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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나는 아직도 자살방조라는 말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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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나는 아직도 자살방조라는 말이 낯설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21년만에 첫 재심 공판 열려

"원심판결 당시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은 거대한 거짓, 비상식, 모략으로 가득 찬 괴물 같았다. 당시 검찰과 법원에 실체적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공권력이란 외피를 쓰고 많은 이의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을 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인 강기훈 씨가 20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재심 공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지난 5월 간암 수술을 받은 뒤 투병 중인 강 씨는 수척한 얼굴로 약 5분 동안 준비한 항소이유서를 읽었다.

강 씨는 "잘못된 판결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자살방조 판결을 받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살방조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다"고 밝혔다.

▲1991년 6월 22일, 당시 농성 중이던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에 자진출두하겠다고 말하는 강기훈 씨. ⓒ연합뉴스

유서 대신 썼다며 징역 3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지난 1991년 5월 8일 아침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당시 25세였던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국 부장이 자살하며 시작됐다.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자 김기설 씨가 이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한 것.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 씨는 김 씨의 유서를 대필해줬다는 혐의(자살방조)로 구속 기소됐고 대법원은 이듬해 강 씨에게 징역 3년을 확정했다. 강 씨는 1심 재판 때부터 유서 대필을 부정해왔으나 결국 1994년 만기 출소했다.

강경대 씨가 죽은 이후 학생, 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4월 29일 전남대 학생 박승희 씨가 강경대 사건 규탄집회 도중 분신했고, 5월 1일 안동대 학생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 학생 천세용, 5월 10일 노동자 윤용하 등이 연달아 분신해 이른바 '분신 정국'이 조성됐다. 약 두 달간 13명이 사망했고 2300회가 넘는 집회가 열렸다.

죽음의 원인인 노태우 정권이 퇴진하라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강 씨가 이런 시국에서 분신의 배후로서 '정부 책임론'을 희석하는 역할로 지목됐다는 의혹이 나올 법했다.

진실화해위원회 "강 씨와 유서의 필적 다르다"대법원 "인정 불가"

지난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했고 강 씨는 이를 근거로 2008년 1월 서울고법에 재심 개시를 청구했다. 2009년 9월 서울고법은 재심을 결정했으나 검찰은 146쪽에 달하는 항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며 재심 결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3년여 만에 대법원은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지난 10월 19일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0월 발표한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을 통해 문제가 된 유서의 필적과 강 씨의 필적이 상이하다고 밝혔다. 또한 김 씨의 필적이 담긴 채 새로 발견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토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7개 사설 감정 기관에 김 씨와 강 씨의 필적 대조 감정을 의뢰한 결과, 김 씨의 필적과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것.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 국과수 감정 결과는 국과수 문서감정실 감정인 5명 모두가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객관적으로 진행되었고, 7개 사설감정원에서 각각 행한 감정 결과와도 일치된 것이어서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수사 결과를 대법원은 사실상 부정했다.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문을 통해 진실화해위의 필적 감정은 결론을 예단하고 진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대법원은 "국과수 소속 문서감정인들이 허위 증언을 한 사실이 증명됐다"며 허위 증명만을 문제 삼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1991년 수사 당시 국과수가 한 명의 문서감정인에게만 필적 감정을 맡겼지만 마치 여러 명이 조사한 듯이 법정에서 허위로 증언했다는 사실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1년 수사 당시 허위 증언을 바탕으로 이뤄진 필적감정이 진실화해위원회의 필적감정보다 더 신뢰성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대법원의 재심 결정문을 근거로 "진실화해위원회의 필적 감정의뢰 결과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5호 '새로 발견된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결정문에서 인정한 형사소송법 제420조 2호에 따라 문서감정인들의 '증언의 허위 여부'만 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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