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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의 꿈, 시청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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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의 꿈, 시청자의 꿈

[TV와 수다] <온에어>의 자아 비판, 그 진정성 혹은 상업성

창작자에게 자아비판은 최후의 수단이자 최선의 도구다. 스스로를 비판하고 희화화 시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인 동시에 가장 진정성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요즘 TV는 자기반영을 넘어 자아비판에 푹 빠져있다.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는 너무 재미없고 약해졌다는 외부의 비판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개그를 만들어낸다. 같은 프로그램의 '라디오 스타'는 오래전부터 DJ들의 과거 행적과 이미지를 잔인할 정도로 '씹으며'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톱스타 최진실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선희의 입을 빌어 나이 속이고 심야에 몰래 보톡스나 맞기 위해 숨어 다니는 톱스타를 비웃는다. 이런 TV의 자아비판의 절정에 SBS 수목드라마 <온에어>가 있다. 이 드라마는 매회 강도 높은 자아비판을 쏟아내며 드라마라는 매체와 그 매체를 둘러싼 산업과 환경을 풍자하고 비꼬고 희화한다.

나는 네가 지난 드라마에 한 짓을 알고 있다

<온에어>의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는 한국 드라마사에 손꼽을 만한 멜로드라마 콤비다. <파리의 연인>에서 시작해 <프라하의 연인>, <연인>까지 소위 '연인 3부작'을 선보이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이름만으로도 흥행을 보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PD 콤비다. 특히, <파리의 연인>은 '사회적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멜로드라마의 기본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작품이다. 남-여-남 삼각관계 위주의 드라마를 남-여-남-여의 사각 구도로 변형한 드라마인 동시에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소위 '캔디형' 여자 주인공의 전형을 확립하며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는 종종 아시아 전역에서 재벌, 신데렐라 드라마뿐이라는 비웃음을 사지만, 사실 이런 유의 '전형적' 멜로드라마 중 시청률 50%를 넘긴 작품은 오직 <파리의 연인> 뿐이다. 한국 멜로드라마의 완성형 혹은 최고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만큼 김은숙, 신우철 콤비는 멜로드라마 분야에서 대적할 상대가 별로 없는 '절대강자'다.

하지만 '절대강자'가 작심한 듯 들고 나온 <온에어>는 그들의 과거 드라마를 모조리 비웃고 까고 비판한다. 소위 '명대사'를 가장 잘 쓰는 작가로 소문난 김은숙 작가는 그 명대사들이 '쪽팔리지 않냐'고 비웃는다. '재벌, 신데렐라'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드라마들을 만들어온 두 콤비는 거의 매주 "재벌, 신데렐라, 출생의 비밀, 그런 거 좋아하시나 봐요?"라는 날선 대사를 선보인다. 노골적인 PPL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파리의 연인>을 쓴 작가가 "그러는 작가님은 왜 작품마다 PPL로 도배를 하죠?"라고 성토한다. 매회 어록을 뽑기 벅찰 정도로 숱한 자아비판을 쏟아내는데, 이건 정말 '나는 네가 지난 드라마에 한 짓을 알고 있다' 수준이다.
▲ SBS 수목드라마 <온 에어> 출연진. ⓒSBS

현실 비판과 판타지가 섞인 세계

사실, 김은숙 작가의 이런 '도발'은 이미 슬쩍 나온 적이 있다. 이제는 거의 잊혔지만 <파리의 연인> 마지막 회는 대단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방영 내내 '신데렐라 판타지'를 근사하게 보여주던 드라마가 마지막에 느닷없이 이 모든 건 주인공의 상상이라고 선언해버렸다. '드라마는 환상일 뿐'이라는 도발적 명제를 작가 스스로 던진 것이다. 애초에 김은숙 작가는 전형적 멜로드라마에는 관심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4년 동안 참을 만큼 참았던 것을 이제야 쏟아낼 기회를 잡았다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온에어>는 4년 동안 참아야만 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자, 그 참을성을 길러준 한국 드라마, 그리고 그 드라마를 둘러싸고 있는 산업, 환경 자체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온에어>의 세계에서 PD는 '진행비'를 챙기고 스타와 인기 작가는 안하무인이며 연예기획사 사장은 '성상납'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한국 드라마 산업은 이 모든 구조적 문제를 안은 채 오로지 시청률을 통한 돈 벌기를 목표로 달려가는 영겁의 '화차'다.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소비 시장도 만만치 않다. 시청자는 지적 장애인 드라마 주인공을 용납하지 않으며, 뻔하다고 욕하면서도 뻔한 것만 챙겨보고, '좋은 드라마'라는 평이 들리는 순간 채널을 돌려버리는 존재들이다. <온에어>에서 선보이는 자아비판은 드라마를 둘러싼 모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불만을 토로하는 장치인 것이다.

스스로에게 칼끝을 돌릴 때는 분명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온에어>는 드라마를 둘러싼 현실의 모든 문제를 극복한 드라마에 대한 꿈을 꾼다.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바란다. 그래서 <온에어>는 자아비판인 동시에 근사한 판타지이기도 하다. <온에어>의 세계에서 PD는 '진행비'를 거절하고 스타와 인기 작가는 한발씩 양보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며 연예기획사 사장은 오로지 '진정한 배우'를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결말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온에어> 극중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티켓 투 더 문'은 지적 장애인이 주인공임에도, '좋은 드라마'임에도, 시청자에게 '진심'을 느끼게 하며 높은 시청률을 얻거나 근접할 것이다. 작품성과 흥행성, 사회적 의미를 모두 갖춘 드라마, 이것이야말로 모든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시청자가 한번쯤은 꿈꿔 봤을, 그런 판타지다.

'좋은 드라마'를 보기 위한 첫걸음

어쩌면 <온에어>의 자아비판은 오직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자아비판이 진정성 없이 웃음을 위한 재료로만 사용되는 <황금어장>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의심이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온에어>가 드라마, 그리고 드라마 산업과 환경에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온에어>의 자아비판이 단순한 흥미성 자아비판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의미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사회와 사람들의 역할이 분명하게 필요하다.

드라마는 점점 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누구나 쉽게 비평할 수 있는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 혹은 사적 대화의 자리를 통해 자신의 드라마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드라마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나같이 모자란 사람조차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으로 드라마에 대한 글을 쓰는 세상이다. 모두가 '드라마 전문가'인 시대다.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온에어> 같이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고 인기를 끄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온에어>의 한 장면. ⓒSBS

하지만 늘어나는 드라마 담론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건 별로 없다. 분명 한국의 드라마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 속에 소재는 한층 다양해지고 작품성은 한결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 제작 환경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쪽대본이 횡행하고 스타에 대한 의존도는 변함이 없으며 시청률 지상주의는 변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산업과 환경의 근본적 변화 없이 창작자의 개인 능력에 의존한 작품의 발전은 언젠가 허물어질 모래성일 뿐이다.

담론이 쏟아져 나올 때는 그것을 묶어 유의미한 사회적 현상으로 만들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드라마 캐스팅이 어떻고 주인공이 무엇을 입고 나왔으며 시청률이 얼마냐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만이 과할 정도로 횡행하기에 우리는 만날 '뻔한' 드라마를 지겹게 봐야 하거나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의 조기종영과 <드라마시티>의 폐지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변화하는 시대상과 사회적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창이다. '아줌마 형사'가 주인공이 되거나 사채업자가 돈이 최고가 된 세상과 전쟁을 벌이는 드라마는 20세기에는 볼 수 없었던, 지금 시대의 특성과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사회의 창으로서의 드라마의 역할을 좀 더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그리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드라마와 드라마 산업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고질적 드라마 산업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드라마로부터 유의미한 문화적,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 노력은 드라마가 단순한 개인적 기호품 혹은 일시적 소비 그리고 씹기 편한 '수다'거리 정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괜찮은 사회를 위한 훌륭한 '문화적 계기'가 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언젠가 <온에어>가 꿈꾸고 드라마를 사랑하는 많은 시청자들이 꿈꾸는 '좋은 드라마'를 매일매일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TV와 수다>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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