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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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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따라 걷다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5>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하>

옐로스톤의 아침이 밝았다. 석고보드와 목재를 조합해 만든 조금은 어설픈 오두막이었으나 아침은 눈부셨다. 눈부신 햇살이 들어 왔다. 눈을 뜨자 어제 저녁에 먹은 꽁치김치찌개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지난 밤의 아름다웠던 별빛과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침이었다. 행복한 밤 행복한 아침이었다.
▲ Lower Fallsⓒ최창남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서둘러 오두막을 나섰다. 숲은 아름답고 발걸음은 여유로웠다. 우리는 다시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stone)으로 향했다. 옐로스톤 강이 품고 있는 Lower Falls를 곁에서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Lower Falls로 내려가는 길인 Lookout Point Trail은 한가로웠다. '우르릉- 우르릉-' 폭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은 가파르다. 이른 새벽 Lower Falls을 만나고 오는 이들의 눈인사가 지나간다. '우르릉- 우르릉-' 대던 소리가 '콰콰쾅-콰콰쾅-'하는 소리로 바뀌자 거짓말처럼 Lower Falls 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온통 물보라뿐이다.

물보라를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젊은 날 상처 받은 마음을 씻어 내기 위해 떠났던 길 먼 바다 새벽에 만났던 해무처럼 피어오른다. 물안개들이 얼굴로 목덜미로 스며든다. 몸으로 젖어든다. 협곡의 절벽을 타고 오른다. 강이 오랜 세월 제 몸 부대끼며 만들어 놓은 협곡이다. 바위틈마다 물안개 꽃이 피어오른다. 물안개와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듯하다. 갈구하며 다가서는 듯하다. 나무는 파르라니 떨며 몸을 흔들고 물안개는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른다.

내 삶도 저렇게 흐르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내 삶도 저처럼 제 갈 길로 흘러가기만 하였으면 되었을 것을...
내 삶도 저렇게 갈구하며 사랑하면 되었을 것을...

돌덩이 뿐인 이 산에 이끼도 자라고 이름 모를 꽃들도 피어나고 소나무도 자라듯이 그렇게 내 삶도 아름다워질 것을 말이다.

왜 사랑을 택하지 못했을까. 왜 제 사랑을 택하지 못하고 사랑하기에 보낸다는 세상의 허튼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왜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왜 제 삶도 존중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삶을 존중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수작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눈물이 난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발걸음을 돌린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내려온 길이 아득하다. 숲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오른다. 쉬어가는 굽이에서 지친 다리 쉬고 있던 인상 좋은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사이 아득하기만 했던 길이 이내 가까워졌다.

우리는 Mammoth Hot Spring Terrace를 지나 또 다른 간헐 온천들이 모여 있는 West Thumb를 향했다. 그날 밤 숙소였던 그랜트 빌리지(Grant Village) 부근이었다.
▲ 지금도 계속 형성되고 있는 Mammoth Hort Spring Terraceⓒ최창남

약 60만 년 전 화산의 격렬한 폭발로 형성된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수많은 간헐 온천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지표면에서 30마일 정도의 깊이에서 흐르고 있는 마그마(Magma)가 옐로스톤에서는 불과 2, 3마일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그마들은 수많은 간헐 온천들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무숲을 만들어 놓았다. 약 200만 년 전 화산 폭발과 지각 변동으로 인해 화석이 된 나무숲이다. 그 화석의 숲을 바라본다. 그 화석 숲이 품고 있는 200만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 숲에는 늘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야 삶과 죽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숲에서는 다르다. 200만 년의 세월을 품고 화석이 된 채 서 있는 나무들 가득한 옐로스톤의 숲에서는 더욱 다르다. 삶과 죽음은 늘 하나이다. 삶은 죽음을 향하고 죽음은 삶을 품으며 늘 새로워진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것이 숲의 가르침이다. 모든 숲의 가르침이다.

화석 숲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든 사이 자동차의 속력이 줄어들더니 이내 멈추어 섰다. 창을 여니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미국산 들소 바이슨(Bison)이다. 바이슨 두 마리가 느린 걸음으로 도로 한 가운데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못생겼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듯 가까이 바라보니 눈동자가 참으로 맑았다. 순하게 생겼다. 나는 손을 내어 뻗어 만져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 도로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Bisonⓒ최창남

야생동물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최대의 자랑이요 볼거리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가장 성공한 야생동물들의 성역지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야생동물들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미국산 들소(Bison), 북 유럽산 큰사슴(Elk), 로키양(Bighorn Sheep), 캐나다산 큰사슴(Moose), 사슴(Deer), 노새(Mule), 회색곰(Grizzly Bear), 미국산 가지뿔영양(Pronghorn), 코요테(Coyote), 산 사자, 비버(Beaver), 독수리, 물수리(Osprey), 흰 펠리컨(White Pelican) 등 수많은 야생동물이 그들이다. 실로 동물을 단순한 구경거리 정도나 재화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동물들의 천국이다. 이런 야생동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바이슨(Bison)들이 지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며 유쾌하고 통쾌했다. 7월의 뜨거운 열기로 지쳐가던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즐거워졌다. 행복했다.
▲ 신비로움을 감추고 있는 Abbyse Geyserⓒ최창남

길이 열리자 우리는 다시 나아갔다. 바다와도 같은 옐로스톤 호수는 늘 곁에 있었다. 마침내 West Thumb에 도착하였다. 호수 곁으로 난 트레일이다. Mammoth Hot Spring Terrace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간헐온천(Geyser)들이었다. Black Pool은 말 그대로 깊이를 느낄 수 없는 어둠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했고 Abbyse Geyser 또한 '깊은 바다'라는 뜻처럼 넓고 깊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색조같이 여러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호수와 같은 Abbyse는 수 십 가지 색을 품고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을 졸이다 호수 곁을 걸었다. 호수 바닥에도 Geyser들이 있었다. 뜨거운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Geyser를 중심으로 호수 면에 동그란 파문이 연이어 일고 있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YellowStone Lake 바닥에 있는 Geyserⓒ최창남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만난 많은 Geyser들 중 압권은 물론 가장 유명한 Old Faithful Geyser였다. Old Faithful Geyser는 다른 Geyser들과는 달리 분출 시간도 1시간 여 간격으로 일정할 뿐 아니라 분출량도 평균 8천 400갤런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우리가 찾은 그 날도 도착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온천수를 분출하였다. 높이가 수 십 미터는 넘어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천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사람들 모두 탄성을 뱉어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Geyser의 짧은 분출이 끝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많던 사람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글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 순간 나는 다소 서글퍼졌다. 그들이 제가 보려고 했던 것만을 보고 훌쩍 떠나서였을까. 언제나 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본 듯해서였을까. 그저 마음 한 구석이 쓸쓸했다.
▲ 수십미터까지 치솟는 Old Faithful Geyserⓒ최창남

나는 Old Faithful의 오래된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1988년에 있었던 큰 불길도 침범하지 못했다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다는 고색창연한 건물도 바라보았다. Old Faithful로 오던 숲길처럼 깊은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아름다웠다.

이곳을 다녀간 모든 이들의 삶도 이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했다.
하루 종일 뜨겁던 해는 기울고 마음은 안온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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