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4회의 TV토론이 진행됐던 1997년 대선, 총 27회의 TV토론이 열렸던 2002년 대선과 비교하면, 올해 대선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TV토론은 형식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후보들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는 더욱 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한계는 경제민주화, 복지 등 올해 대선을 가로지르는 중요 키워드에 대한 후보들의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게끔 하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결국 국민은 후보들의 생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투표를 하게 됐다. <프레시안>이 주요 후보들의 생각을 그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기회인 TV토론을 복기하는 기획을 마련한 것은 그래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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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례에 걸친 대선후보 간 TV토론에서 언론·표현의 자유는 전혀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 기본적 인권인 표현의 자유가 퇴행한 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데다, 언론인들은 제5공화국 이후 최악의 시절을 보냈음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경우 정수장학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다, 언론 관련 정책을 후퇴시킨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새누리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검증잣대 하나를 무사통과한 셈이 됐다.
이들 주제가 TV토론에서 거론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나온다. 지난 14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선방송 긴급진단 세미나'에서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MBC 사태에 대한 거론도 전혀 없고, 방송분야 및 정책은 큰 관심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언론·인권 분야가 제대로 쟁점화가 되지 않았다는 조바심은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마지막 TV토론을 앞둔 지난 16일, 문재인 후보 캠프의 김정현 부대변인은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정수장학회 처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정수장학회 문제, MBC 사태, <부산일보> 사태 등을 거론한 후 "박근혜 후보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오늘 TV토론에서 밝힐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TV토론에서도 이 문제는 다른 문제에 파묻혀 부각되지 못했다. 이전에 비해 유난히 대선후보 간 TV토론 횟수가 적었던 원인을 친 정부 성향으로 완전히 돌아선 공영방송사 지배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 배경이다.
언론·표현의 자유가 TV토론 주제조차 될 수 없을 만큼 하찮은 쟁점인 걸까. 그렇지 않다. 숱한 사회 문제 가운데 극히 일부만 TV토론 주제가 될 수 있는 경직된 방송 환경,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안이한 인식 등 모두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다. 비록 TV토론에선 다뤄지지 않았지만, <프레시안>은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후보들의 생각을 더듬어 보려 한다. 주로 공약집을 통해서다. 하지만 공약집의 내용을 후보가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검증할 방법은 없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한계다.
▲ 지난 16일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3차 TV토론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
朴, "반사회적·반국가적 범죄에 한하여 통신심의제도 유지"
현 정부에서 자유롭게 말하고 비판할 권리, 언론·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한 사건은 유난히 많았다. 미네르바 사건이 정권 초기부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고, 인터넷 실명제 확대 시행에 따른 파열음이 누리꾼들을 분노케 했다. 언론 소비자운동(불매운동)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일부 트위터 사용자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죄 적용, 공영방송 장악 논란 등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근본적인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두 후보의 입장은 어떨까?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이하 공익법센터)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 측은 지난 10월 전까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발표한 적이 없다. 특히 지난 8월 헌법재판소에서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을 때에도 특별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아, 야당 측의 빈축을 샀다. 당시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후보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인터넷 실명제 즉각 도입을 주장했었다"며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해 입장이 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박 후보 측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0월 23일, 하태경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 간사가 한 인권정책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나 집회…시위의 자유가 위축된 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의 이 발언은 공약집 발표 전까지 박 후보 측에서 나온 유일한 '표현의 자유' 관련 언급이라고 공익법센터는 밝혔다.
공약집에서도 특별한 내용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집 289페이지를 보면, 박 후보는 "통신심의의 남발과 인터넷 포털사의 임시조치 남용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개인권리 침해 정보에 대한 통신심의를 대폭 축소하고, 임시조치 제도를 개선해 정보 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붙었다. "반사회적·반국가적 범죄에 한해서는 통신심의제도를 유지"하겠단 조건이다.
문제는 어떤 행위가 박 후보 측에서 생각하는 반사회적·반국가적 범죄에 속하는지를 공약집만 봐서는 알 수 없단 점이다. 그저 지금까지 정부나 여당이 "반사회적 범죄"라 명명했던 사건들을 통해, 무엇이 정권이 제약할 수 있는 행위 또는 발언인지를 추측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일례로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을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진작가 박정근 씨가 있다.
이 공약과 더불어, 박 후보는 "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를 설립, 원만한 분쟁 해결을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명예훼손죄는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경우에 따라 '폐지'를 주장한다. 명예훼손 소송을 남발하면,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현하기만 해도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비판을 자제하는 '자기 검열'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 측에서는 정부의 특정 부처나 그 장관이 제기하는 명예훼손 소송, 다른 말로 '전략적 봉쇄 소송'은 원고적격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시민·사회의 정책제안과는 정반대로, 박 후보는 명예훼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조정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정위원회가 전략적 봉쇄소송은 배제하겠다는 설명이나 조건도 공약집에는 따라붙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칫하면 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가 정권의 표현의 자유 침해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언론 자유 어디 갔나
박 후보 측 공약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건,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기본 장치인 언론 자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박 후보 측 공약집을 보면, 박 후보는 언론 관련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추상적 설명 한 줄만을 해 놓았다. 언론 관련 다른 공약으로 '미디어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진입 및 영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방송산업에 관한 조항이지, 편집권 독립 장치 조항이 아니다.
다만 서미경 새누리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관련 공약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해 그 결과를 받아들여 실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역시 구체성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의 사장·이사의 자격 요건과 결격 사유를 구체화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의 사장·이사 선임 시 추천위원회 제도를 의무화 △방송 장악과 언론인·연예인 탄압·사찰에 대한 진상 조사, 해직·징계 언론인 원상 회복 및 피해보상 △미디어의 공적 기능 회복을 위한 소유규제 개선 등의 공약을 제시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과 극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문 후보의 이와 같은 정책마저 언론 전문가들에게서는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점을 감안할 때, 박 후보의 언론 정책은 낙제점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 정권 5년 내내 공영언론사의 '낙하산 사장'으로 인한 편집권 독립 문제가 논란이 된 점을 감안할 때, 관련 내용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는 점은 박 후보가 언론 편집권 독립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박 후보는 국회 개원 당시 MBC 노조 파업의 도화선이 된 김재철 사장 퇴출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뜻을 간접적으로 밝혀놓고도, 대선이 다가오자 침묵을 이어가 빈축을 산 바 있다. 친 권력적인 인사를 통해 언론을 장악하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 대응 태도를 박 후보도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후보는 이미 MBC 주요 주주인 정수장학회와 맺은 특수관계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대선방송 긴급 진단 세미나에서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새누리당은 탁상공론으로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검토하고 있다'는 태도인데, 과연 대선 주자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MBC의 지배구조 개선, 정수장학회 문제, KBS 수신료 문제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文, "집회·시위 자유와 SNS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비교적 진일보한 공약을 내놨다. 문 후보는 지난 10월 <전자신문>과 인터넷포럼이 공동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인터넷 정책 간담회에서 "인터넷 검열 국가의 오명을 벗고 인터넷 자유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실제로 문 후보 대선 공약집 176페이지를 보면, "위헌 판정을 받은 인터넷 실명제와 관련한 법과 제도를 정비해, 익명 표현의 자유와 방어권을 보장하겠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다양한 소셜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자율규제 원칙을 제도화하겠다"고도 밝히고 있다. 아울러 공약집 172페이지를 보면, 집회·시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등도 공약하고 있다.
문 후보의 이 같은 공약에 대해서는, "방향은 잘 잡았으나 각론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앞서 지난달 7일 문 후보의 표현의 자유 발언과 관련, "이명박 정부에서 훼손된 표현의 자유 일반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놓지는 않았음"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이 논평이 나오고 한 달여가 지났지만, 문 후보의 공약집에는 여전히 빈 구멍이 많다. 아직 '선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시민·사회 "인터넷 행정심의 폐지하고,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해야"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공공에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이나 행동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될 수 없도록 관련 법안이 정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전략적 봉쇄소송의 경우 원고적격을 제한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단 설명이다.
또 인터넷 행정심의 역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지난달 7일 낸 논평에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정보의 불법성을 판단하고 처분하는 주체는 행정기관이 아니라 사법기관"이라며 "행정기관에 의한 표현물 심의는 행정부가 국민의 비판을 억제하는 것이므로 헌법에서 금하는 '검열'"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안철수 전 대선후보는 인터넷 행정심의 폐지를 유일하게 공약한 바 있다.
더불어 시민·사회 측에서는 거리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는 헌법 정신을 살리도록, 미신고 집회 처벌규정과 금지통고제를 폐지하는 등의 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단 설명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행위는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법치주의'를 "정해진 법을 잘 따라야 한다"는 '준법주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본래 의미는, 국가권력 행사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헌법원리다. 특정인이 국가권력을 멋대로 행사함으로써 국민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개념인 셈이다.
이에 따라 '표현의 자유 등 인권 보장을 위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부터 법을 지키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여러 반(反)민주적 법안을 개정하고 바로잡는 노력이 실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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