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지난 시간들과의 조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지난 시간들과의 조우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14>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나며

눈을 떴다. 눈꺼풀이 몹시 무거웠다. 침대에 누운 채 방 안을 둘러보았다. 지난 밤 마셨던 맥주의 빈 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위로 굳게 드리운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들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몸은 눈꺼풀처럼 무거웠다. 잠들어 있는 동행을 행여 깨울세라 조심하며 지친 어깨를 스스로 곁부축하여 일어섰다. 커튼의 한 자락을 잡고 살며시 들추자 이미 창틈으로 들어와 있던 햇살이 눈부셨다. 창밖은 이미 아침이었다. 눈부신 아침이었다. 어제와 달리 바람이 부는지 나뭇잎들이 잔잔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눈부셨기 때문일까. 살가웠지만 잘 기억할 수 없는 지나간 시간들처럼 아스라했다. 그 나뭇잎들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립고 그립지만 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의 흔적들처럼 애틋했다.

그렇게 그 날의 아침은 그립고 애틋했다. 길을 나선지 열여섯 번째 맞는 아침이었다. 벌써 길을 떠난 지 열닷새가 지나 있었다.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이미 4,619Mile - 7,390Km를 달려왔다. 그러나 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길을 따라 닿아 있는 Zion, Arches, Rocky Mountain National Park와 떠나온 곳을 더 지난 곳에 있는 Appalachian Moutains의 일부인 Shenandoah National Park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이 여정을 계속하고 싶기도 하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였다.
▲ Rim Trail에서 바라본 Bright Angel Trailⓒ최창남

왜 이런 마음이 들까. 긴 여정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탓일까.
경험해보지 못한 긴 여정으로 인해 몸이 지치고 힘든 탓일까.
나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나부끼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오랜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긴 여정의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제 한 곳에 머무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끝없이 떠돌며 살아온 지난 삶을 이제 그만 멈추고 싶었다. 나는 그저 이 여행이 늘 마음의 짐을 혼자 떠안은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지난 내 삶을 꼭 닮아있는 것 같아 피곤해졌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집이 그리웠을 뿐이었다. 지독히도 외로웠던 지나온 삶이 서러웠을 뿐이었다.
▲ 단의 끝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최창남

이런 것이 늙어가는 것인가. 이런 것이 이미 늙었다는 증거인가.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자 깊은 협곡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시원했다. 마음을 일깨웠다.

우리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Rim Trail로 향했다. 우리는 그랜드 캐년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을 Rim Trail에서 보낸 후 Zion National Park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해질 무렵 Rim Trail을 걸으면 그랜드 캐년의 한가운데에서 고독을 경험 할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렸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Bright Angel Trail과 Plateau Point를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충분한 훈련과 시간 그리고 장비를 준비한 후 South Kaibab Trail에서 출발하여 협곡의 바닥까지 내려간 후 Bright Angel Trail로 올라오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잘 훈련된 하이커(Hiker)라 할지라도 최소한 이틀을 잡아야 하는 힘든 코스였다.
▲ 단의 끝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최창남

Rim Trail을 걸었다. Rim Trail에서 바라본 그랜드 캐년은 그 넓이와 깊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해 보였다. 20억년이라는 영겁에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온 이 위대한 협곡의 삶이 조금의 숨김도 없이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드러나 있었다. 눈 아래로 보이는 Bright Angel Trail은 굽이굽이 끊어진 길을 이으며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듯이 멀리 돌고 돌며 협곡의 바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Trail은 내 삶을 닮아 있었다. Bright Angel Trail은 가까운 길이라도 늘 멀리 돌아가곤 했던 내 삶을 닮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Trail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아련했다. 먼 길을 돌아가던 삶이 어찌 고단하지 않았으랴. 이제는 그만 먼 길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고 싶었지만 Bright Angel만은 걷고 싶었다. 아무리 먼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을 향해 떠나고 싶었다.

나는 Trail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Rim Trail은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들도 걸을 수 있는 잘 닦여진 Trail이었지만 몹시 힘들었다. 걷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왼 다리의 골절되었던 부위에 느껴지던 묵직한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최대한 천천히 걷다 Trail 가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몸을 깊숙이 편안하게 기댔다. 잠시 그렇게 앉아 결코 그 끝을 보이지 않는 깊은 협곡을 내려 보았다. 보이지 않는 협곡의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곳으로부터 켜켜이 쌓아 올려진 단애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 말라 죽은 나무 - Grand Canyon에서는 이런 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최창남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허공에 있는 듯 외로이 서 있었다. 그 작은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단애의 바위는 저 홀로 허공을 향해 돌출되어 있었다. 그 위에 작은 소나무 홀로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이것도 위대한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이리라.

주변은 온통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을 향한 허공이었다. 허공에 홀로 서 있는 듯 하나 그 나무는 사뭇 쓸쓸하기도 하고 사뭇 당당하기도 했다. 깊은 협곡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는가. 가지가 흔들렸다. 그 모습이 소리 없이 나부끼는 깃발 같기도 하고 제 땅 제 삶 모두 빼앗기고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같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그렇게 나무를 바라 보다 길을 떠났다. Zion National Park을 향했다. 길은 사막으로 나있었고 만나는 벌거벗은 산마다 붉었다. 침엽수 과의 키 작은 나무들만이 산기슭에 듬성듬성 나 있어 그곳이 사람 지나는 길임을 말해줄 뿐이었다.

사람 지나는 그 길 곁에 키 작은 나무들을 닮은 인디언들의 상점(Indian Market)이 간간이 보였다.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Navajo Indian Reservation)이었다. 나무로 조악하게 지어졌거나 컨테이너로 대신하고 있는 집이었다. 보호구역 전체에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최창남

사람 사는 곳에 철조망을 쳐 놓다니...

그들이 사는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과거 용맹했던 나바호족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상점마다 몇 개씩 걸려 있는 성조기가 오늘 그들 삶의 자리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쓸쓸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땅을 빼앗고 죽인 백인들의 깃발을 상점마다 몇 개 씩 걸어 놓았을까. 그들은 이미 미국화 된 것일까. 아니면 미국화 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들이 미국화 되었다는 것을 백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들은 정말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빛나는 정신들을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가난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 고통과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마약을 피우면서 말이다.

나는 그들이 성조기를 상점마다 걸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알지 못한다. 다만 상점마다 나부끼는 성조기가 운디드 니(Wounded Knee)에서 죽어가며 외친 그들의 비명 같아 마음 아플 뿐이다. 오랜 세월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온 그들의 잃어버린 삶을 돌아보며 흘리는 피눈물인 것만 같아 슬플 뿐이었다. 눈물이 났다.

'인디언 젊은이들은 여기서 살고 있을까? 모두들 도시로 나가고 이곳에는 노인들만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미국인 교수가 인디언들은 흑인들이나 다른 소수민족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이익을 담보하기 위해 주장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왜 그런 것일까?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정신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남아 있는 그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주장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시대도 많이 바뀌었는데...?'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게 운전을 하고 있던 동행이 말을 건넸다.

' ..........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해줄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들처럼 내 삶과 가치들을 빼앗겼다면 아마도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느끼고 있을 깊은 절망과 아픔 앞에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홀로 바라보며 가슴 시려하는 것뿐이었다.

서부나 서남부 지역을 지나며 여러 군데에서 인디안 보호 구역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사는 곳에는 모두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인디언들은 모든 땅을 빼앗겼다. 미국 정부가 인디언들의 땅으로 보장했던 블랙 힐스(Black Hills Forest)마저도 빼앗겼다. 미국 정부는 인디언들의 신성한 땅 블랙 힐스를 빼앗은 후 그 곳에 인디안 몰살 정책을 편 링컨대통령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까지 했을까.

미국 땅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넓은데 말이다. 블랙 힐스 정도 인디언들에게 준다 해서 그들이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될 것도 없는데 말이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이들이니 인디언들이 나중이라도 문제가 생길까 염려하여 철저하게 빼앗고 몰아내고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렇게 총과 살육으로 세워진 나라가 민주주의 종주국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제 나라 안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수많은 살육과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으면서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불과 백 년 전 인디언들에게 행했던 폭력을 오늘날에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에서 행하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말이다.

그런 저런 상념 너머로 멀리 그랜드 캐년의 North Rim이 보였다. 깎아지른 듯 솟은 모습이 사뭇 당당하다. 차창을 내렸다. 어제와 달리 바람이 불어왔다.

'윙~ 위윙~'
마음속의 수많은 상념을 데려가려는 듯 바람은 내 얼굴을 스치고 가슴을 어루만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남겨 두고 온 땅이 벌써 그리워졌다.
언젠가 이 땅을 다시 밝고 싶었다.

Bright Angel Trail을 걷고 싶고 South Rim과 North Rim을 잇는 Trail을 걷고 싶었다.
협곡의 바닥 하바수파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위대한 시간과 자연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갈래 길을 따라 그렇게 걷고 싶었다.

부는 바람에도 햇살은 뜨거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