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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가다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7>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향하여

우리는 제니 호수(Jenny Lake)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만년설의 물줄기들이 이루어낸 호수이다. 맑다. 투명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비추인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여행으로 지친 몸의 피로가 사라진다. 지나 온 삶 마음 깊이 쌓여 있는 묵은 때들이 씻겨 진다. 이 맑은 물줄기들 흘러내린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해발 13,000피트에 달하는 높은 산들이다. 거침없이 내달려 하늘로 솟았다. 작은 언덕 하나도 걸리는 것이 없다. 수많은 침엽수로 우거진 고원지대를 지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만년설이 햇빛 때문인지 푸르게 빛난다. 푸르게 빛나는 만년설을 뚫고 하늘 가까이 솟아 있는 산들 또한 산줄기를 따라 내달리며 깊은 계곡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깊은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맑은 물줄기들이 아름다운 호수들을 이루었다. 이곳에서 미국산 가지뿔영양(Pronghorn), 사슴(Deer), 북유럽산 큰사슴(Elk), 캐나다산 큰사슴(Moose), 비버(Beaver), 두루미(Sandhill cranes), 캐나다 거위(Canada geese) 등 수많은 동물들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그 모든 그리운 것들을 그대로 남겨 두고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Grand Teton National Park)을 떠났다. 살을 태울 듯 햇볕이 뜨거운 오후였다. 요새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을 향한 긴 여정에 올랐다. 유타 주(Utah State)의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와 네바다 주(Nevada State)의 카지노 도시인 리노(Reno)에서 하룻밤 씩 머물어야 하는 긴 여정이다. 서부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잭슨 시티(Jackson City)를 거쳐 유타 주에 닿아 있는 80번 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차창 밖으로 수많은 풍경과 많은 마을들,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빅 피니(Big Piney)를 지나고 캠머러(Kemerer)를 지났다. 해발 6,900피트였다. 귀는 멍하다.

황량하기만 한 땅 위로 난 길에 노을이 깃들 무렵 우리는 유타 주(Utah State)에 들어섰다. 이제까지와 달리 드문드문 나무들이 보인다. 150년 전 기독교회의 박해를 피해 마차를 끌고 밀며 록키산맥을 넘어 온 모르몬교도들이 세운 교회들도 보인다. 그들의 피와 땀과 기도로 세워진 땅이 바로 유타 주이다. 기독교회의 박해로 창시자인 조지프 스미스와 그의 형 하이람이 살해되는 지경에 이르자 2대 대관장이었던 브리검 영은 신자 148명과 함께 약속의 땅을 찾기 위해 2,080Km의 대장정에 나섰다.
▲ 마음까지 비춰주던 Janny Lakeⓒ최창남

록키산맥을 넘은 브리검 영이 솔트레이크 계곡을 바라보며 '이곳이 바로 약속의 땅이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솔트레이크 시티가 세워지고 유타 주가 설립되었다. 신앙이 이유가 돼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신앙이란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며 고백이고 믿음이다. 그러한 삶에 사랑과 평화가 깃들고 구원 또한 깃드는 것이다. 때로 신앙이란 참으로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슬픈 일이다. 그 밤 신앙이나 사상 혹은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고통 받았던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평안이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솔트레이크 시티의 밤은 고요했다. 조용한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다음 날 아침 모르몬 사원(Temple square)을 둘러 본 후 솔트 레이크 시티를 떠났다. 아침부터 기온은 화씨 104도를 넘고 있었다. 길을 따라 눈이 내린 것처럼 소금이 쌓여 있다. 눈이 미치는 곳은 모두 소금밭이다.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지 못하여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롯의 아내처럼 믿음이 부족하였던 이들이 많았던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소금이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소금 산을 바라보며 이 땅이야 말로 종교적 가르침을 베풀기에 참으로 좋은 땅이라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그 소금밭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우리는 그 길로 달렸다.
오후 2:00 마침내 네바다 주(Nevada State)에 들어섰다. 다시 시간 선을 넘는다. 세 번째 넘는 시간선이다. 시간 선을 넘는 경험은 참 특별했다. 나는 늘 같은 모습으로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시간은 머물러 있는 자리에 따라 달라진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삶도 머물러 있는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나는 어디에 서서 살아온 것일까. 나는 이제 어디에 서 있으려는 것일까.
▲ Salt Lake City - 곳곳에 소금이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최창남

끝없는 네바다의 사막을 따라 이런 저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동행이 계기판을 가리키며 나를 흘낏 쳐다본다. 기름(Gas)이 떨어져 가고 있다. 이처럼 오래도록 마을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여차하면 화씨 100도가 넘는 날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을 향해 기름을 구걸해야 할 판이었다.

"I need gas!"

이렇게 외치며 서 있을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였다. 자동차는 점점 힘을 잃고 기우뚱거렸다. '이제 시동이 꺼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주유소(Gas Station) 안내판이 보였다. 마을이 나타난 것이다. 펀리(Fernly)였다. 우리는 너무 기쁜 마음에 무엇을 위한 기금인지 보지도 않은 채 기부를 하였다. Fernly 만세!
가벼운 마음으로 리노(Reno)로 향한 길을 재촉했다. 긴 여정의 피로가 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저녁 무렵 리노에 도착하였다. 숙소로 들어서자마자 뷔페(Buffet) 식당으로 달려가 허기진 배를 채웠다. 내 인생에 처음 카지노를 찾은 날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게임 중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빠져 들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그 해 겨울이었다. 나는 9박 10일 간의 여행을 계획하였다. 돈이라고는 9,000원 뿐인 무전여행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 온 지 일주일 쯤 지난 어느 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였다.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서의 일이다. 한적한 겨울 바다를 걷던 중 갯바위 근처에서 웅성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카드 도박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악하게 만들어진 카드 세 장 중 붉은 점이 찍혀 있는 카드를 맞추는 게임이었다. 나는 여행을 더 오래 하고 싶은 욕심에 게임에 참여했다. 그리고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풀빵을 먹으며 절약해 온 여행 경비의 대부분을 잃었다. 주머니에는 고작 500원이 남아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남은 500원으로 다시 게임에 참여하라는 목소리가 울려 왔다. 잃은 모든 것을 다 찾을 수 있다는 소리도 들려 왔다. 아주 강렬한 유혹이었다. 그러나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이 때 배운 가르침이 있었다. 그것은 포기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가끔 이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가벼운 말투로 건네곤 하였다.

'포기가 빨라야 출세가 빠른 법이야.'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정작 내 인생에서는 포기를 빨리 하지 못하였다. 포기를 빨리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포기 자체를 하지 못하였다. 내가 포기하면 다른 이들이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포기하면 그들의 삶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내가 포기하면 내 조국의 역사가 꼭 뒷걸음질 칠 것만 같았다. 나는 늘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출세하지 못했다. 그저 이처럼 시린 가슴 어쩌지 못해 뜨거운 사막의 열기로 시린 가슴을 데우고 있을 뿐이다.
▲ 길을 따라 길을 가다 - 리노를 향해 가다.ⓒ최창남

리노의 밤은 붉었다. 고단한 육신을 녹일 만큼 화려하고 뜨거웠다.

그렇지만 사막의 열기처럼 내 시린 가슴을 데워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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