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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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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강을 따라 흐르다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4>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상>

우리는 넷째 날 아침을 블랙힐스에서 맞았다. 맑은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새로워졌다. 블랙힐스에서 만났던 많은 이야기들은 그것대로 제 살던 곳에 남겨 두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찾아오는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긴 하루의 시작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찾아들기 전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 도착하려면 거의 9시간을 달려야 했다.

자동차의 시동 소리도 상쾌했다. 길을 떠나자 길 가에 서있던 소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반긴다. 잘 가라고 반가웠다고 인사를 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참으로 잘생긴 소나무들이다. 배드랜즈(Bandlands)의 소나무들과는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배드랜즈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작고 비틀려 있었다. 껍질은 터져있었다. 하지만 블랙 힐스의 소나무들은 모두 하늘에 닿을 듯 키가 크고 곧게 뻗었다. 껍질 또한 터지지 않아 단정한 모습이었다. 너무나 다른 삶이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그렇게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늘 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때로는 배드랜즈의 소나무들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며 싸우고 때론 블랙힐스의 소나무들처럼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면서 말이다.

10시가 조금 지났다. 신성한 땅 블랙힐스를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무지가 펼쳐진다. 키 작은 나무들이 간혹 보일 뿐이다. 먼지 때문인가. 회색이다. 푸석거리는 메마른 땅에 불쑥불쑥 보이는 그 희끗한 모습이 어느새 듬성듬성 자리 잡은 터럭 허연 수염 같았다.
▲ 여행일기-Big Horn National Forest를 지나며..ⓒ최창남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텁수룩해지는 나는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 계획 이외의 다른 계획을 하나 세웠다. 그것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벌써 나흘이 지났다. 닷새 째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조금 생경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얼굴의 반을 덮은 턱수염 사이사이에서 흰 수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느 겨울 어스름한 저녁 내리는 눈발 같기도 하고 푸르른 소나무 숲 가운데 끼어 있는 자작나무나 흰 참나무 같기도 하였다.

이렇게 흰 수염이 자랄 때까지 잘도 살았구나.
하기야 머리에 내린 서리가 어찌 턱이라고 피해가겠는가.
그들도 나와 함께 살아가며 세월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런 상념에 마음 빼앗기고 있을 때 길가의 입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묘한 글귀였다. 'Gold loves you!'라고 적혀있었다. 아니 아무리 금으로 유명했던 땅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보았다. 나의 착각이었다. 입간판에는 'God loves you!'라고 적혀 있었다. 블랙힐스의 금에 얽힌 슬픈 역사에 젖어 있던 나는 God을 Gold로 잘못 본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하고 있는 동행에게 'God'과 'Gold'는 'L'자 하나의 차이 밖에 없다며 웃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묘한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여행길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반감시킬 수 있는 이런 상념들은 인디언들이 '대초원'이라고 불렀던 와이오밍 (Wyoming)주에 들어서며 곧 사라졌다. 미국 최초의 National Forest인 'Big Horn National Forest'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서부로 자동차 여행을 하는 이들은 꼭 들려 보기를 권한다.
▲ Yellowstone National park main entrance.ⓒ최창남

자동차를 몰아 허공에 길을 놓은 듯 굽이굽이 보이지 않는 산허리를 따라 오르자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정상이다. 산 정상이라면 뾰족한 봉우리로만 알고 있던 내 앞에 상상할 수도 없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광활해 보이는 초원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길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황량해 보이는 바위들과 곳곳의 작은 호수들과 그 호수들을 이으며 고요히 흐르고 있는 시내들을 품은 채 하늘과 초원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이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할까. 하늘에 오르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마음 깊이 젖어드는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사이 자동차는 서서히 산 아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느라 잠시 차를 세운 우리 곁으로 말 탄 카우보이의 무리들이 지난다. 나의 삶이 여기 있듯이 그들의 삶 또한 거기 있었다. 여행이란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길을 재촉했다. 빅혼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오후 4시 33분. 옐로스톤을 향해 달린 지 7시간 30분이 지났다. Shoshon National Forest에 들어선다. 하늘이 검어진다. 빗방울이 뿌린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온다. 폭우다. 협곡을 지나며 비바람은 다소 주춤하였지만 기온은 급강하 하였다. 화씨 95도까지 올라갔던 기온이 화씨 59도가 되었다. 바람에 깎인 검붉은 바위들 사이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깊은 계곡이다. 계곡으로 많은 물이 흐른다. 산이 깊으면 계곡도 깊고 물도 깊이 흐르는 법이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많고 계곡을 돌아 나오는 바람도 거센 법이다. 그래서 그런가. 바람이 드세다.
▲ 고요히 흐르는 YellowStone River.ⓒ최창남

우리는 드디어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세계 국립공원제도의 발상지인 옐로스톤에 도착하였다. 오후 5시 15분이었다. 공원의 동쪽 문으로 들어서자 1988년 대화재 때 타고 그을렸던 나무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화석화된 나무들처럼 서 있다. 불탄 숲과 나무들은 눈으로 보기에도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숲은 푸르러지고 깊어지고 있었다. 숲을 지나자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옐로스톤 강이다. 내린 비 때문이었을까. 강은 더욱 맑고 잔잔하게 흐르는 듯하다. 잠시 차를 세우고 강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저렇게 흘러왔을까.
우리의 삶도 저렇게 맑게 흘러갈 수 있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사슴(Elk)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더 나아가자 나무 숲 사이로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옐로스톤호수(Yellow Lake)였다. 최대수심 320피트, 폭 14마일, 길이 114마일에 달라는 북미에서 가장 큰 호수인 옐로스톤호수이다.
▲ YellowStone Lake.ⓒ최창남

깊은 산 속에 어떻게 이렇게 큰 호수가 있을 수 있을까.
이 많은 물이 어디서 흘러 왔을까.

마치 바다와 같다. 지나는 배 때문이었을까. 깊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을까. 물이 출렁인다. 밀려든다. 파도가 치는 듯하다. 호수 건너에 낙조가 드리운다. 은빛으로 빛나며 출렁이던 호수 면은 조금씩 붉게 물들어간다. 바람을 따라가는 듯 이끌리는 듯 배 한 척 흐른다.

옐로스톤 호수에서 많이 잡힌다는 송어 낚시를 나온 것일까.
그저 이 길에서 마음 담으려고 제 몸 띄운 것일까.

조금씩 해가 기운다. 낙조가 깊어진다. 호수 곁으로 난 길을 따라 자동차를 몰아갔다. 어둠이 깃들기 전 옐로스톤 강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과 폭포를 마음에 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비지터 센터의 안내인이 알려준 대로 노스 림(North Rim)의 인스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로 향했다.

자동차를 따라 어둠이 깃드는 듯 했다. 자동차를 세우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떼었다.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멀리서 '우르릉 우르릉-' 천둥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포였다. 이정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 눈부시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엄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폭포가 있었다. 그 폭포를 가슴 가득 품어 안고 협곡을 따라 깊이 흐르고 있는 옐로스톤 강이 있었다.
▲ YellowStone의 Grand Canyon.ⓒ최창남

그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강이 아니라 협곡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협곡이 아니라 산 전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산과 협곡과 강을 따라 나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옐로스톤은 나를 맞고 품어 주었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 위로 낙조가 깊어지고 있었다. 강물도 협곡의 바위들도 나무들도 나도 모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옐로스톤에서의 첫 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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