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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의 '전환', 중국의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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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은 북한의 '전환', 중국의 야심

[압록·두만에서 바라본 북한의 오늘]<13ㆍ끝>

지난 8월 초순 한국의 북한전문가들이 8박9일 동안 압록강 서쪽 끝 단동(丹東)에서 두만강 동쪽 끝 방천(防川)까지 북·중 국경 1376.5㎞, 3000리가 넘는 거리를 답사하면서 강 건너 북한 땅의 사정을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답사는 북한 전문가들이 그 동안 문헌자료와 현장경험을 통해서 축적해온 지식과 눈앞의 현실을 대조하고 검증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답사단의 분석과 평가는 정보와 자료로서 가치가 적지 않습니다. <프레시안>은 답사단의 일원이었던 황재옥 박사가 이번 현장답사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들을 정리한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여덟째 날 오후] 량수이(凉水)-온성 단교와 아오지, 투먼(圖們)

나선 가는 길목과 비파도의 풍속도(風俗圖)

팡촨(防川)에서 옌지(延吉)로 돌아오는 길에 훈춘시 관계자와 점심을 같이 했다. 북한에 대해서 따끈따끈한 얘기를 듣는다는 것은 기자뿐 아니라 연구자에게도 흥미롭고 기대되는 일이다. 이름이나 직위를 밝힐 수는 없지만, 중국 동북지역과 북한 나선(나진·선봉) 연계 개발 행정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7월 말에서 8월 초, 5일간 북한 나선에 다녀왔다고 했다. 우리를 만나기 전 1주일도 채 안 되는 시기에 북한을 다녀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북한을 방문하는데,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갈 때 "여기가 이제 조선이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들판의 옥수수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라고 했다. 북한의 옥수수 키는 중국 옥수수 키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선으로 가는 길목에 삶은 달걀을 파는 북한의 아낙네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삶은 달걀 10개를 10위안에 판다고 했다. 북한 관리들의 한 달 평균 월급이 대충 북한 돈 만 원이고, 북한과 중국의 환율이 500대 1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삶은 달걀 값 10위안은 큰돈이라고 했다. 북한관리의 월급 20위안의 절반이나 되기 때문이다. 요사이 북한 주민들은 모두 도시 주변으로 나와 있거나 농촌에 있거나, 삶은 달걀을 파는 아낙네들처럼 돈 벌어 잘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나선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는데, 러시아와 북한 간 철도 공사 때문에 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중국, 홍콩에 이어 세 번째로 북한의 철도공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중국은 나선에 '농촌신용회사'를 세웠다고 한다. 금융회사인 '농촌신용회사'를 나선에 세운 이유는 북한과 중국 사이의 경제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나선까지 가는 기존 52.9km의 고속도로와는 별개로 직선화된 29km의 4차선 고속도로를 중국이 새로이 건설할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훈춘시 관계자는 나선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비파도에 가면 북한의 개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개방 30년 만에 휴대전화가 보편화됐는데 현재 북한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로 북한은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개방이 일단 시작되면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를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우리의 방문 후인) 8월 13일부터 3차 '조·중 관리위원회'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 서울에 도착한 후 그가 말한 대로 장성택이 중국을 방문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의 말은 믿을 만했고 정보로서 가치도 있었다.

그는 최근 있었던 북한 리영호 참모총장 실각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라는 단서를 달고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만의 견해일까? 북한에서 들은 얘기든가 최소한 중국 관리들의 견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의하면, 김정은은 선군정치와 개혁을 병행하고자 하며 인민생활 개선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는데, 리영호가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실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의 출해권(出海權)과 나선 개발

두만강의 전체 길이는 547.8km이다. 그중 발원지로부터 530.87km에 달하는 구간은 북·중 국경을 이루면서 흐른다. 그러다가 동해로 빠져나가기 바로 직전에 두만강은 북·러 국경을 이루면서 바다로 흘러간다. 북·러가 공유하는 두만강의 길이는 16.93km에 불과하지만, 이 짧은 거리의 두만강 하류 때문에 중국의 배는 태평양으로 나갈 수 없다. 중국 동북3성중 랴오닝성(遼寧省)은 다롄(大連), 단둥(丹東) 등 성내에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지만,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지린성(吉林省)은 출해 항구가 없다. 동해로의 출해 항구가 없기 때문에 중국은 대안으로서 북한의 나선지역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북3성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자 중요 생산기지다. 현재 중국 정부는 동북3성과 북한의 연계 개발에 중국 동북지방 경제의 사활을 걸고, 국가 차원에서 이 지역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동북지역 경제 활성화 프로젝트의 중심에 나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선은 지경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이 욕심을 내고 있지만, 일찍이 일제강점기 일본이 만주나 조선에서의 약탈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르고, 만주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군수품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던 항구가 바로 나진항이었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나진항에 관심을 두고 북·중간 협력을 강화하기 이전인 1995년에도 나선은 UNDP(유엔개발계획)의 '두만강지역 개발계획(TRADP)'의 중요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남북 총리급 회담이 성과를 내고 있었고 북한의 대미접근 노력이 가속화되던 1991년 12월, 북한은 나진·선봉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하고 이후 수년간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다. 나선은 그만큼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나선지역 개발을 통해 동북지역의 물류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은 2008년 나진항 1호 부두 사용권을 따낸 데 이어 최근 4‧5‧6호 부두 건설권과 50년 사용권을 확보하였다. 나진항 1호 부두 보수공사와 4~6호 부두 건설이 끝나면 중국은 나선을 통해 연간 600만t의 물동량 처리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중국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은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해 청진항도 활용하려고 한다. 청진항의 경우 기존 진출국인 러시아와 경쟁을 해야 하지만, 중국이 청진항 3·4호 부두를 확보하게 되면 북한의 나진항을 통해 연간 총 1300만 톤의 물동량 처리능력이 생긴다고 한다.

북한의 나선과 중국의 훈춘은 중국의 동북지역 개발 프로그램의 하나인 '창지투계획'(창춘-지린-투먼)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경제적인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장차 군사적인 측면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자국의 상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해군이 동해에 수시로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경제의 '쓰나미'가 나진항과 청진항을 통해 일본과 태평양으로 몰려갈 것이다. 이에 대해서 러시아와 일본이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은 중국의 동해 진출에 가장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나선을 국제화물 중개지, 수출 가공기지, 관광과 금융의 경제특구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 안보문제 때문에 국제적 협조를 받아내지 못한 관계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중국의 움직임과 계획에 비교적 협조적인 자세로 호응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중국 외에는 북한에 협조적인 나라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나진항을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개발하고, 중계무역기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의 일환일 것이다.

량수이-온성 단교와 아오지 가는 길

훈춘 관계자를 만나고 옌지로 돌아오는 길에 량수이(凉水)라는 곳에 들렀다. 압록강에는 단둥(丹東)과 허커우(河口) 두 군데 단교가 있었고 두만강에는 량수이에 단교가 있다고 해서, 량수이 단교에 들렀다.

▲ 량수이-온성 단교 ⓒ황재옥

량수이-온성 다리는 일제가 만주에서 약탈한 물자를 조선을 통해 일본으로 후송하기 위해 1936년에 건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5년 8월, 소련이 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고 일본군에게 맹렬한 폭격을 가하자, 일본군은 이 다리를 통해 한반도로 퇴각했다. 퇴각하면서 소련의 추격을 막기 위해 일본 스스로 량수이-온성 다리를 폭파했다고 한다. 이 다리가 끊김으로써 소련군은 온성 쪽 육로로 전진하지 못하고 8월 6일 청진, 웅기 쪽으로 돌아서 북한 지역에 들어왔다고 한다.

6·25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 위의 단교와는 달리 1945년 8월 소련군에 쫓기던 일본군이 끊었다는 량수이-온성 단교를 보고 나서, 단교에서 상류 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인도교 쪽으로 갔다. 다리 시작 지점에 초소 같은 것도 없고, 중국 군인 두어 명이 서 있을 뿐이었다. 건너편 북한 군인도 어딘가에서는 이쪽을 보고 있겠지만, 우리 눈에 띄지는 않았다. 경비도 그다지 삼엄하지 않았고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주변은 너무 조용하고 나른하기까지 했다.

▲ 량수이 인도교 ⓒ황재옥

우리가 걸었던 인도교는 북한의 온성으로 가는 다리지만, 온성을 거쳐 그 유명한 아오지로 연결되는 다리이다. 아오지는 6·25전쟁 당시 국군포로를 보냈던 곳으로 '아오지탄광'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북한에서 가장 척박하고 휴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우리 국군포로를 보냈던 곳인데, 이제는 북한의 반체제 인사들을 귀양 보내는 곳이라 한다.

투먼(圖們)과 남양

량수이에서 옌지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한반도 최북단 지점, 그러니까 지도에서 토끼 귀처럼 뾰족하게 중국 쪽으로 들어간 곳 건너편에 잠시 차를 세웠다. 두만강이 거의 90도 가까이 굽어 돌아 나가는 곳으로, 건너편에는 마을도 없고 그리 높지 않은 산(山)만 하나 덩그러니 서 있었다.

▲투먼에서 바라본 한반도 최북단 ⓒ황재옥

북한 남양이 건너다보이는 투먼(圖們)에 도착했다. 김정일은 생전 마지막 해인 2011년 5월 중국 동북지방 방문 시 투먼을 거쳐 중국에 들어갔다. 이후 추가로 두 차례 더 김정일이 투먼을 거쳐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북·중 관계에서 투먼의 비중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남양을 바라다볼 수 있는 투먼 커우안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투먼 철도역이 보였다. 단정한 옷차림의 중국 공안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철로와 역 주변, 역사(驛舍)도 방금 만들어 놓은 양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 투먼 철교 ⓒ황재옥

투먼의 철도는 북한의 남양으로 건너가 함경선 철도와 연결되면서 북·중간 통상·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단둥(丹東)에 이어 동북지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북·중간 물류를 소화해 내고 있는 곳이 투먼이라고 한다. 투먼역은 1954년부터 국제 수송을 시작하였는데, 북한의 나진항, 청진항과는 철로로 직접 연결되고 있다. 북한의 나진역을 거치면 러시아 극동 철로와도 연결될 수 있어 투먼역은 북한 외에 러시아, 일본 간 수출입 물자의 중계수송 거점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김정일도 투먼 쪽 철로를 이용해서 중국에 들어왔었지만, 투먼에서 베이징을 오가는 기차는 한 주에 한 대씩 운행될 정도로 투먼은 교통과 물류의 요지이다. 투먼에서 출발한 관광열차는 남양으로 건너간 뒤 청진을 거쳐 칠보산까지 1주에 한 번씩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투먼 커우안 주변에는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고, 상점과 식당들이 즐비했다. 그에 비해 망원경으로 본 건너편 남양은 한산하고 빈한한 농촌마을이었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느껴졌다. 중국은 나날이 모습이 바뀌어 가고 있는데 북한은 시계가 멈춰 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중 간 교통망 연결

두만강 하류 중국 쪽 지역에서는 압록강 쪽보다 많은 북·중간 철도와 도로 공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중국과 북한 간 인프라에서는 도로보다 철도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기존 북한 철도의 현대화와 관련된 협상 과정에서 북·중 양측 간에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철도 침목은 나무인데 중국 침목은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어 두 나라 철도를 연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나무 침목을 까는 경우, 시간당 기차의 운행 속도는 40km 정도에 불과하고 노반이 약한 탓에 과속 시에는 탈선의 위험마저 있다고 한다. 신의주에서 평양까지의 철도 침목도 아직 나무라고 한다. 이 같은 차이는 북‧중 철로를 연결하는 데 있어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중국이 철도를 현대화해준다고 하는데도 조건을 많이 내건다고 한다. 첫째, 북한은 중국이 공사를 하더라도 기술검수, 즉 준공검사는 반드시 자기네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철도 주변의 주택을 정리하는 문제에 대해 공사를 하는 중국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요구 같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중국에 왜 이런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중국이 북한과 철도 연결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고 북한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북한은 외교협상에서 상대방의 의중과 필요를 역이용하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이악스러운 면이 있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대북 진출을 위한 접경지역 교통망 확충에 오래전부터 공을 많이 들여왔는데, 이는 북·중 접경지역 교통인프라 구축이 중국의 동북진흥계획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지투(창춘-지린-투먼)개발계획'과 '랴오닝(遼寧)연해(沿海)경제벨트' 개발계획, 동북3성을 가로지르는 총 1380km의 동변도(東邊道) 철도 건설계획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헤이룽장성 수이펀허(綏芬河)에서 출발하여 두만강과 압록강 변을 따라 달리다가 단둥을 거쳐 다롄(大連)으로 올라가는 동변도(東邊道) 철도와 선양(瀋陽)-단둥 고속철, 창춘(長春)-훈춘 고속철, 단둥-퉁화(通化) 고속도로, 퉁화-옌지(延吉) 고속도로 등이 잇달아 건설되고 있다. 또한 철광석 수송을 위해 북한의 무산과 중국 지린성 난핑(南坪)을 잇는 철도, 나선개발을 위한 북·중 통로 6곳 등이 새로 개발‧정비되고 있다.

이들 교통망은 중국의 동북 주요 도시와 북한 접경지역을 잇는 것으로, 중국은 북한이 개방하면 이들 교통망을 북한의 주요 산업도시까지 연장, 대북 진출을 원활하게 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개방과 전환(轉換) 사이, 북한의 본심은?

운 좋게도 우리는 옌지에서 최근 중국에 온 북한학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 조선족 동포 학자 한 분을 만났다. 그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하려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금년 7월, 중국사회과학원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북한 학자가 개혁개방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쓰면서, 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는 말을 우리에게 해주었다.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북한학자들이 밖에 나가서 개인 소견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한학자가 중국학자들에게 개혁개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했다면, 그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의 정책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족 학자는 북한학자들이 예전과는 아주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번 답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 11월 상순, 필자는 올해 10월 말 11월 초, 1주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에 온 재미동포 의사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쓰기 싫어한다고 하면서, 개혁개방이라는 용어 대신 '전환(轉換)'이란 말을 쓰더라는 얘기를 필자에게 했다. 그가 설명하기로는, 북한 바깥에서 북한을 상대로 쓰는 개혁개방이라는 용어에 담긴 함의 때문에 북한은 이 용어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재미동포 의사는 북한이 '전환'을 위해 어떻게 법을 개선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더라고 덧붙였다.

'전환'을 시작하기 전에 법과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 순서이기도 하지만, 법의 개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특히 경제특구를 법제화할 때 어떻게 시장경제 원리에 맞춰야 할지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고 있더라고 했다. 즉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개혁개방 할지를 고민하고 갈등 중인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좀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은 "우리를 적대시하는 나라의 자본까지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정도라고 했다.

올해 7월 중국 사회과학원 세미나에서 북한학자들과 대화했던 조선족 학자와 10월말 평양을 방문했던 재미동포 의사의 말을 종합하면 대체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은은 개혁개방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북한 바깥에서 개혁개방을 하면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느니, 그것이 두려워 결국 절대로 개혁개방 하지 못할 것이라느니 왈가왈부하는 것이 기분 나쁘고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은 지금 개혁개방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나, 그것이 내부의 일반주민들에게 미칠 파급효과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지 않나 싶다. 그 와중에 내용상으로는 '개혁개방'이지만, 대내적으로 용어상 '전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나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대외적으로 중국과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쓰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전환'이라는 개념을 빌려 내용상 개혁개방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지안-만포 철교로 가는 길옆 벽보에 북한이 개혁개방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던 것을 되짚어보면서, 북한이 밖으로 중국과 같은 나라에는 개혁개방 얘기를 거침없이 꺼내고, 중국도 그걸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북한은 최근 발표된 「6.28 방침」에서 종래 쓰던 '강성대국'이라는 용어 대신 '강성조선'이라는 용어를 썼다. '강성조선'은 욕심부리지 않고 북한의 실정에 맞게 북한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 방식과 결과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과연 중국의 모델을 받아들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국은 접경지역 개발정책을 부린(富隣)정책, 또는 화린(和隣)정책이라고 한다. 이는 중국의 접경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서 인접국가를 부자로 만들어 주고 인접국가와 화목하게 지내겠다는 뜻이다. 변경지역, 접경지역에 대한 투자는 바로 중국의 인접국 외교의 일환인 셈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두만강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중국도문변경 ⓒ황재옥

중국의 대북 경제 진출, 축복일 뿐인가?

두만강 쪽 접경지역의 활기는 압록강 쪽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모자라지 않았다. 이 같은 활기의 뒷면에 숨어 있는 중국의 야심이 내심 걱정되었다. 지난 수년간 남북교류·협력이 중단된 동안 북한으로서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북·중 경제협력이 심화되고, 그 와중에 북한의 영토가 중국의 안마당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선, 청진 등지에 중국은 자신의 자본과 기술로 항만과 부두를 건설하고 건물들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나선과 청진이 결국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 주요 해안 도시에 있던 서구 열강의 조계(租界)와 비슷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공개된 '조·중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경제지대 공동개발 총계획'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중국은 접경지역 북한 땅인 황금평을 100년간 임차하고, 대신 매년 5억 달러(한화 5400억 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북한에 주되, 식품 등 북한이 필요한 물자를 주기로 했다고 한다. 황금평은 총면적 1,145km²에 이르는, 남한 여의도 면적의 약 1.5배에 달하는 규모로 벼농사가 잘되는 비옥한 지역이다. 또한 중국은 2008년 나진항 1호 부두에 이어 지난해 5월 나진항 2호 부두의 20년 사용권을 확보했으며 청진항 사용권 확보도 추진하고 있다.

100년간 임차하기로 했다면, 그곳은 사실상 중국의 영토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중국이 영국에 홍콩을 99년 동안 조차(租借)해 주었다가 1997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았지만, 그동안 홍콩은 딴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중국은 부득이 홍콩을 1국 2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오늘 날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면서도 본연의 중국은 아닌 것이다. 역사가 꼭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빌려 쓰는 곳들이 훗날 홍콩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 일각에는 북한의 경제 개발권을 우리가 아닌 중국이 갖거나, 중국이 북한의 영토를 잠식하는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고 지금도 우리와 군사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해도, 북한과 우리는 한민족이다.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자 동반자이다. 통일 후의 북한은 우리의 경제권역이며 그 영토는 우리의 영토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의 경제적 이권과 영토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중국에 넘어가고 잠식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민족 전체의 번영과 이익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방법과 과정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하는 동안 보았던 장면들,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느꼈던 소회를 종합하면 '걱정과 우려'라고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날짜 수로는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8박 9일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고민한 정도로 말한다면 매우 길었던 북·중 접경지역 답사를 끝내면서 마음이 후련하기는커녕 오히려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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