러 강물 속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길은 인생길을 닮아 있었다. 먼 길을 왔다고 반드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걸어왔다고 원하던 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인생길을 닮았다. 언제나 예기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는 것 또한 닮아 있다.
가고자 했던 곳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버진 강을 걸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만 년 수십만 년 흐르던 강물에 몸을 적시며 그 영겁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뻤다. 강을 벗어나 운동화를 벗자 그 속에서 강물이 흘러 내렸다. 오랜 여행길에 이미 더러워진 운동화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며 우리는 웃었다.
벌써 시간은 11시를 넘어 정오를 향하고 있었다. 유타와 네바다와 애리조나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자이언의 여름 햇살은 뜨거웠다. 강물에 젖었던 몸은 이내 땀으로 뒤덮였고 젖었던 옷은 새로운 Trail을 만나기 전에 벌써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우는 바위'(Weeping Rock)라는 이름을 지닌 바위를 보기 위해서였다. 바위가 도대체 어떻게 운다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보고 싶었다. '우는 바위'를 향해 걸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졌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왼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묵직한 통증이 깊게 찔러오기 시작했다. 가벼워졌던 마음과 달리 몸의 피로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점점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삼십 분이면 갈 수 있다는 '우는 바위'는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Trail을 따라 내려오는 이들에게 길을 묻고 서야 우리는 어디서부터 길이 어긋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우는 바위'로 빠지는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계속 직진하여 전혀 다른 곳으로 와 있었다. East Rim Trail과 Observation Point Trail과 Cable Mountain Trail이 만나는 산의 마루에 가까운 지점까지 올라와 있었다. 지쳐가는 몸을 바위에 기대고 앉았다.
눈 아래로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건너편에는 갈색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다. 수 십 수 백 만년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여러 결을 지니고 있는 퇴적암이다. 그 오랜 옛날 물이 어디서 어디로 흘렀는지 물의 속도는 얼마나 세었는지 수심은 얼마나 깊었는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간의 바위이다. 당시 퇴적물의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 땅이 어떻게 솟고 꺼졌는지 도 알려주는 자연사 박물관과 같은 바위이다. 사람들은 그 바위에 새겨진 결들을 통해 이 모든 이야기들을 듣는다.
저 바위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처럼 사람들은 내 마음과 우리 삶의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을까.
오랜 세월 탓일까. 곱게 머리를 빗은 것 같은 퇴적암들이 전나무와 소나무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리고 위로 눈처럼 희디 흰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하나의 바위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하얀 색의 바위가 온 산을 덮듯이 놓여 있었다. 장엄한 모습이었다. 이끼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보이는 단단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바위 위에 작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제법 떨어져 있으나 나란히 서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렇게 매끈하고 거대한 암벽의 꼭대기에서도 살아가고 있다니...
두 그루 나란히 서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구나.
바람이 불어오는 듯 나무가 흔들린다. 그 모습이 마치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듯하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를 하는 듯하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그들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그래 잘못 들어선 길이라고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니구나. 마음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어긋난 길이라고는 없구나. 어긋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어긋난 길이라고 하더라도 산길이 아니라 마음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것을...
인생길이란 그런 것을...
삶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 길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두 그루 소나무 위로 구름이 지난다.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시야에 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호랑나비다. 더위에 지친 몸을 쉬려는 것인지 새로운 길로 나를 인도하려는 것인지 내 앞에 내려와 앉는다. 날개를 펄럭이며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이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 착각이었을까. 나비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한 동안 나비를 바라보았다. 오랜 동안 내 앞 길 한가운데 앉아 있던 나비가 날아올랐다. 길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나비가 간 길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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