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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 그거, 언제 찾아 먹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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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 그거, 언제 찾아 먹을 수 있을까요?"

고용 불안한 노동자들, 18대 대선에서도 투표권 사실상 '박탈'

수도권의 한 건설현장에서 펌프카를 운전하는 한종탁 씨. 오는 19일 대통령 선거일에도 이른 새벽부터 예정된 작업이 많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한 씨는 새벽 4시께 일터로 향할 예정이다. 그리고 "재수가 좋아야" 5시께 퇴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한 씨에게 '투표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란 말은 무색하기만 하다. 그는 "그거(투표권) 언제 찾아 먹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한 씨는 "건설 일을 하며, 대통령 투표를 딱 한 번 해봤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치러진 15대 대통령선거 때라고 했다. 그는 "그것도 갑자기 작업이 취소돼서 얼떨결에 투표권이 생겼던 것"이라며 "사장이 일하라고 하면 일하고, 쉬라고 하면 쉬는 게 건설노동자들의 오래된 현실"이라고 말했다.

▲ 건설 노동자들.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투표권 보장 '사각지대', 건설현장

대선이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온 가운데, 결국 이번에도 많은 건설 노동자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할 전망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따르면, 전국 약 200만 명의 건설노동자 가운데 70%(약 140만 명)이상은 특수고용이나 임시일용 노동자다. 이들은 악천후 등의 이유로 발주처가 공사 중단을 지시하지 않는 한, 새벽부터 늦게까지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일에도 다름없이 적용된다.

물론 현행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가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할 수 없다. 또 사업주가 투표를 방해할 경우, 해당 사용자는 2년 이상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고용이 불안한 건설 노동자 처지에서 '사장님'을 신고하는 것은 해고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이에 건설노조와 투표권보장 공동행동은 지난 몇 달간 원·하청 건설업체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을 상대로 투표시간 보장을 요구해왔다. 가장 좋은 방향은 선거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하거나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것이나, 그럴 수 없다면 출퇴근 시간이라도 조정해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한 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수없이 많은 건설현장은 이들의 투표시간 보장 요구를 모른 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백만 명에 달하는 건설노동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거나, 하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휴무 지정했다가 하루 전날 "그냥 일해라" 지시하기도…

더욱이 투표를 하루 앞둔 18일, 갑자기 기존의 투표시간 보장방침을 뒤엎고 작업지시를 내린 현장마저 파악되고 있다.

인천 송도 부두축조 건설현장은 17일까지는 '투표일 휴무' 방침을 유지하다 18일 갑자기 계획을 뒤바꿔 노동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현장에서 일하는 박성환(가명) 씨는 "오늘(18일) 점심 때 관리자가 갑자기 불러, 내일도(선거일) 정상출근하고 오후 3시쯤 퇴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새벽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투표하러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각 건설현장이 갑자기 투표시간 보장방침을 뒤엎을 수 있는 것은 선거일이 법정휴일이 아닌 임시휴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건설 노동자들의 투표권 보장 여부는 헌법이 아니라 각 건설사의 의지에 달렸단 얘기다.

'빨간 날'인 대선 당일 더 바쁜 사람들

이렇듯 근로의 특수성 때문에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건설현장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남들은 쉬는 날'인 대선 당일 더 바쁘게 일해야 한다. 이에 '전국민간서비스산업 노동조합연맹'과 '투표권보장 공동행동'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백화점, 면세점, 할인점 등 유통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유통업체가 임시 휴점을 통해 유급휴일을 실시하거나 최소한 개점시간이라도 늦추어 투표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는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공문에도 18일인 현재까지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또 이들 단체는 "답을 보낸 다른 사업장들도 정규직원만 대상으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직원들의 투표권은 보장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17일 오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200여 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투표시간 연장 촉구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투표시간 연장 요구에 박근혜, "선동이다"

기본권인 참정권의 보장과 더불어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와 야권은 18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시간 연장을 추진해왔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무산됐다.

이에 따라 19일 대선 투표시간도 여느 때와 같이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까지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제안에 지속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지난 10월 28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일제히 '투표시간 연장'을 제안했으나 박 후보는 "뜬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새누리당 박선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역시 이날 브리핑을 통해 "지금까지 시간이 부족해서 투표율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다.

이어 박 후보는 지난 10월 31일 "(투표시간을) 늘리는 데 100억 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그럴 가치가 있겠느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박 후보는 지난달 22일에는 투표시간 연장 운동을 "선거를 코앞에 두고 투표시간을 연장해야만 투표율이 높아진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로 표를 얻으려는 선동"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수록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이득을 본다는 계산이 그대로 반영된 발언도 쏟아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16일 "우리의 전략은 중간층이 투표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하겠다는데 실효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데 일정 부분 예산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출연해야 한다. 참정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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