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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을 만나다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9> 요세미티 국립공원 (하)

말없이 흐르는 Mercedes 강을 바라본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수면에서 부서진다. 햇살의 정령들이 수면 위에 머물며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춤을 춘다. 이른 아침 햇살은 뜨겁다. 몸은 땀으로 젖고 마음은 눈부시게 흐르는 강물의 아름다움에 젖는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강줄기 내 마음으로 흐르며 지나 온 삶의 고단함을 씻어준다. 강물은 빛으로 출렁이며 깊게 흐른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여 부르는 듯도 하고 함께 가자며 무심히 나를 바라보는 듯도 하다.

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 볼까.

나는 생애 처음 래프팅(Rafting)에 도전하였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의 뒷덜미를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난 두려움이 부여잡고 있었지만 나는 Mercedes강에 이끌려 배를 탔다. 거센 물살과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노를 저었다. 강물을 들여 보았다. 그 속에서 요세미티가 함께 흐르고 있었다. 어제 만났던 신비로운 Vernal Fall도 아름다운 Mirror Lake도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고 먼 허공에서부터 우르릉 거리며 쏟아져 내리던 장엄한 Yosemite Fall도 그대로 흘러들어 함께 흐르고 있었다. 강은 흘러드는 모든 것을 모두 품어 안은 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강물을 Half Dome은 멀리서 바라보고 그 곁의 화강암 돔들 위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바람을 맞으며 외로웠다.
▲ Mercedes River의 지류ⓒ최창남

그렇게 함께 흐르고 흐르다 나는 문득 잃어버린 강이 그리워졌다. 요세미티가 Mercedes River와 함께 품고 있었던 Tuolumne River이다. 지금은 매몰되어 사라진 강이다. 요세미티를 자연 그대로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존 뮈러(John Muir)와 많은 활동가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강행된 Hetch Hetchy의 댐 공사로 Tuolumne River은 매몰되어 사라졌다.

그 강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찾아 온 이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없애고 잃어버린 후에야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까.

강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끊임없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을 잃어가고 있다. 산소를 생산하는 나무와 숲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숲을 없애고 있다. 강과 숲만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 Mercedes River에서 Rafting을 하다ⓒ최창남

사람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어찌 그런 것들뿐이랴.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이 어찌 그것들뿐이랴.

사랑도 삶도 잃어가고 있다.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랑 없는 삶을 택하기도 하고 제 삶을 구원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세상이 정해 놓은 신념과 목표에 마음을 빼앗겨

제 삶을 잃어버리곤 하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인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 삶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있을까.
마음으로 젖어드는 생각들을 견딜 수 없어 나는 Mercedes River를 떠났다.
흘린 눈물이 마음 깊은 곳으로 젖어들까 두려워 나는 강 곁을 떠났다.
▲ 숲속으로 나 있는 길ⓒ최창남

마리포사(Mariposa) 지역으로 향했다. 748,542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공원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용되었다. 마리포사에 다가가자 오랜 동안 잊고 지냈던 세콰이어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었다.

세콰이어(Sequoia) 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잃어버린 또 다른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칠팔십년을 사는 인간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빙하기라는 시대를 지나 온 나무들이 그 시대의 흔적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있었다는 나무들이 거기 그렇게 말없이 있어 그들의 삶을 증거하고 있었다. 다 자라면 키가 120m에 이르고 밑둥치가 8.5m에 이른다는 거대한 나무들이다. 수령이 2,000년에서 3,000년 된 나무들이었다. 나무 하나에서 나오는 목재만으로도 수 십 채의 목조 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나무들이다.
▲ 쓰러진 Sequoia 나무 앞에서..ⓒ최창남

그 거대한 나무들이 장대한 모습을 드러낸 채 하늘을 찌를 듯 서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쓰러져 있는 나무들의 곁에 선 후에야 그 나무들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부러져 있는 작은 나무줄기 하나만으로도 작은 오두막 한 채는 지을 듯하였다. 굵기만 해도 내 몸통의 서너 배는 돼 보였다. 그 장대함과 원시적인 모습으로 인해 마치 세월을 알 수 없고 시간을 느낄 수 없는 고대의 원시림에 들어온 듯하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 천 년 세월이 거기 머물러 있는 듯하였다. 감히 느낄 수 없는 수 만 년 세월의 무게가 온 몸으로 전해졌다. 그 나무들의 말이 들려 왔다.

삶이란 한 순간이니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삶이란 찰나에 지나는 것이니 다른 누구의 삶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가세요. 그 삶으로부터 수많은 삶들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숲은 언제나 숲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아니 숲에 사는 생명들만이 아니라 이 땅에 몸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봄이면 피었다 지는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에서부터 수 백 년 수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의 참나무나 주목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몸에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 장대한 Sequoia 나무 - 지나는 사람들이 작아 보인다.ⓒ최창남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의 색이 노란 것도, 진달래나 철쭉의 색이 붉은 것도, 개망초꽃이나 조팝나무의 색이 하얀 것도 모두 제 삶의 흔적이고 이야기들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고 할지라도 껍질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 결 곱게 가지런히 옷을 입은 나무도 있지만 결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껍질이 갈라지고 터진 나무도 있다. 모두 제 삶의 흔적이고 이야기들이다. 나무와 꽃만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기울여 들으면 바람이 전하는 제 삶의 이야기도 숲이 전하는 제 삶의 이야기도 모두 들을 수 있다.

모두들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제 삶의 말을 하고 있다.

자연에서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다. 아니 제 삶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의 흔적을 지니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다.

그 슬픈 노력의 결과 때문일까. 사람들은 제 마음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제 삶의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생각의 말만 하게 되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이 가르쳐준 생각의 말들을 마치 제 삶의 말인 것처럼 하며 살아간다. 세상이 마음에 넣어준 생각의 말들을 마치 제 삶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며 살아간다. 슬픈 일이다.

깊은 슬픔으로 인해 눈물이 마른다.
▲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숲ⓒ최창남

세콰이어 나무들이 말없이 둘러서 나를 보고 그저 웃는 듯하다. 잃어버린 것은 수 만 년 흘러온 Mercedes강이나 Tuolumne강이 아니었다. 수 만 년 그 자리를 지켜온 세콰이어 나무들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의 삶이었다.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의 삶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삶이 세콰이어 나무들 사이에 서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포시 웃는 듯도 하였고 슬픈 듯 눈물 가득 서린 듯도 하였다. 나는 눈물 가득 서린 듯 한 그 눈을 바라보며 반가움에 눈물 흘렸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고 싶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라만 보았다.

하늘 높이 솟은 세콰이어 나무들 사이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숲만큼이나 깊어진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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