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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2002년 방북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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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2002년 방북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라"

[특별좌담] 북한 전문가들이 본 북중 국경에서의 북중협력

지난 8월 초순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8박 9일 동안 북·중 국경을 답사하고 돌아왔다. 압록강 서쪽 끝 단둥(丹東)에서 두만강 동쪽 끝 팡촨(防川)까지 북·중 국경 1376.5㎞, 총 3000리가 넘는 거리를 답사하면서 북한의 현재 모습을 보고 왔다. <프레시안>에서는 지난 9월 24일부터 12월 20일까지 3개월 동안 당시 답사팀의 일원이었던 황재옥 박사가 쓴 '압록·두만에서 바라본 북한의 오늘'을 연재하며 답사단이 듣고, 보고, 느낀 현장에서의 북한 모습을 전달했다.

<프레시안>은 총 13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며 지난 21일 필자 황재옥 박사와 답사단의 일원이었던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전 통일부 장관)과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황 박사와 정 총장은 이날 좌담회에서 북·중 경협이 가속화되고 있고 이것이 우려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후 남북한 간 경협이 사실상 올스톱 되면서 북한과 중국 간 경협이 더 강화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낙후된 동북 3성의 경제 발전을 추진해야 하는 중국과 경제의 숨통을 트기 위한 북한의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북·중 간 경협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북·중 간 경협은 활성화되고 있는 반면 남북 경협은 침체 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적 교류 협력이 늘어나 남북간 상호의존성이 증대돼야 한다. 그러나 북·중 경협이 버티고 있고, 우리 정부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남북경협은 활성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북핵 문제에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병행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두 문제를 과도하게 연계시키는 것은 남북의 관계개선과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외교적 수요를 한국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펴나갈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좌담회 전문이다. 사회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


▲ 왼쪽부터 황재옥 박사, 정세현 원광대 총장,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북·중 협력의 요체는 경제협력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북·중 관계가 밀접해졌다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실제 답사를 다녀와 보니 어떤가?

황재옥 : 북·중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긴밀했다. 북한이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북·중 경협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강력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경협의 대표적인 접경 도시가 압록강 쪽 단둥(丹東)시와 두만강 쪽 훈춘(琿春)시인데, 특히 훈춘시를 보니 중국이 북·중 경협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의지가 보였다.

프레시안 : 중국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북한 경제의 붕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인가?

정세현 : 북한경제 붕괴를 막겠다는 것보다는 중국의 필요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 3성 진흥계획에서 북한이라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훈춘은 나진-선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다. 중국이 나선으로 진출해야 하는 이유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린성(吉林省)에 항구가 없기 때문이다.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여서 경제발전 전략을 추진하려는 전략에 비춰보자면, 두 성에서 생산한 물건을 바다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출해권(出海權)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훈춘 건너 나선이다.

중국 입장에서 이를 정당화, 합리화하는 표현들이 부린(富隣)정책, 화린(和隣)정책이다. 이는 인접 국가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화목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북한을 잘 살게 해줘서 북한의 협조를 받아내고 그 과정에서 중국의 동북 3성 경제 발전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그 정책의 본심(Real intention)이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에 협조하게 만드는 일종의 홍보용어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그것은 곧 중국에서 낙후된 동북 3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발전도 필수적이라는 말인가? 북·중 협력이 순전히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계속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지?

정세현 : 외교라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나 목표는 아니다. 안보외교, 경제외교, 통상외교, 문화외교, 통일외교라고 말하듯이 외교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외적인 수단이다.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나라를 잘 끌어들이는 것이 경제, 통상 외교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경제외교 차원에서 북한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예를 들어 신(新)압록강대교-황금평-위화도 개발을 뜻하는 '일교양도(一橋兩島)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은 신의주를 넘어 평양, 개성까지도 북·중 경협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중국이 황금평을 100년 동안 빌린다는 계획도 있다고 한다. 동북 3성 경제진흥을 위해 중국이 북한에 공을 엄청나게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있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단둥-신의주'와 '훈춘-나선'의 양축으로 진행되는 북·중 경협

프레시안 : 작년에 첫 삽을 뜬 황금평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황재옥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황재옥 : 지난 8월 방문 당시에는 황금평에 간판만 있었다. 그런데 9월에 임시통관을 할 수 있는 출입국 관리 시설이 건립됐다. 2층 건물 두 채가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양국 공동 관리위원회 청사를 착공했다. 본격적 개발을 위한 준비가 속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차량의 통행도 더욱 빈번해졌고.

프레시안 : 공장을 세워서 제품이 나오는 시점은 언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나? 개성과 비교해보면?

정세현 : 제품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개성공단 개발을 시범단지, 1, 2, 3차로 나눠서 진행했듯이 황금평도 그렇게 할 것으로 보인다.

황재옥 : 황금평 개발과 관련해 중국이 모든 초기 비용을 떠안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입주에 수요를 봐가며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여러 구역으로 나눠서 개발에 들어가고 있다. 현재 전체 계획의 10분의 1 수준의 진행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황금평이 있는 압록강에서 동쪽 두만강까지 다 살펴보니 압록강 쪽을 대표하는 단둥, 두만강 쪽을 대표하는 훈춘 두 도시가 비교되더라. 지금까지 북·중 교역의 70%를 단둥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8월에 가보니 훈춘의 교통량이나 사회간접자본 성장 속도가 단둥을 위협할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단둥과 신의주, 훈춘과 나선이 북·중 경협의 양대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두 곳이 경쟁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양상인데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양쪽을 보완하면서 할 것인지 아니면 지방정부 차원으로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중 경협을 지방정권에 일임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단둥과 훈춘도 서로 경쟁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프레시안 : 단둥을 축으로 한 북·중 경협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 있나?

황재옥 : 지금은 단둥이 북·중 경협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단둥에는 현재 북한을 드나드는 항공편이 빈번하다. 비즈니스 차원이든, 관광 차원이든 중국으로 들어올 때 단둥, 다롄(大連)을 경유하는 빈도가 높다. 반면 훈춘은 아직 비행기가 안 뜨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신 훈춘은 철도와 고속화도로 같은 방식으로 사회간접자본과 물류의 양을 늘리고 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단둥은 사업과 관광, 양 측면에서 교류가 활발한데 훈춘은 나선개발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적 측면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정세현 : 단둥과 신의주는 랴오닝성(遼寧省)의 경제개발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신압록강대교-황금평-위화도 프로젝트는 중국의 '랴오닝-연해(沿海)경제벨트'와 연결된다. 이것은 랴오닝성의 사업이다. 특히 황금평-위화도 개발은 대체로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해서 중국에서 필요한 내수 물자를 만들려는 사업이다. 중국 내수를 겨냥해서 북한 땅을 빌리고 북한 노동력을 쓰는 것이다.

▲ 정세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훈춘은 이와 다르다. 중국이 훈춘에서 나선까지 29km짜리 4차선 고속도로를 내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출해권 때문이다. 이는 곧 동북 3성 중 2개의 성이 나선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황금평이나 위화도는 중국 입장에서 절실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북한이 더 절실해 보인다. 인건비 수입도 있고.

프레시안 :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의 제품이 외국으로 나가는 출구 역할을 하는 곳이 나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정세현 : 그렇다. 동북 3성 개발계획에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們)으로 이어지는 '창지투개발계획'과 '랴오닝-연해경제벨트' 이렇게 두 가지가 있는데 나선은 창지투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중국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필요성이라든가 적극성 면에서 훈춘 쪽이 더 큰 것 같았다. 이곳이 수출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북 3성의 경제 진흥을 위해 북한을 파트너나 협력자로 선택했다. 내수진작(內需振作)을 위해서는 황금평-위화도의 땅과 북한 노동력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북한 노동력의 임금은 중국보다 훨씬 낮고 질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나선 같은 경우는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에서 만드는 물건을 태평양으로 실어 나르는 통로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물류비가 절감되면 상품경쟁력이 높아진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내륙을 통한 육로 수송보다 나선에서 실어서 바다를 통해 상하이(上海)나 광저우(廣州)로 가면 물류비가 훨씬 절감된다. 즉 수출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헤이룽장이나 지린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중국의 다른 남부지방에 저렴하게 수송하기 위해서도 중국에는 나선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이 활성화된 시점이 남북관계가 막히기 시작했던 때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특히 2009년 5월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를 위해 한·미·일이 협조를 강화해 나가고 있을 때 북한과 중국이 부쩍 가까워 졌다는 것은 부인할 없는 사실(史實)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6월 중순 유엔안보리에서 1874호 대북제재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중국 역시 이 결의안에 동의했다. 그러나 한·미·일이 이 결의안에 따라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던 시점에 북한과 중국은 양자 관계를 더 긴밀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09년 7월 중순 중국은 대외관계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외사영도소조(外事領導小組: 후진타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외 15인의 당정 최고간부로 구성)에서 북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중 협력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발전시켜 나간다는 정책방향을 확정했다. 중국은 대북정책을 조정해서 북한과 전략적인 협력관계로 나갈 것을 천명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1)한반도 비핵화, 2)북핵문제는 미국이 책임지고 해결하고 중국은 이에 대해 협조한다. 그리고 3)북한과 중국은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확대 발전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不戰(평화), 不亂(안정), 無核(핵폐기)"의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했다.

이에 발맞춰 북한 역시 북·중 협력을 통해서 국가이익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했다고 할 수 있다. 남북협력의 길이 막히니까 '꿩 대신 닭'격으로 중국을 붙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5.24조치 이후에 북·중 경협이 더 가속화됐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5.24 조치 이후 더 가까워진 북한과 중국

프레시안 : 5.24 조치 이후 남북관계가 막히면서 북·중 관계의 중요성이 더 커졌고, 북한과 중국은 서로 윈-윈하는 게임을 하게 된 것인가?

황재옥 : 중국이 북한 경제난 해결의 돌파구가 된 것이라고 본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중국에 승부를 던졌다고 본다. 8월 답사 이후 훈춘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가 육로로 통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로로 한국의 동해항과 일본의 사카이미나토(境港) 항구로 통하는 항로가 신설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2012년 9월, 4개국이 육·해 복합운송 항로를 운영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다. 이는 창지투에서 만들어진 상품들이 한국과 일본으로 운송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지린성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이 동북지방 내륙의 도로나 철도를 이용해 단둥, 다롄까지 가서 인천항이나 기타 지역으로 운송됐었다. 그런데 한국의 동해항과 일본의 사카이미나토항까지 이어지는 항로가 운영된다면 운송기간이 이틀이나 단축된다. 그래서 훈춘이 단둥에 버금가는 도시로 부각됨과 동시에 국제적인 물류거점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은 훈춘을 중국 변경도시 중 유일하게 '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하였다. 실제로 보고 느낀 바에 의하면 단둥보다는 훈춘의 도시 분위기가 더 활기찼다. 앞으로도 훈춘이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사회간접자본에도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었다.

▲ 정세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포스코와 현대도 훈춘에 물류기지 건설하고 있지 않나. 아직 나선항이 완전히 개발이 안된 상태다 보니 일단 육로로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것 같다. 나선이 완전 개발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지안-만포철교 근방에 있는 벽보에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섰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고 했다. 중국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인정하고 있다는 건데, 한국에서의 인식은 좀 다른 것 같다. 어떤가?

정세현 : 용어를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 벽보에는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이라고 쓰여 있었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관련하여 '개혁'이라는 것은 정치개혁이나 법 개혁은 아니다. 경제개혁이다. 경제 운영방식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방'은 '대외개방'이다. 이런 개념으로 보자면 중국이 볼 때 북한은 지금 경제개혁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에 왔던 북한학자 역시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썼다고 하지 않았나? 북·중간에는 그 말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붕괴 가능성을 믿었던 것 같다. '통일세 징수론' 같은 것이 대통령 연설 형식으로 제기된 걸 보면 그렇다.

황재옥 : 지난 11월 초 재미동포 의사인 오인동 박사가 북한을 방문해서 듣고 왔던 '전환'이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는 개혁개방 대신 전환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어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개혁과 개방이라는 말을 놓고 북한 바깥에서 정치적으로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하면 북한은 망하기 때문에 결국 개혁개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정설처럼 국제적으로 나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김정일-김정은 체제에서 추진하는 정책들이 내용은 개혁개방일 수 있지만 용어는 다른 식으로 써야만 우선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개혁개방 정책을 주민들에게 이해시키고 그쪽으로 끌고 나가려면, 우선 주민들이나 북한 내부 보수 세력을 불안하지 않게 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중 경협 심화와 관련해서 또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북·중 경협이 동북공정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통일이라는 문제를 놓고 보면, 어떻게 하든 남북 간에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적 관계가 미약한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갑자기 통일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력적 방법을 쓴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평화적 통일이 되려면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면서 사회문화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그 이후 정치공동체, 마지막에 군사공동체까지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남북경제협력이 통일의 출발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북한경제가 중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가고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걱정된다. 장차 남북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 북·중 경제 밀착이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세현 : 이명박 정부는 1874 대북제재결의안이나 5.24조치로 북한 경제의 숨통을 막으면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발사를 포기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은데, 중국이 북한과 경협을 강화함으로써 그런 제재가 전혀 실효성이 없게 됐다. 중국이 동북 3성의 경제진흥을 위해 남북경협 중단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북한을 협조자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2010년 5.24조치를 통해 북한과 관계를 다시 확실하게 틀어막은 것이다. 1874 대북제재결의안의 경우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국제사회가 북핵실험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북·중경협을 심화 발전시키는 상황을 초래했다. 5.24조치는 남북 간에 경제공동체, 사회문화공동체를 만드는 시간을 그만큼 지연시켰다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지난 5년 동안 대북정책의 결과로 동북아 정세가 크게 변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변화가 몰고올 문제점들을 생각하면, 남북경협부터 다시 활성화 시켜야 할텐데 아직 5.24조치가 풀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최근에 장거리로켓도 발사하지 않았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한마디로 한반도 상황이 꼬여 있다. 새 정부, 박근혜 정부가 이 상태를 그대로 두고 외교·안보·통일정책을 추진해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정치 외교적인 과제가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정세현 : 우선 5.24조치부터 풀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걸어놓은 조건들이 많아서 5.24조치를 풀 수가 없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새 정부니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새 정부 출범 초 새판을 짜기 위해서 택하는 정책방향과 기조에 대해서는 시비가 없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중에, 통일을 위해서 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동북아 국제정치틀 안에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5,24조치부터 풀고 금강산 관광도 재개시켜야 한다. 북한의 사과니 재발방지 보장이니 하는 문제는 그 다음 얼마든지 풀어나갈 수 있다. 우리 쪽에서 통크게 나가면 북쪽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 박근혜 당선인이 2002년 5월 방북해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모습 ⓒ프레시안 자료사진
박근혜 당선인은 2002년 5월, 당시 소수정파였던 한국미래연합 대표 시절 개인자격으로 방북해서 김정일과 만난 적이 있다. 왜 그랬겠는가? 분단국의 정치인으로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해야 하겠다는 소명의식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런 소명의식, 다른 말로하면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박 당선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8월, 그동안 남북간의 모든 은원(恩怨)관계를 뛰어 넘어 남북대화를 선제의 했던 것은 당시 동북아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방치하면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이익을 침해당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북관계 새판을 짜야만 국가이익을 손해보지 않을텐데, 그러려면 정권 출범 초에 새판을 짜야 한다. 시기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이렇게 나가기 위해서는 새 정부 사람들이 북·중 경협의 심화가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이해를 가졌으면 좋겠다. 지난 5년 동안 남북관계가 막혀있던 것이 장차 민족적으로 어떤 문제를 야기하게 될지, 북·중 경협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장차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우리나라의 위상과 국가이익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 지에 대해서 깊은 성찰이 있기 바란다. 새 정부는 지난 정부처럼 대롱을 통해서 북한을 보지 말고, 산봉우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길을 찾듯이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도 살펴가면서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가기 바란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역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새로 등장할 자민당 정부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나?

정세현 : 당연하다. 극우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평화헌법 9조를 바꿔서 일본을 군사강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세력의 대표 주자다.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바꾸려면 현실적으로 그 명분을 북한문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유사시' 일본군이 방어적인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헌법을 고치려면 '북한 때리기'를 통해서 동북아 안보상황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베의 일본은 북핵 6자회담 재개에도 비협조적이거나,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이런 저런 구실로 회담 진척을 방해할 수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의지다. 우리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으면 미국을 먼저 설득해서 우리 편을 만들고, 그걸 토대로 일본을 끌고 갈 수 있다.

일본이 급격히 우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베가 아무리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 정부가 적극성을 갖고 남북경협을 재개하고 활성화시켜 나가면서 동북아 안보상황을 주도해 나가면 아베의 일본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자세와 태도다. 북한이 일본의 평화헌법 9조 폐기의 명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프레시안 : 동북아에서 우리 국가이익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 내야 한다는 얘긴가?

정세현 : 그렇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북한 때리기를 통해 국내 정치적 수요를 충족하려고 하는 아베 일본에 우리나 미국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미국도 일본의 평화헌법을 고치는 것을 허용해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보다는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서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미국에 더 유리하다.

프레시안 : 북한은 현재 자칭 잠재적 핵보유국인 데다가 장거리로켓도 쐈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정세현 : 그건 관점과 전략차원의 문제다. 1970년대 초 닉슨 정부 때 미국이 중국과 손잡은 것은 미·소경쟁 상황에서 소련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의 대미정책과 관련해서 본다면 미국 대통령이 중국까지 찾아간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랜드 스트라티지 마인드가 있어야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지금 동북아,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정치·경제적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이 더 나은가를 계산해보면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적 외교관계로 만드는 것이 미국으로서도 훨씬 유리하다. 미국이 오늘날 사실상 핵보유국인 인도와 손잡은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 때문이다. 미국이 과거 전쟁까지 했던 베트남과 손잡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 정세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명박정부에서 남북관계는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차기 정부에서의 남북관계, 어떻게 해야 할까?

황재옥 :
남북경협과 핵 문제해결을 병행하는 정책을 정부 출범 초부터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경제에도 출구가 없을 것이다. 북·중 경협에서 북한은 노동력과 땅을 제공하고, 중국은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결합하는 시스템으로 나가고 있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산업을 자체적으로 발전시키기 보다는 타국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관광사업, 노동력 수출을 통해서 외화벌이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런 것 같다. 개성공단도 우리의 자본을 끌어들인 방식이다. 지금 개성의 노동자들이 110달러를 받고 있는데 그중 절반을 '사회 보장비'로 북한 당국이 떼가고 월급을 준다고 한다.

단둥에서 만난 사업가들이 말하기를, 북한의 노동자들이 단둥에 많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산업 연수생이라는 형식으로 단둥에 2만 명, 투먼과 훈춘에 2만 명의 북한 인력이 중국에 와 있다고 한다. 북한은 앞으로 이 숫자를 12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또 북한은 관광사업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고 있는데, 중국과 홍콩 등지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관광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2년 7월 옌지(延吉)에서 항공편으로 평양에 도착한 후 금강산을 구경하는 관광상품도 새로이 출시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켜 놓은 동안에 북한은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사업 차원이든 관광 차원이든 간에 옌지-훈춘-나선을 통해서 북한으로 가는 인원이 매년 30%씩 증가하고 있다. 정기노선 버스 승객이 늘어남에 따라 버스의 운행횟수도 자연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현재 매일 2차례의 운행 횟수가 4~5차례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남북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서 중국이 북한을 자기 앞마당으로 만들어가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병행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세현 : 황박사 말이 맞다. 북핵과 경협을 연계시켜서 북한에 제재를 가해봤자 중국 때문에 소용이 없다. 북한이 한·미·일의 대북제재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북지원해서 핵 개발을 시켰느니 미사일개발을 도왔느니 하는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철저히 틀어막았는데 얼마 전 북한에서 장거리로켓을 발사했다.

남북경협이나 관계개선에 대해서 오해나 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경제의 구조와 운용원칙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인민경제와 군사경제는 완전히 구분돼 있다. 군사경제로 번 돈은 군 쪽에서 쓰는 거고 인민경제 부문에서 번 돈은 인민경제 차원에서 쓰여지고 순환되고 있다. 과거 미·소 군비경쟁시대에 소련이 그랬다. 달에 사람을 착륙시킬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나라의 호텔 엘리베이터가 바닥보다 낮게 멈추거나 높게 멈춰서는 일이 많았다. 군사경제와 인민경제가 별도였기 때문이다. 북한 내각의 부처들 중 경제 관련 부처가 많은데 이쪽에서도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이것은 인민 경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에서 북한이 버는 돈, 해외주재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벌어들이는 외화는 인민경제 부문에서 쓰여지고 재투자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통치자금도 거기서 나간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군사경제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당과 내각의 인민경제 부문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훨씬 큰 규모다. 2009년으로 기억되는데 미 의회조사국(CRS)보고서에서 북한이 미사일과 무기를 팔아서 1년에 5~10억 달러씩 벌어 쓰고 있다고 인정했다. 또 1998년 8월말 대포동 1호 발사 이후 미국이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했었다. 이때 북한은 "미사일만 갖고 1년에 10억 달러 번다. 누구든 그 돈 주면 우리는 미사일 발사 안 하고 실험도 안 할 수 있다. 이거 돈 벌려고 하는 거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미국이 "1년에 10억 달러는 너무 많고 3~5억 달러 정도 인정하겠다. 앞으로 3년간 10억 불 상당의 식량을 지원해주겠다. 그러니 미사일 시험 발사하지 말라"고 했고, 그렇게 해서 미사일협상이 원만하게 마무리 된 적이 있다. 이런 역사를 알면 남북경협이나 대북지원에 대해서 억지소리 할 수 없다.

새 정부는 큰 판세를 읽고 새판을 짜주기 바란다

황재옥 : 압록-두만 국경지역을 답사하면서 우리가 보고온 바를 토대로 얘기하자면, 현재의 북·중경협은 우리로서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우리 대북정책이 5년동안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 북·중 관계는 경제협력을 통해 아주 긴밀해졌다.

▲ 황재옥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북·중 경협의 속도와 내용과 관련해서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걱정되는 대목이 많지만, 북한 내부 체제변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북·중 경협이 이루어지는 사이 북한 내부에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들을 이번에 많이 들었다.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보고 체험하는 북한의 산업연수생들, 그리고 북한을 관광하러 들어가는 외국인들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남북경협의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변화하도록 자극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중국이 아닌 우리가 되면 그만큼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협을 통하든 관광을 통하든 북한의 대외개방이 진행되면서 북한 주민들이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많았다. 다른 말로 하면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하든 말든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 더 잘사는 문제에만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체제는 현재와 같이 유지될 수밖에 없고 북한 체제붕괴론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기 정부가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는 5년 전의 북한의 모습을 전제로 하면 안 된다. 북한이 많이 변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정지되어 있는 틈새시간에 중국이 북한에게 확실한 등받이 역할을 하면서 북·중 관계가 장차 우리의 국제정치적 위상과 이익에 위협을 줄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북·중 간 관광이든 경협이든 투자든 인프라 건설이든 중국이 자국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북한과 중국, 두 나라가 모두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을 역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큰 판세를 읽고 큰 판을 새로 짜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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