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宰(재)/妾(첩)/辭(사)/業(업)/對(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宰(재)/妾(첩)/辭(사)/業(업)/對(대)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33>

辛(신)이 문신 새기는 도구가 아니라면(연재 32회 참조) 덩달아 고쳐야 할 유래설들이 있다. 辛자가 들어간 글자들 가운데 宰(재)나 그 간략형이 들어갔다는 妾(첩)·童(동) 등은 모두 辛자의 문신도구설을 기반으로 글자풀이가 되고 있는 글자들이기 때문이다.

宰는 '집'의 의미인 宀(면)과 辛으로 구성됐다. 노예(辛) 신분으로 집안(宀)일을 하던 사람을 가리킨 글자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특히 요리 담당을 가리켰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때는 辛을 조리용 칼로 해석한다(辛자 하나를 가지고 '노예'와 '요리'의 두 가지 의미를 뽑아낸 것이니 틀림없는 꿰맞추기다). 宀을 관청으로 보아 관청(宀)에서 형벌(辛)을 담당하던 벼슬아치를 가리킨 글자라고도 한다.

지금 宰는 '재상'의 뜻이니 노예에서 엄청나게 출세한 셈이다. 물론 '노예>집사>관리>재상'으로 파생됐다고 볼 수 있긴 하다. 또 실제로 그렇게 출세한 사례도 있다. 商(상)의 건국자 湯王(탕왕)의 재상 伊尹(이윤)이 바로 노예에서 재상으로 출세한 사람이다. 그는 요리사였다니, 앞의 '요리 담당'이라는 얘기와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이 사례가 그런 해석의 심정적 증거로 생각되고 있는 듯한데, 오히려 그런 사례가 있다는 것은 그 설명이 논리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노예 출신 집사를 가리키는 글자는 있고 재상을 가리키는 글자는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설사 그런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재상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면 다른 글자를 가차해 쓰면

그만이지, 굳이 노예를 가리키는 글자를 끌어다 쓸 이유가 없다. 재상들이 노발대발할 일이다.

한편 妾은 윗부분 立(립)이 辛의 변형이다. <그림 1>을 보면 辛자가 들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윗부분만 남았다. 이 글자 역시 女(녀)와 죄인 내지 포로를 의미하는 辛으로 이루어졌으니 '여자 노예'의 의미고, 여자 노예는 주인의 성적 노리개 곧 첩이었다는 설명이다. 童(동) 역시 윗부분이 辛이어서 '남자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그것이 '아이'의 뜻으로 옮겨 쓰이자 僮(동)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은 宰나 妾에서 辛 부분이 발음과 연관되지 않으니 의미로 해석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다. 그런데 지난 회에 보았듯이 辛은 문신 도구일 가능성보다는 幸(행)·丵(착)과 같은 글자로 형성자일 가능성이 높다. 辛=幸이라면 幸 계통의 글자는 辛 계통 글자들과 발음상 연관 가능성이 있다. 幸 계통의 執(집)이나 摯(지)·蟄(칩)의 발음이 宰·妾과 흡사한 것이 우연일까? 宰·妾에서의 辛은 발음기호지만 음이 좀 변한 것이다.

辛과 宰·妾 등을 연결하는 '노예' 얘기는 거대한 허구다. 童의 경우는 발음이 아랫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여 이들과 조금 다르지만, 이렇게 보면 그 윗부분이 辛이라는 얘기도 믿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辛의 발음이 변한 것은 辭(사)에서도 확인된다. 辭 역시 辛 부분을 발음으로 볼 수 없어 '형벌'이라는 辛의 뉘앙스를 넣어 잘잘못을 '따지다'가 본뜻이라거나, 형벌로 다스려야 할 다툼에 등장하는 과장된 '말'이라는 등의 '어려운' 설명들이 있다.

그러나 辭의 옛 글자꼴로 <그림 2>처럼 오른쪽이 司(사)로 바뀐 것들이 많다는 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辭는 왼쪽이 의미 요소고 오른쪽이 발음기호인데, 그 발음기호가 辛 또는 司로 뒤섞여 쓰였다는 것이다. 辛과 司의 발음이 옛날에는 같았다는 얘기다.

이 司가 들어간 글자꼴들을 보고는 또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말을 판단하고 관리한다(司)거나, 코바늘(司에서 口를 뺀 부분)로 엉킨 실을 푸는 모습이라는 해석들을 하는데, 그렇다면 이 글자는 辭와는 전혀 다른 글자인 것이다.

辛의 이런 변형 발음(사실은 어느 쪽이 변형인지 모르지만)은 丵 계통 글자들의 발음과 더 가깝다.

우선 業(업)이 있다. 丵과 木(목)을 구성됐다. 옛날에 악기를 걸던 판자를 의미했다고 하는데, 윗부분이 톱니 모양으로 생긴 그 틀을 그린 것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丵을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로 볼 수 있다. 執·妾 등과 연결되는 발음이다.

對(대)는 상형으로 보고 촛대를 잡아 '향하다'에서 '대답하다'로 의미가 옮겨졌다는 주장, 사신이 符節(부절)을 들고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주장, 왼쪽이 業이어서 악기를 걸이에 거는 모습이라는 주장, 무기나 나무를 잡고 있는 모습이라는 주장 등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초성의 ㄷ/ㅈ이 처음에는 구분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對의 발음은 宰와 사실상 일치한다. 對의 왼쪽 윗부분이 丵이고 그것이 발음기호다. 지금 一로 돼 있는 왼쪽 아랫부분은 土(토)나 口(구)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鑿(착)의 옛 형태라는 凿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對의 옛 모습 가운데 <그림 3> 같은 것이 섞여 있다. 이는 丵과 두 손인 廾(공)이 합쳐진 것인데, 僕(복)·撲(박)·樸(박) 등의 발음기호인 菐(복)과 같은 구성이다. 廾은 종종 大와 헛갈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對는 菐의 두 손 부분이 一과 寸(촌)으로 분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鑿의 왼쪽 윗부분도 菐과 같은 글자지만 廾이 역시 두 손의 모습인 臼(구/국)으로 정리된 것이고, 凿의 凵(감)이나 對의 어떤 글자꼴에 나오는 土·口 등도 모두 그 변형인 듯하다.

한편 辛=丵이라면 新(신)·親(친)의 왼쪽 亲(진)은 業과 같은 구조의 글자다. 亲은 '개암나무'의 뜻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業의 변형일 가능성도 있다. 新·親에서는 그 부분이 발음기호인데, 辛과 비슷한 발음으로 남아 業과 분리된 셈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