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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자기부정…한미동맹 '복원' 표현 첫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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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자기부정…한미동맹 '복원' 표현 첫 사용

"정치공세 받아들여 정권 코드 맞추냐" 비판

외교통상부가 11일 청와대 업무보고를 하면서 한미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원래대로 회복한다는 의미의 복원이란 표현을 수용하는 것은 지난 정부에서 한미관계가 훼손됐음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카멜레온?

외교부는 이날 올해 외교목표 중 하나인 '안보를 튼튼히 하는 외교'의 일환으로 "한미관계를 복원하고 미래 동맹관계를 정립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외교부의 기존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외교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동맹이 무너졌다는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왔다. 일례로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동맹의 존재양식과 운영방식은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도 같은 입장이었다. 유명환 장관은 지난달 27일 인사청문회에서 "한미관계의 심각한 위기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냐?"는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의 질문에 "결과론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답을 회피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이날 복원이란 말을 처음으로 쓰자 '왜 그런 표현을 받아들였나' '어느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심윤조 차관보는 "과거 한미동맹은 기본적으로 발전·강화했다"라면서도 "지난 수 년간 미흡했던 부분이 있고 그것을 일단 강화하고 발전하는 추세로 옮겨놓은 다음에 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복원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답했다.

심 차관보는 또 "(복원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양측 신뢰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게 복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동맹재조정에서 미군기지 이전이나 반환 과정에서 원만치 못했던 점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미동맹 발전의) 일반적인 추세가 어디에서 꺾였고 어느 시대로 복원하느냐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각자에 맡기겠다"라고 더 이상의 답변을 피했다.
▲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외교부 및 한나라당 고위 인사들 ⓒ연합뉴스

라이스, 마이클 그린, 빅터 차에게 물어보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미면 어떠냐"는 등 이른바 '반미 발언'을 했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북한 핵개발도 일리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한미간의 묘한 긴장을 조성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간의 그같은 긴장은 단지 감정적인 것이었을 뿐 '복원'을 해야 할 정도로 한미동맹이 손상되지는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는 미군기지 이전 등 한미동맹 재조정,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 이라크 파병, 한미FTA 체결 등 미국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것을 수용했다. 지지자들의 대거 이탈을 초래한 노무현 정부의 친미 일변도 정책은 한미동맹을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가치동맹'과 '경제동맹'으로 격상시켰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한미동맹의 와해를 주장하지만 정작 미 행정부의 전현직 고위 관리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한미동맹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월 서울에서 "우리(한국과 미국)는 전략적인 면을 공유하는 만큼 공통 가치도 추구해 왔으며 (한미) 관계는 최근 수년간 심화돼 왔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시아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은 2월 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미국·영국 다음 가는 대규모 이라크 파병에다 한미FTA 체결,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등 정책적으로 한미동맹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라며 "그 기여도는 전두환·노태우 정부 못지 않다. 어떤 의미에선 그들 이상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린의 후임으로 NSC 아시아 보좌관을 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도 지난해 12월 17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우리(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미래의 동맹을 조정·강화하고 동맹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일 등 정말 중요한 일을 많이 이뤄냈다"고 말했다.

"정치공세 받아들이는 건 이념외교"

이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관계를 주도했던 외교부가 이제 와 '복원'을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과거 외교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유명환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 1·2차관과 주일 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며 내놓은 세부 목표가 △동맹 재조정 원만 이행 △FTA 비준 촉진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등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하던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대목에서는 외교부가 '말'만 가지고 새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 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외교부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5년간의 외교정책을 반성한다고 말할 때부터 자기부정은 시작됐다"라며 "한미동맹 와해론은 정치공세적 측면이 강했는데 그걸 외교부가 수용한 것은 실용외교가 아니라 이념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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