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래서 毛(모)자가 터럭을 그린 글자라는 설명도 그냥 '통과'다. <그림 1>이 그 옛 모습인데, 아무리 봐도 터럭을 떠올리기는 역부족이다. 터럭은 어떤 평면이나 곡면에 나란히 나는 것이다. <그림 2>는 다른 글자의 갑골문으로 제시되는 것인데, 개념상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그림 1>과 비슷한 것을 찾자면 새의 깃털이나 짐승의 꼬리(에 붙은 털) 정도겠는데, 새의 깃털은 羽(우)라는 별도의 글자로 나타내고, 짐승의 꼬리는 그런 그림으로 '꼬리'와 거기에 붙은 '털' 중 어느 쪽을 나타낸 것인지 쉽게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모습은 牛(우)=屰(역)의 옛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발음이 아주 가까운 관계는 아니나, 老(로)와 峔(모)·姥(모)의 경우에서 봤듯이 ㄴ/ㄹ과 ㅁ의 변화 가능성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毛는 牛=屰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그 의미인 '털'은 '소>쇠털>털'의 파생 과정을 거친 것일 수 있다.
干(간)은 '방패'의 뜻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글자는 방어 무기인 방패가 아니라 공격 무기를 그렸다고 한다. <그림 4>가 그것인데, 끝이 갈라진 나무로 만들어 짐승을 꼼짝 못하게 제압하거나 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얘기가 '방패'라는 뜻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선지, <그림 3> 같은 갑골문을 더 오랜 글자꼴로 제시하기도 한다. 중간의 回 부분은 방패의 기능이 있고 나머지는 <그림 4>와 같은 모습의 공격 보조 도구다. 하지만 이는 순서가 거꾸로다. 단순히 나뭇가지만 다듬어 놓은 <그림 4>가 후대에 나오고 거기에 방어 기능을 덧붙인 <그림 3>이 먼저 나온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더구나 <그림 4>에는 방어 도구가 빠졌는데도 의미는 여전히 '방패'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干자를 보면 이는 牛=屰과 비슷한 모양이다. <그림 5> 같은 모습에서는 더욱 분명하다. 이는 屰의 凵 부분을 一로 펴놓은 모습에 불과하다. 발음은 牛=屰=羊의 발음을 이어받은 姜(강) 등과 비슷하다. 干은 羊 등이 간략한 형태로 남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원시적인 무기 같은 것을 일일이 상형해 글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미덥지가 않다.
干의 글자꼴이 羊처럼 좀더 복잡한 것에서 왔음을 시사하는 글자가 看(간)이다. 看은 '손'인 手(수)와 '눈'인 目(목)으로 이루어져, 손을 눈 위에 대고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라고 설명되는 글자다. 손을 눈 위에 대는 것은 햇빛의 간섭을 막는 자연스런 행동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글자를 보이는 대로 해석할 수는 없다.
毛의 옛 모습은 手와 방향만 반대여서 구분이 되지 않는데, 看의 소전체인 <그림 6>의 윗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手로 보아 看 형태로 정리됐지만, 毛로 본대도 전혀 문제가 없다. 毛와 干이 모두 羊=屰=牛의 변형이라면 看의 윗부분은 또 干의 변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看의 발음이 干과 일치하는 것은 그 때문이며, 看은 干의 복잡한 형태를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인 것이다. 看은 毛=干임을 입증해 주는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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