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주기구는 긴급총회를 소집, 2일간에 걸친 난상 토론 끝에 "콜롬비아 정부가 에콰도르 국경을 침범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을 인정하며 비록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콜롬비아가 불가침조약을 위반한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채택했다.
또한 미주기구 주재 콜롬비아 대사가 정부를 대표해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를 함으로써 무력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번 사태를 은폐하려 했던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를 적극 지지했던 미국은 난처한 입장을 면치 못하게 됐다.
또한 이번 사태에 미국 정부가 적극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과 사용이 금지된 폭탄을 무차별로 투하해 취침 중인 무장혁명군을 살해했다는 비난의 화살은 미국과 콜롬비아를 두고두고 괴롭힐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콜롬비아의 성토장이 된 이번 미주기구 긴급총회가 열리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지난 1일 콜롬비아 외무부는 "콜롬비아 정부군이 에콰도르 국경지역을 순찰하던 중 총격을 받아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교전을 시작했고, 16명의 무장혁명군 게릴라와 라울 레졔를 사살했다"며 "이는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 성명을 접한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콜롬비아 정부군이 먼저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우리 측 군부와 정보기관이 현장을 확인한 바로는 사망한 혁명군들은 취침 중에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시신을 확인해 본 결과 그들은 전투복 차림이 아닌 잠옷 차림이었다"고 반박했다.
에콰도르 정부가 들이댄 증거에 할 말이 궁해진 콜롬비아 외무부는 "에콰도르 정부에 사과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우리는 에콰도르 국경을 침범하지 않았다. 다만 작전중인 헬기가 국경을 잠시 넘은 것은 인정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이에 에콰도르 정부는 "만일 당신들이 우리 국경을 넘어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혁명군 시신들과 개인소지품들을 수습해 갈 수가 있었느냐"고 반박을 이어갔다.
콜롬비아 정부의 계속되는 오리발에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코레아 대통령은 2일 콜롬비아 주재 자국대사를 소환하고 자국 군대를 콜롬비아 국경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콜롬비아에 비해 군사력이 열세인 에콰도르의 코레아 대통령은 인접국인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측면지원을 요청한다. 최악의 경우 협공작전을 전개하자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미주기구에 긴급총회 소집을 강력하게 요청, 성의있는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콜롬비아는 이번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소탕작전은 어디까지나 국내문제인 만큼 콜롬비아 정부가 해결해야 마땅하다며 미주기구 개입을 요청한 에콰도르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 정부 대표들은 "이번 사태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대학살"이라며 미국의 개입설을 제기했다. 양국 정부 대표들은 "지난달 28일 미국의 조셉 니미츠 제독이 콜롬비아 군 수뇌부들과 회동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양국 군이 정보공유를 합의한 바 있다"며 미국의 개입을 공식화시키기도 했다.
이에 미주기구 대표들은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 정부 대표들이 제시한 각종 증거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콜롬비아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최종적인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중남미에 드리운 전운은 서서히 걷히는 양상이지만 콜롬비아 정부군이 펼친 이번 작전에서 세계인권단체들이 사용금지를 요구하고 있는 집속탄이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한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지휘부는 최근 중남미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보낸 공개 메시지에서 "사회정의를 세우고 민주주의 건설을 위해 인도주의적인 인질 석방을 주도했던 라울 레졔의 사망을 애도한다"며 "그러나 우리의 혁명은 흔들림이 없이 견고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중남미 전체 국가들과 프랑스 등이 콜롬비아 내의 두 개의 도시를 비무장지대로 만들도록 노력해달라며 이는 콜롬비아 정부군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인질들을 석방할 수 있는 조치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분위기만 조성되면 인질 석방은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아가 최근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진 전 콜롬비아 대통령후보 잉그리드 베탕쿠르트의 석방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콜롬비아 정부나 미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이지만 차베스의 인질석방에 대한 역할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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