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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친 대한민국을 위한 씻김굿, <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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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1세기 미친 대한민국을 위한 씻김굿, <26년>

[장시기의 '영화로 읽는 세상'] 조근현 감독의 <26년>

I. 기억의 과거와 망각의 현재, 1980년 5월 18일

2012년 12월의 오늘. 대한민국 사람들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 5월을 망각한 사람들이다.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21세기의 대한민국을 향유하지 못한다. 이와 반면에 1980년의 5월을 망각한 사람들은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찬양하며 21세기의 대한민국을 향유한다. 근대적인 정신분석학이 아닌 탈근대의 욕망이론에서 인간은 기억의 동물이 아니라 망각의 동물이다. 과거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사랑을 기억하는 것은 그 과거가 오늘의 현재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삶이 어제와 다르기 위해서는 어제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사랑을 망각해야만 가능하다. 시간의 흐름은 그런 것이다. 조근현 감독의 영화, <26년>은 이러한 두 종류의 대한민국 사람들, 1980년 5월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 1980년 5월을 망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2006년 5월 18일의 대한민국과 서울을 다루고 있다. 2006년 5월은 2012년 12월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청어람
1980년 5월 18일은 대한민국 국군이 전라남도 도청소재지 광주에 파견되어 광주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날이다. 물론 그 전날 밤 광주시에 있는 미문화원 직원들과 외국인들은 모두 특별 경호를 받으며 광주시를 빠져나갔다. 부산 앞바다에는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항공모함이 한반도를 겨냥하며 수십 대의 전투기와 미군 병사들이 전시체제를 갖추고 정착하고 있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는 이미 비상계엄령이 내려졌고, 총을 든 비상계엄군들이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거부하는 적이 필요하듯이 박정희 독재자를 계승한 전두환 독재자는 적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왜 그 적이 광주였을까? 서울이나 부산, 혹은 대구나 대전, 인천이나 춘천이 아니고 광주였을까? 그것은 독재자 박정희의 적이 광주였고, 박정희를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전두환은 박정희와 동일한 적을 만듦으로 인하여 박정희를 계승한다는 독재자의 원칙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진배(진구 분)가 있었고, 미진(한혜진 분)이가 있었고, 정혁(임슬옹 분)이가 있었으며 갑세(이경영 분)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진배와 미진이와 정혁이는 서울이나 부산이 아니고, 대구나 대전이 아니고 광주가 왜 전두환이나 박정희의 적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남편을 잃고 정신이상이 되어버린 엄마와 아내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아빠와 살면서 진배와 진구는 서서히 1980년의 역사를 알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대통령의 권력을 통하여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해서, 수천 명의 광주 시민들의 목숨을 무차별적으로 앗아간 것이 전두환과 그 패거리들이라는 것을. 진배와 미진이에 비해서 정혁이는 비록 나이가 어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고등학생 누이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래서 그는 진배나 미진이보다 더 뚜렷하게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기억한다.

II. 과거를 지우기 위한 몸부림의 씻김굿, 2006년 5월 18일

26년의 세월이 흘러서 한 세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기억하면서 아파하고 있다는 것은 그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을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광주학살의 주범이 대통령의 권력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심심하면 언론에 등장하여 1980년 5월 18일의 아픔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심지어 당시에 전두환으로부터 6억 원(80년 당시 25만 원이던 대학등록금이 500만 원이 되었으니 오늘날의 화폐로 계산하면 120억 원)을 받은 박정희의 딸이 여당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아픔 속에서 진구의 엄마(이미도 분)는 정신이상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미진이의 아빠(이상훈 분)는 연희동 전두환 자택 앞에서 분신을 하며 세상을 떠났다. 1980년 5월 18일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어찌 진구 엄마와 미진이 아빠뿐이겠는가?

문제는 진구 엄마나 미진이 아빠처럼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에서 일어난 슬픔과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 21세기 현재의 삶의 향유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 고통과 슬픔을 광주에서뿐만 아니라 서울과 부산 그리고 대구와 대전 등등에서 수수방관했던 우리들이다. 수천 명의 광주 시민들이 전두환의 총칼에 무참하게 살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 내 친구는 무사하다는 이유로 1980년 5월 18일을 망각하고 사는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이 제정신일까? 진구 엄마나 미진이 아빠, 혹은 진구나 미진이의 시선에서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미친 사람들이 아닐까? 그 미친 사람들을 위하여, 미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는 씻김굿을 한판 벌여야만 하지 않을까? 영화 <26년>은 21세기 미친 대한민국과 미친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씻김굿이다.

ⓒ청어람
1980년 5월 18일의 기억에서 벗어나 21세기 지구촌 시대의 대한민국을 향유하기 위한 씻김굿의 주체는 결코 그 당시 광주에서 죽은 수천 명의 원혼들이나 진구 엄마나 미진이 아빠처럼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겉으로는 지난 20세기의 악몽에서 벗어나 세계화 시대니 지구촌 시대니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듯한 21세기의 대한민국과 그 국민들이다. 그래서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있다가 기업인으로 성장한 김갑세와 그의 양아들 김주안(배수빈 분)은 진구와 미진이와 정혁이를 부른다. 그들 또한 깡패가 되어, 국가대표 사격선수가 되어, 그리고 경찰이 되어 21세기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단지 이들 다섯 명만이 아니다.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을까?"하고 후회하는 광주 수호파 깡패두목 안수호(안석환 분)와 수호파 패거리들, 그리고 숨죽여가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그 뻔뻔스러운 전두환의 죽음을 목격하고자 했던 관객들이 <26년> 씻김굿의 주체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1980년 5월 18일의 기억에서 벗어나 21세기 대한민국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그 씻김굿에서마저도 우리는 온전하게 1980년 5월 18일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죽음을 불사한 진구와 미진이의 애절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온 삶을 바쳐 전두환의 진심 어린 사죄와 개과천선의 모습을 받아내려는 갑세와 주안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80년 5월 18일을 망각하고 현실의 삶에 안주하고 있는 정혁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혁이는 전두환을 경호하는 경호책임자 마상렬(조덕제 분)이나 탁 실장(민복기 분) 혹은 최 계장(김의성 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에서 전두환 계엄군의 총알에 누나를 잃은 정혁이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전두환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도록 보호하는 또 다른 마상렬이며 탁 실장이며 최 계장이다. 그가 죽은 누이의 기억을 간직하면서도 또 다른 마상렬이며 탁 실장이며 최 계장이 되는 이유는 과거의 기억을 망각하고 현실의 삶을 향유하고자 하는 현실적 삶의 욕망 때문이다.

1980년 5월 18일의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2006년 5월 18일을 기점으로 하는 영화 <26년>의 씻김굿은 실패로 끝났다. 그 실패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처럼 직장에서 진급을 해야 하고, 아름다운 사랑도 하고, 생산적인 가족도 갖고,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현실의 욕망에서 정혁이가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씻김굿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전두환처럼, 1980년 5월 18일의 광주 계엄군들처럼, 혹은 1980년 5월 18일에 서울이나 부산 혹은 대구나 광주의 그 어느 곳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했던 그 시대의 그 사람들처럼 21세기의 우리도 또한 살인자이거나 혹은 살인방관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영화 <26년>이 벌려놓은 씻김굿의 완성은 전국에 있는 <26년> 영화 관객들뿐만 아니라 아직도 전두환과 전두환 일당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2012년 12월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III. "명령하지 마!", 너 안에 있는 전두환을 버려라, 2012년 12월 19일

ⓒ청어람
1980년 5월 18일의 기억에서 벗어나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우리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조근현 감독이 마련한 <26년>의 씻김굿은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에 완성되어야만 한다. 정혁이처럼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1980년 5월 18일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미진이처럼 총을 들 수도 없고, 진구처럼 두 주먹과 맨몸뚱이만을 가지고 연희동으로 침입해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김갑세처럼 26년 동안 이를 악물고 1980년 5월 18일만을 기억하면서 대자본의 기업인으로 성공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총도 없고, 무쇠와 같은 주먹이나 용기도 없고, 또한 국가에 대항할 거대한 자본도 없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투표장에 갈 수 있는 두 발과 올바른 21세기 대한민국 지도자에게 투표할 수 있는 두 손, 그리고 이 대한민국이 식민지 대한민국이거나 독재자의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되어야만 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지식과 믿음이 있다.

식민지 대한민국이나 독재자의 나라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와 민주주의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판단은 영화 <26년>의 마지막 장면에 모두 드러나 있다. 1980년 5월 18일에 김갑세와 함께 광주 계엄군으로 파견되어 수천 명의 광주시민들을 죽이고 현재까지 전두환의 개 노릇을 했던 마상렬은 김갑세를 쏘아 죽이라는 전두환의 말에, 그의 생애 최초로 "명령하지 마!"라고 항거한다. "명령하지 마! 더 이상 나에게 명령하지 마!" 그는 죽음 앞에서 마침내 자신은 전두환의 하수인이 아니라 하나의 자유인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우리도 마상렬처럼 선언해야만 한다. '명령하지 마! 나는 독재자의 후손이나 살인자의 하수인이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자유인이야!' 2012년 12월 19일의 대한민국 모든 투표장에서 우리 모두의 '자유인 선언!'이 이루어질 때, 영화 <26년>에 등장하는 진구와 미진이, 그리고 갑세와 정혁이가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 떳떳하게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또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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