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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래)와 耒(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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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래)와 耒(뢰)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19>

이젠 우리나라에서 보리밭을 보기 어려워졌지만, 보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주식이었다. 한자의 발상지인 중국 대륙에서도 보리는 쌀보다도 먼저 재배가 시작된 듯하고, 당연히 일찍부터 그것을 뜻하는 글자가 만들어졌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보리'의 뜻으로 쓰이는 麥(맥)자가 아니고 '오다'의 뜻으로 옮겨 쓰이는 來(래)자다.

來는 보리 한 포기를 그린 상형자라고 한다. 아래 세 갈래가 쳐진 부분이 뿌리고, 중간의 두 人자가 잎사귀이며, 맨 위쪽은 이삭의 변형이다(<그림 1, 2>). 이것이 다른 뜻으로 옮겨 쓰이자 麥자가 새로 만들어져 '보리'의 뜻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윗부분이 來자고, 아래에 夊(쇠)가 추가됐다. 來가 '오다'의 뜻으로 쓰인 것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전통적인 설명이고, 보리가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는 그 현대적 변용이다.

추가 부분인 夊는 뿌리 부분이 강조된 것이라고도 하고, 그것이 '발'을 의미하는 止(지)의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보리밟기를 나타낸 회의자의 구성 요소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전자는 來가 이미 뿌리 부분까지 확실히 그려진 상형자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후자는 매우 자의적인 회의자식 설명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미덥지 않다.

오히려 초성 ㄹ/ㅁ이 그리 멀지 않은 발음이고 받침 ㄱ이 탈락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에, 麥은 來의 발음을 이어받은 형성자일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아래 夊가 의미 요소가 되는데, 그것이 止의 변형이라면 이동과 관련된 글자여서 麥이 본래 '오다'의 뜻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來가 본래 '보리'의 뜻이었다는 것은 똑같지만, 그것이 다른 뜻으로 쓰이자 대타로 麥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다'를 위해 새로운 형성자 麥이 만들어진 것이다. 麥과 來의 의미가 바뀐 셈이다. 來는 '보리'가 아닌 '밀'이어서 밀은 來, 보리는 麥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보리는 잎이 비교적 짧다. 벼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來의 옛 모습을 보면 축 처진 잎이 가장 큰 특징인데, 이는 보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來자는 보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책상물림이 만든 글자일까? 來가 정말로 보리를 상형한 것이라면 그건 실패작이다.

<그림 2> 같은 來의 일부 글자꼴을 보면 윗부분에 획이 하나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데, 이는 위치상 이삭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리는 이삭 역시 비스듬하거나 가로로 걸쳐져 있는 게 아니라 꼿꼿이 서 있다. 역시 來가 보리의 상형이라는 데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 있다. 米(미)의 파생자인 料(료)는 왼쪽 米가 발음기호다. 초성 ㅁ>ㄹ의 변화다. 類(류) 역시 頪(뢰)와 犬(견)을 합친 글자고 頪의 발음은 米에서 왔다. 이들의 발음은 來-麥의 발음 분포와 일치한다.

米는 지난 회에 살펴보았듯이 釆(변)의 변형이었는데, 來의 글자꼴은 그 釆과 아주 닮았다. 중간 부분이 조금 다르게 정리됐을 뿐이다. <그림 2>처럼 來에서 '이삭' 부분이 비스듬하게 처리된 까닭은 釆자의 첫 획만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來는 바로 釆=米의 변형이다. 곡식을 가리키는 말로 가차돼 쓰이던 글자가 '쌀'과 '보리/밀'을 구분해 인식하게 됨에 따라 조금 다른 형태(米-來)로 분화한 것이다.

부수자의 하나인 耒(뢰)는 쟁기를 그렸다는 상형설과 丯(개)와 木(목)을 합쳤다는 회의자설이 있다. 그러나 발음은 來와 비슷하고 모양은 來의 원본인 釆에서 중간 두 점 부분을 一자로 합쳐 놓은 것에 불과하다. 耒는 來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耒부 글자들이 농경과 관련되는 글자들인 것은 耒에 來=米의 의미가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耒가 쟁기의 상형이라는 것은 후대의 의미 파생에 따른 착오인 듯하다.

來는 耒의 첫 획을 완전히 가로로 눕힌 형태를 약자로 쓰기도 한다. 耒=來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 중국에서 간화자로 채택한 来도 약자의 한 형태다. 来가 來의 원본인 釆과 흡사한 모양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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