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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신)/幸(행)/丵(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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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신)/幸(행)/丵(착)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32>

文身(문신)에 대해 그리 개방적이지 않았던 우리의 생각도 많이 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전에는 힘을 과시하려는 일부 집단에서나 애용하던 것이었는데, 이제 '일반인'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힘이나 미의 과시용으로 쓰이고 있는 문신이 과거에는 죄인이나 포로의 표지였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辛(신)은 그런 문신을 새기던 도구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경을 칠 ○'이라고 할 때의 그 '경'은 한자로 黥인데, 이는 죄인의 얼굴에 먹으로 글씨를 새겨 넣는 일종의 형벌이었다. 이렇게 먹으로 글자를 새겨 넣으면 평생 죄인임을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전쟁 포로 역시 신분이 죄인과 동격이어서 경을 칠 대상이었다.
<그림 1, 2>가 辛의 옛 모습이다. 윗부분은 넓적한 칼이어서 코를 베는 劓刑(의형)에 사용됐다는 것이고, 아랫부분은 손잡이지만 뾰족한 부분이어서 경을 치는 이른바 墨刑(묵형)에 사용됐다고 한다. 한 가지 용도로만 만든 게 아니고 '다목적 형벌 도구'였으니 특허도 땄음직하다.

罪(죄)라는 글자는 본래 辠로 썼는데,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秦始皇(진시황)이 자신의 칭호를 '皇帝(황제)'로 정한 뒤 辠자가 불경스럽게도 皇자와 비슷하다 해서 지금 쓰는 罪로 바꿨다고 한다. 그 辠는 '코'인 自(자)와 형벌 도구인 辛을 합쳤으니, 바로 코를 베는 형벌인 劓刑을 나타낸 글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소소한 도구들까지 일일이 상형했다는 데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상형이라는 판단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정말로 그런 상형이 있었는지는 '믿음' 수준일 수밖에 없다. 그런 '믿음'을 어찌할 수는 없고, 다른 방식의 설명이 가능한지 찾아보기 위해 모양이 비슷한 다른 글자들을 먼저 살펴보자.

幸(행)은 옛 모습이 夭(요)와 屰(역)을 합친 형태로 돼 있다(<그림 4>). 夭 부분은 大(대)로 보기도 한다. 죽음을 의미하는 夭에 '거꾸로'의 뜻인 屰을 합쳐 죽음의 반대 의미를 표현했다고도 하고, 요절을 면했으니 다행이라고도 한다. 늘 그렇듯이 회의자식 설명은 어설프다. 주어진 글자꼴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짜낸 것이지, 그런 생각으로 글자를 만들었다고 믿기는 어려운 얘기들이다.

그런데 한술 더 뜨는 설명도 있다.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글자를 상형자로 본다. 쇠고랑을 그린 글자라는 것이다. 이 얘기는 幸자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고, 幸자를 포함하고 있는 執(집)자에서 나온 얘기다. <그림 6>이 執의 옛 모습이라고 하는데, 왼쪽 부분이 幸의 초기 형태가 되는 셈이다.

저런 모습의 쇠고랑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그림상으로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장비다. 저렇게 큰 쇠고랑이라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고, 재질이 쇠 아닌 나무 같은 것이라 해도 그렇게 크게 만들 이유가 없다. 그 목적은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執자가 사람이 손을 묶인 모습의 상형자라면 굳이 손목 묶은 물건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상형이라면 오른쪽 丸(환) 부분이 '잡다'인 丮(극)의 변형이라는 주장은 폐기돼야 하는데, 執의 의미가 '잡다'인 바에야 의미를 분명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구성 요소를 포기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닌 듯하다. 더구나 필자는 이런 식의 '장면 상형'은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결국 執은 '幸+丮'의 합성자가 맞고 <그림 6>은 글자의 의미에 맞춰 모양을 꾸민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幸이 쇠고랑의 상형이라는 근거는 없어졌다. 사실, 그것이 쇠고랑의 상형이라면 의미와 연결시키는 게 더 큰 문제다. 쇠고랑과 '다행' '행복'이 무슨 관계일까? 그래서 목이 달아나지 않고 쇠고랑만 찼으니 다행이라거나, 반대로 쇠고랑을 면했으니 다행이라거나, 범인을 체포했으니 다행이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설명들이 나온다.

<그림 5>를 보면 幸의 아랫부분은 羊(양)임이 드러난다. <그림 4>처럼 아랫부분이 屰으로 돼 있는 경우도 있으나, 이미 보았듯이 屰=羊이니 마찬가지다. 幸과 羊의 발음이 비슷하니 그게 발음기호다.

다만 윗부분 夭를 의미와 연결시키기가 어려운데, 이를 大로 보면 엉성한 대로 하나의 설명이 가능하다. 幸의 본뜻을 '크다'로 보면 '幸運(행운)' '幸福(행복)' 같은 형용사적 쓰임새가 이해되고, 이렇게 運·福 같은 글자들과 주로 어울려 쓰이다 보니 그 의미가 幸 쪽으로 전이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業(업)자의 윗부분에 들어 있는 丵(착)은 풀이 무성한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 다만 아랫부분이 辛·幸과 공통되는 점에 주목하며 다시 辛으로 돌아가 보자.

辛의 옛 모습은 맨 위의 점이 없는 형태도 있지만 <그림 3>처럼 一자가 얹혀 있는 경우도 많다. 그 부분이 지금 점으로 변한 것이다. 丵은 위에 네 점이 얹혀 있는데, 이를 한 획으로 뭉뚱그린다면 辛의 윗부분 一이 될 것이다. 또 이는 艹=艸(초)와 형태상 유사하다(풀이 무성한 모습이라는 얘기도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艹는 옛 모습에서 廾(공)이나 大와 자주 헛갈렸음을 생각하면, 위에 大의 변형인 土를 얹고 있는 幸 역시 같은 구성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추정이 맞다면 辛=丵=幸이고, 이들은 결국 羊을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다. 辛의 발음은 羊 계통의 善(선) 등과 가깝고, 丵은 羊의 변형인 屰의 발음으로 연결된다. <그림 7>은 辛자가 구성 요소로 들어 있는 宰(재)의 어떤 글자꼴이다. 宀(면) 아래쪽은 분명한 丵이니, 辛=丵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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